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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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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방역패스 대담] 학교는 멈춰도 학원은 큰일?

10대 4명이 말하는 ‘방역패스’ 논란과 코로나19 시기 청소년의 인권
등록 2022-01-16 06:48 수정 2022-01-18 01:53
2022년 1월12일 저녁 ‘코로나19 방역패스’ 논란을 주제로 10대 청소년 4명과 이정규 기자가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2022년 1월12일 저녁 ‘코로나19 방역패스’ 논란을 주제로 10대 청소년 4명과 이정규 기자가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에 방역패스를 의무화하려는 정부 방역대책에 제동이 걸렸다. 2022년 1월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가 이들 시설에 방역패스를 도입하는 정부 집행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려서다. 법원은 방역패스로 백신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 △교육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침해받는다고 밝혔다. 이 집단소송을 낸 이들은 학부모단체와 사교육단체 등이었다.

“학습권과 방역 공공성 적절하게 조율해야”

코로나19 유행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만 해도 들리지 않던 ‘교육권’ ‘학습권’ 주장이,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의 이용이 제약받자 갑작스레 확성기를 댄 듯이 커졌다. 그런데 청소년의 교육권,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두고 공방이 오가도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방역패스’ 논란은 하나의 단면일 뿐 코로나19 시대에 청소년 인권 문제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심각하다. 어른의 무관심과 방관이 청소년을 안녕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겨레21>은 당사자인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박시준(15), 혁신학교에 재학 중인 이승연(16), 각각 대안학교와 특성화고를 졸업한 구윤서(19), 이진영(19) 등 4명과 1월12일 저녁 8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넷 모두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거나 부스터샷(추가접종)까지 맞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이 쭈뼛쭈뼛했던 이들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코로나19로 포기하거나 침해받아야 했던 권리’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들 백신은 맞았나요.

구윤서 저는 부스터샷까지 맞았습니다. 주변에 안 맞은 친구들이 있어서 여전히 불편한 점은 있어요. 친구가 알레르기가 심해서 안 맞았거든요. 그 친구랑 자주 만나 노는데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 갈 때 제약이 있어요.

이승연 처음에는 맞을 계획이 없었지만 친구가 맞겠다고 해서 따라갔어요. 아무래도 부작용이 걱정됐어요. 지금은 2차까지 맞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 친구는 1차를 맞고 병원에서 1시간 동안 누워 있었거든요. 그래도 이제는 어느 시설이든지 입장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저랑 만날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한 거 같아요.

이진영 저도 부스터샷까지 맞았습니다. 신체 자기결정권 논란이 있는데, 방역패스 때문에 모든 청소년이 거의 강제적으로 백신을 맞게 되잖아요. 알레르기 반응이 있거나 지병이 있어 또 다른 병이 생기는 친구도 있을 텐데요. 초등학교 고학년 가운데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친구도 있거든요. 그 친구들은 가족과 외식하러 가기도 어렵고요. 방역패스는 한편으로 필요한 정책이지만 인권침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시준 저는 중학교 2학년인데 백신 2차까지 맞았어요. 중학생도 이제 방역패스가 있어야 하니까요.

법원이 학원 등에 방역패스 집행을 정지하라고 결정한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승연 저는 학습권과 방역의 공공성이 적절하게 조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 권리가 침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입을 준비하기 어려워졌는데,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이나 후나 똑같은 방식으로 대학 입시를 진행하는 것만 봐도 정부가 청소년의 학습권을 보장해주면서 방역대책을 추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구윤서 방역대책만 학습권을 침해한다기보다 코로나19 자체가 청소년 학습권을 꾸준히 침해한 게 아닐까요? 그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이번 결정으로 뒤늦게 논란이 된 듯싶습니다. 코로나19가 막 터졌을 때만 해도 다 같이 학원을 못 가니 학교 수업에 의지하고 교육방송처럼 온라인을 통한 학습 지원이 늘어나서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는데, 학습 격차는 더 벌어진 것 같아요.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나 독서실 출입이 어려워지니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졌어요.

구윤서 결국 학원이나 독서실이 멈추는 일은 굉장히 큰 사태가 돼버렸고 학교가 멈추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됐죠.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학교의 목적이 대학에 가는 것이 돼버렸으니까요. 대학을 가기 위해 더 최적화된 곳은 학원이라고 봐요.

이승연 학교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자아를 찾아가는 데 더 본질을 둔다면, 학원은 오로지 학습에만 특화된 곳이니까요.

박시준 학교는 진도를 똑같이 나가지만, 학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더 많이 앞서가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학원에 다니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같고요. 그만큼 관심도 많겠죠.

