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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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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는 노인들

메뉴 글자, 휴대전화 밝기 등 일상의 차별행위를 시정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등록 2022-01-16 07:12 수정 2022-01-19 01:48
2021년 12월15일 24시간 농성 중인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장. 박승화 기자

2021년 12월15일 24시간 농성 중인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장. 박승화 기자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라는 화제의 영상이 있다.

“우리는 기계 있으면 안 가부러. 사람이 갖다주는 곳으로 가자. 뭐 눌러야 된다매. 근데 그게 내 맘대로 안돼. 자존심 상하잖여. 진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세상이 돌아온가비다요.”

영상엔 평소 호탕하고 거침없던 박막례 할머니가 맥도날드에 가서 키오스크(무인 정보 단말기)로 햄버거를 주문하는데 낯설고 어려운 작동법에 쩔쩔매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메뉴판의 글씨는 보이지 않고, 가장 위 메뉴는 손이 닿지 않아 선택하지 못하고, ‘테이크아웃’은 뜻이 낯설어 쇼핑백 모양을 보고서야 포장을 선택하고, 먹고 싶었던 감자튀김도 ‘프렌치프라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 결국 못 샀다. 그마저도 시간을 계속 초과해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 한 결과다. 힘겨운 주문을 마치고 막례 할머니가 동년배 70대 친구들에게 한 말, “야 그거 먹을라면 돋배기 쓰고 영어공부 하고 의자 챙기고, 키 큰 사람들은 상관없고. 그리고 카드 있시야 된다!”

영어 알고 돋보기 있고 키가 커야 하는

최근 키오스크는 공항, 버스터미널, 은행, 영화관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한 소규모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널리 쓰인다. 키오스크 도입으로 사업자는 인건비를 쉽게 절감하고 소비자는 대기시간 없이 원하는 서비스를 즉시 주문·결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020년 9월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키오스크 사용 관찰 조사’에 따르면, 버스터미널 키오스크를 이용한 70살 이상 노인 5명 중 3명이 표를 사지 못했고,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이용에서는 5명 모두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 또 키오스크 이용에서 불편한 점으로 ‘복잡한 단계’가 51.4%로 가장 많았고,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이 뒤를 이었다. 이쯤 되면 키오스크는 그 자체로 노인들의 ‘자존심 테스트용’ 기계가 된 셈이다.

실제로 주변 어른들께 여쭤보니 매장 밖 창을 통해 키오스크만 보이고 주문받는 직원이 안 보이면 아예 매장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돈 들고도 멀찍이서 가게 안 상황을 살피는 뒷모습은 상상만 해도 서글프다. 소비자로서는 물론, 시민으로서 권리 행사를 심각하게 침해받는 일이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근무할 때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의 주무 부처가 행정안전부인 덕에 키오스크 이용 현황을 살펴봤다. 키오스크의 규격 기준은 2016년에 마련한 ‘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국가표준KS X 9211)이 있었고, 이에 따라 한 공공기관이 교통 분야 키오스크 정보 접근성 현황을 파악하려 시범조사를 한 결과가 있었다. 자료를 요구해서 내용을 보니 실제 키오스크는 △메뉴의 글자가 작고 명도 대비가 낮아 노안·저시력인 사람에게 불리하고 △단말기 화면 높이가 기준(1.2m 이하)보다 높으며 △메뉴 조작에 시간 연장 기능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기계 사용에 미숙하거나 손떨림이 있는 사람이 이용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 설비가 노인에게 이렇게 불리하게 설정됐는데도 버젓이 쓰였으니, 소비자 권리 행사의 능동이 테스트당하는 피동으로 뒤바뀐 것이다.

그런데 의원실에서 전문가들에게 자문해보니 글자 크기 등을 바꾸기는 생각보다 용이했다. 기기를 변경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프로그램 조작이나 소프트웨어 변경은 기존 기기 업데이트로도 가능했다. 모든 소비자를 차별 없이 대한다는 관점으로 시도할 수 있는 일인데, 하지 않은 결과로 기껏 기계 하나에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하는 일이 생겼다. 그게 뭐라고, 사람을 이토록.

정부·민간 규율하는 법을 만들고 나면

키오스크 문제를 알게 된 때부터 공공은 물론이고 민간시설에서도 누구든 이용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근거를 담은 법안을 고민했다. 최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무인단말기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장애인 접근성을 갖추도록 한 규정이 새로 들어갔다. 그 결과 이제 접근성을 갖추지 않은 차별행위로 장애인 당사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법의 대상이 장애인으로 한정됐다. 노인까지 포괄하는 법인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니 이번에는 범위가 공원,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등에 한정돼 무인단말기 같은 기기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기존의 차별을 규율하는 법은 이런저런 한정을 두는 한계가 있다(62쪽 표 참조).

