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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은 노점상 뉴스를 보지 않는다

등록 2022-01-16 06:34 수정 2022-01-17 02:26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서른여덟, 사업에 실패한 A씨의 주머니엔 40만원이 있었다. 무작정 리어카와 고구마를 샀다. 그렇게 거리로 나와 장사를 시작해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왜 다른 직업이 아니라 노점상이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요양병원에 계신 그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일하지만, 일주일이나 보름씩 간병을 위해 병원에 머무르기도 한다. “어느 회사가 하루 15시간씩 특근을 시켜주고, 부모님 아프다고 보름씩 쉴 수 있게 해주나요? 노점뿐이죠.” 웃으며 던지는 말로 그가 감당하는 일상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노점상이 없어야 하는 공간의 우생학

2021년 가을과 겨울, 전국의 노점상 100명가량을 만났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노점상의 소득감소와 생활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만남을 시작했는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각자 노점을 시작한 이유에 눈길이 갔다. 사업 실패와 실직이 대개 첫 번째 이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두 번째에 있었다. 돌볼 가족이 있어서, 몸이 아파서, 경력이 없어서, 자신의 기술은 이제 세상에 쓸모없대서 같은 것이 두 번째 이유를 채우고 있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 기술자부터 양장복을 만들던 사람까지 직장을 잃고 노점상이 됐고, 경력 없는 가장이 돼야 했던 여성들과 장애가 있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이 노점상이 됐다.

흔히 학자들은 노점상의 순기능으로 실업과 빈곤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자구적 사회안전망’이 된다는 점을 꼽는다. 반대로 말하면 노점상은 세상의 실업, 빈곤과 관련이 깊다. 더불어 본인이나 가족 돌봄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혹독한 노동환경이 노점상이라는 좁은 길을 연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잘 고려되지 않는다. 왜 노점상으로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고 어쨌든 불법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만 남을 때 노점상들은 합법적인 폭력에 내몰렸다. 노점상들은 노점상 뉴스를 안 본다고 했다.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댓글은 모두 ‘노점상이 밉다’는 얘기로 가득 찼기에 몇 번 마음이 울컥한 이래 뉴스에서 눈길을 떼버렸단다.

노점상에 대한 사람들의 미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한 연구(엄정윤·김승현, ‘노점상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언론의 공간인식 분석’)는 이를 ‘공간의 우생학’으로 분석한다. 노점을 철거한 인공적 환경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공공디자인 사업과 상업적 도시 변형이 노점상 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생학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이념으로의 성격과 배제를 내포했기에 공간 변형의 결과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사회의 내면에 영향을 끼쳤다. 노점상 철거를 위해 구청이 세금으로 ‘철거 용역’이라는 폭력을 사는 것이나 이 폭력을 승인하는 사회의 모습으로 보건대, 차별의 근거가 되는 편견은 이미 확고히 관철된 것 같다.

사라진 노점상, 사라진 비빌 언덕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9292개였던 노점상은 2020년 6079개로 34% 줄었다. 열심히 쫓아낸 결과이기도 하고, 장사가 안돼 스스로 문을 닫은 결과이기도 하다. 100명의 노점상을 만나고 난 뒤 나는 이 숫자가 슬퍼졌다. 서울시가 성과로 보는 이 숫자는 누군가의 비빌 언덕, 삶의 터전이 사라진 자리다.

최근 노점상들은 노점을 불법으로만 명명하지 말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법망을 만들 것을 청원하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노점상만 잡도리해서 만들어지는 깨끗한 거리는 진실을 가릴 뿐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노점상조차 될 수 없을 때 누군가의 생존이 닫힌다는 사실이 좀더 중요한 문제로 다뤄진다면 도시와 함께 노점상이 살 방법,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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