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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인상 고집하는 정부 최저수준 강요받는 삶

치솟는 물가 반영 못하는 ‘기준중위소득’ 밀실 결정에, 기초생활수급자 사각지대 그대로
등록 2022-07-07 13:28 수정 2022-07-08 02:16
2020년 7월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및 급여 수준 현실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20년 7월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및 급여 수준 현실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기준중위소득. 70여 개 복지제도에서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선이다. 소득조사를 동반하는 거의 모든 복지제도에 이 기준선이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생계급여 선정 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30%, 의료급여는 40%, 한부모 복지지원은 52% 등의 방식이다. 정부는 2022년 7월11일부터 코로나19 자가격리자 생활지원금을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만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기준중위소득, 어떻게 결정될까?

기준중위소득, 현실에선 ‘중앙값’ 아니다

기준중위소득이 만들어진 역사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2015년 7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안이 시행되며 첫 번째 기준중위소득이 발표됐다.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가구소득의 중앙값(100명을 줄 세웠을 때 50번째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이 중앙값을 복지 기준선으로 쓰기 위해 해마다 보건복지부가 정하는 것이 기준중위소득이다. 기준중위소득이 도입되기 전에는 최저생계비가 그 역할을 대신했으나 여러 문제가 있었다. 기존 최저생계비 결정 방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더해 계산하는 것이었다. 장을 보듯이 바구니에 넣은 쌀, 감자 등의 가격을 더하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전체 국민의 상대적 수준이 반영되지 않았다.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뒤, 2015년 기준중위소득이라는 새로운 기준선이 도입됐다.

기준중위소득 도입 이후 ‘반짝’ 생계급여를 받는 급여자가 늘어나기도 했으나 큰 틀에서 볼 때 실제 수급자 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빈곤층 복지제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넓은 사각지대’임을 고려할 때, 수급자 수가 별로 늘지 않았다는 점은 개편의 효과가 크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기준중위소득을 도입했지만, 실제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의 3%(150만 명) 안팎에 머무르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수는 2020년 이후 200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 때문이었다. 주거급여만 받는 수급자를 제외하면 생계급여(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의료급여(부양의무자 기준 유지)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각각 여전히 인구의 3% 언저리(2022년 5월 기준 생계급여 153만 명, 의료급여 143만 명)다.

기준중위소득은 해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의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차관 등의 당연직 위원과 각 분야의 전문가, 공익을 대표하는 16명의 중생보위 위원이 이듬해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해 8월1일까지 발표한다. 최근 몇 년간 월세와 물가를 비롯해 체감하는 경기변동은 무척 큰 데 비해, 지난 5년간 기준중위소득 한 해 평균 인상률은 2.8%에 불과했다.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자료에서 드러나는 실제 중앙값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22년에 적용될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근거자료인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1인가구 소득 중앙값은 254만원, 4인가구는 636만원이다. 2022년 기준중위소득은 각각 194만원, 512만원이니 중앙값과 크게 차이 난다(표 참조). 기준중위소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통계상 소득은 4% 이상 늘었는데…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사용하는 통계자료가 2020년부터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뀌었다. 둘 다 통계청의 소득 조사 결과지만,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패널 수가 적고 고소득층이 상당히 제외돼 사용하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소득자료 변경 과정이다. 통계청이 더 이상 가계동향 연간 통계를 발표하지 않기로 해서 자료 변경이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수년 전부터 예고했지만, 가계동향조사일 때와 가계금융복지조사일 때 두 결과의 폭을 줄이려는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예정된 변화에도 매년 최저의 인상폭을 고집한 끝에 기준중위소득과 현실은 속수무책으로 벌어졌다.

가구 구성에 따라 두 통계자료의 값을 보정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약 12%의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 중생보위는 향후 6년간 매년 2%의 추가 인상률을 산입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도 기준중위소득은 5% 인상됐는데 여기엔 2%의 추가 인상률이 포함돼, 실제 인상률은 3%라고 볼 수 있다.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중요한 고려사항은 물가와 경제성장률이다. 아무리 엄밀한 통계자료를 사용해도 조사 시점에서 1년이 지난 뒤에야 결과가 나오고, 결과를 활용해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면 이듬해에 사용되니 최소한 3년의 격차가 생긴다. 다음해 경기와 물가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히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중생보위는 소득통계의 최근 3년 평균 인상률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지만 이 결정도 이행하지 않았다. 최근 3년 평균 소득자료 인상률은 2020년과 2021년 결정 시점에 각각 4.6%, 4.3%였으나 정부는 별다른 근거 없이 2020년은 단 1% 인상, 2021년은 평균 인상률의 70%만 인상률로 반영하는 결정을 내렸다.

복잡한 숫자와 닫힌 회의장의 문

정부가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으니, 다른 문제는 다음에 해결하자고 했다. 또 하나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우니 수급비와 직접적 연관을 맺는 기준중위소득을 섣불리 인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빈곤 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관점에서 오답이다. 사각지대 해소와 선정 기준, 보장 수준 강화는 우선순위를 경쟁하는 문제가 아니다.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은 복지제도 수급자에게 최저 수준의 삶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복지가 닿지 않도록 조작하기 때문이다.

기준중위소득 결정 과정에 등장하는 다양한 통계자료와 수치는 이것에 의문을 품는 이들조차 질리게 하는 경향이 있어, 이 제도의 변화에 관심을 갖기란 갈수록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복잡한 숫자가 과학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진 않았다. ‘방탈출 게임’처럼 의미 없는 단서로 이어진 수식의 끝에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중생보위는 회의록도, 회의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기준중위소득은 빈곤층과 복지수급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빈곤층과 복지수급자가 이 결정에 개입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복잡한 숫자와 닫힌 회의장 문으로 위장된 논의 구조 자체가 가난한 이들이 선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블랙박스 같은 위원회를 벗어나 모든 사회가 기준중위소득의 적절성을 감시하고 논의해야 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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