이진영 특히 학원은 학부모 주장이 많이 기사화되잖아요. 학교에 대한 청소년 의견은 전혀 나오지 않고요. 청소년이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국가정책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탓에 공교육에서 학습 공백은 생기지 않았나요.

이진영 특성화고를 다니다보니 현장실습을 온라인수업으로 했어요. 관련 영상을 보고 실습하는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효과가 좀 없었죠.

이승연 저는 학원에서의 인간관계는 굳이 형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거든요. 학교는 달라요. 조 과제나 조끼리 하는 수행평가가 많거든요. 그런데 학기 초에 아예 온라인수업을 했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어려웠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새 친구들을 모두 ‘줌’(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사귀어야 했어요.

구윤서 저도 올해 잠깐 학원에 다녔는데 정말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더라고요. 같이 있지만 군중 속의 고독 같은 느낌. 학교는 프로젝트 수업을 거치며 친구들과 갈등 상황을 해결하고 인간관계를 쌓는 곳이라 생각해요. 저는 대안학교에 다녀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이 없어졌다고 해요.

박시준 쉬는 시간에 다른 반으로 놀러 갈 수 없어요. 갈수록 다른 반 애들이랑 이야기도 못하고 왔다 갔다 하지 못해요. 학교에서 하는 스포츠 클럽도 이틀 전에 취소됐다고 들었어요. 어른들은 헬스장 다니는데 한동안 우리는 강당이랑 운동장도 못 썼어요.

학교는 인간관계 배우고 쌓는 곳

코로나19 유행 이후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시준 화상수업을 하면 질문할 수 없었어요. 수업시간에 발언권도 없어지고요. 자유학년제가 1학년 때 있는데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구윤서 수업시간에 게임을 하는 친구를 그 친구 안경에 비친 화면을 보고 선생님이 잡아내기도 했어요.(웃음) 사람 만나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친구들을 못 만나니 힘들었고요. 온라인수업으로는 집중이 잘 안됐어요.

이진영 급식실에 갔는데 다 일렬로 앉아서 앞만 본 채 ‘혼밥’을 했어요. 이후 칸막이가 생겨 맞은편에 사람이 앉았지만 뭔가 투명 유리창 넘어 친구와 대화하다보니 교도소에 온 느낌이랄까요. 급식소에 사람이 많으면 안 되니 영양사분이 빨리 먹고 일어나라고 재촉해서 밥 먹을 때 눈치도 보였어요.

이승연 다시 등교하니 친구들끼리 모여 있으면 떨어지라 하고, 복도에서 친구들 만나면 가라 하고, 책상을 떨어뜨려 놓으니 짝꿍도 없어지고요. 학교가 개인 학습공간이 됐다 해야 하나요, 무인도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달라진 학습 환경이나 경험의 긍정적인 면은 없었나요.

이승연 제 진로는 음악교육 쪽인데요. 학교에서 4명 정도 모여 모의교육활동을 했어요. 교대 입학을 준비하는 친구, 역사 선생님이 꿈인 친구, 수학 선생님이 되려는 친구가 모였어요. 교실에서 띄엄띄엄 앉아서 서로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주며 상호작용을 했어요. 코로나19 시대에는 소수가 모여 하는 모둠활동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구윤서 만남·연대·접촉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친구들과 나눴어요. 메타버스로 하는 비대면 축제라든지 친구들이 직접 기획도 해봤고요. 만남은 꼭 사람과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니구나. 어떻게든 정보를 주고받고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학교 밖 청소년 현실에도 눈길을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시준 학교에서 지난해 말에야 교외학습을 했거든요. 소방센터 견학을 가고 치즈마을에서 치즈도 만들어보고요.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학교 바깥에 가서 즐거웠어요. 진짜 재밌게 놀았어요. 그런데 학기가 다 끝날 때 교외학습을 보내줘서 마음이 아팠어요. 학기 중간에 보내줬으면 친구들과도 더 친해지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구윤서 정부가 등교를 제한하고 방역패스 정책을 추진했을 때 학교 밖 청소년의 현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업은 그냥 ‘줌’으로 하라는 식이었으니까요. 대안학교에 다니는 저희는 대학에 가지 않거나 예술 분야 쪽으로 진출하려는 친구가 많거든요. 발표, 공연, 모임이 굉장히 중요한 활동인데 모두 멈춰버렸어요.

이진영 저는 전북의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청소년 자치활동을 하는데, 외국 나가는 활동이 다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되다보니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이승연 저도 서울시청소년의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다 만나며 회의하잖아요. 저희도 이제 의회에 가서 동료를 직접 만나고 싶어요. 여전히 어른들이 교육·청소년 정책을 결정하고 있고요. 자기 주도적인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뻗어나갔으면 해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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