답답한 마음에 방향을 바꿔서 사람을 특정한 법안이 아니라 기기·사물의 사용을 규율하는 법을 찾아봤다. ‘지능정보화 기본법’에 “지능정보서비스 제공자는 그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의 접근과 이용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고, 시행령에 ‘접근성 실태조사’ 근거가 있다. 이게 앞서 언급한 그 시범조사의 근거 조항이다.

2016년 규격 기준을 마련하고 실태조사도 했으나 그 뒤 대책이 없는 상황, 다시 한번 확인되는 소극적 행정행위의 단면이다. 이 경우 국회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개정안을 만들 수도 있겠다. 정부와 민간의 행위를 규율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는 있겠으나, 그 안은 대기업은 과태료가 기기 변경 비용보다 저렴하니 과태료만 내고 말 상황을 만들고, 결국 소상공인에게만 책임이 전가될 것이 뻔했다. 개정법이 곧 부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권리침해 행위를 형사벌 혹은 행정벌로써 규율하는 방법은 ‘이게 최선일까? 처벌하거나 금전 제재하는 것은 일회적이지 않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룬 채 어찌 보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을 찍어내는 것 같아 개운치 않았다.

법 적용 대상을 좁게 한정하지 않고, 시설뿐 아니라 기기·사물의 사용까지 포괄하고, 특히 차별행위를 당했을 때 처벌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노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권리침해에 대해 진정하고, 인권위는 정부와 해당 사업장에 키오스크를 노인친화적으로 바꾸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침해 진정과 시정 조치가 반복되면 우리 삶에서 차별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기준이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의 글씨 크기, 화면 밝기, 터치 속도 등을 포함한 기본값은 디지털 약자 중심으로 설정되는 편이 맞다. 능숙한 사람은 어차피 간단한 조작으로 자신에게 맞추면 되니까 말이다.

‘○○충’과 ‘노○○존’이 늘어갈 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 대상과 시설을 특정해서 일일이 규율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속속들이 발견되는 차별행위가 차별받은 사람의 요구로 시정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고 실제 그 믿음을 구현할 사회시스템일 테다. 그게 차별금지법의 쓸모다. 우리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자 민주공화국의 동료 시민으로서 사회적으로 받아서는 안 되는 차별행위가 무엇인지를 법으로 규율하고, 실제 차별을 경험했을 때 침해된 권리를 어떻게 구제받을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상의 차별들을 시정하고 예방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법이 정해줘야 한다. 그게 법의 쓸모다. 입법권자를 뺀 텅 빈 사회적 합의가 아닌, 법으로서 사회적 합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인 정치의 쓸모다.

2000년대 된장녀에서 시작된 ‘○○녀’ 시리즈가 맘충을 비롯한 ‘○○충’ 목록으로 번지고 노키즈존에 이은 ‘노○○존’ 목록이 늘어간 십수 년 동안, 정치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백과사전 ‘나무위키’에 기상천외한 ‘○○충과 ‘노○○존’의 항목이 기입되고 용례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치 부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부추겼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열심히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양육하는 한 여성의 분투가 ‘맘충’이라는 혐오로 돌아오고, 심지어 그게 특이한 사건이 아닌 공기처럼 평범한 일상에 흩뿌려졌을 때, 자신을 방어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를 지우고 타인이 돼버릴 수밖에 없는 텍스트로 봤다. 거기에서 킬링 포인트는 김지영이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커피 마신다”는 소리를 듣고도 죄지은 사람처럼 얼른 그 자리를 떠나버린 장면이다. 권리의 언어가 없는 세상에서는 약자가 자기 탓을 하게 된다.

‘미투 운동’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뒤풀이자리에서 누가 성희롱 발언을 하면 당사자가 항의하기도 전에 옆의 다른 사람이 쿡 찌르면서 “요즘 그런 말 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눈치를 준다. 그렇게 “따가운 혐오의 공기”(정세랑, <시선으로부터,>)를 바꿔낸 그 순간이 더없이 감격스럽다. 침해된 시민권을 용기로써 복원해준 그녀들 덕이다. 그 덕을 나를 포함해 성희롱을 경험할 뻔했던 사회적 약자 모두가 봤다. 차별은 공기와도 같아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성희롱의 공기를 바꿔내는 모멘트가 우리 사회에 생긴 것처럼, 차별금지법은 차별받은 당사자가 항의하기도 전에 옆의 다른 사람이 쿡 찔러 주의 주는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막례 할머니에게도, 김지영에게도 사회에 할퀴어 따가운 공기가 그래도 숨 쉴 만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덕은 우리 모두가 함께 볼 것이다.

막례 할머니에게도 김지영에게도

2021년 11월부터 국회 앞에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원하는 이들의 텐트가 있었다. 밤 12시 넘은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다. 늦은 시간에도 불 켜진 텐트를 뒤로하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퇴근한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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