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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힘 큰 책임

등록 2022-01-13 12:58 수정 2022-01-14 01:5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 글은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1년 마지막 극장가를 가득 채운 영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었다. 박스오피스 2위인 <모가디슈>가 총 360만 관객을 모은 것에 비해 <스파이더맨>은 12월 중순에 개봉해서 고작 보름 만에 500만여 관객을 모았으니, 코로나19 유행이 아니었다면 1천만 관객도 가능했다는 말이 오히려 겸손해 보일 지경이다. 나는 마블의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하나도 보지 않았는데 이번 스파이더맨을 재밌게 봤다. 물론 이전 시리즈를 봤다면 더 감동받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예컨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대사가 이전 시리즈에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봤다면 이 말에 실린 무게를 더욱 묵직하게 느꼈을 것이다.

전쟁할 수 있는 능력 6위 한국

큰 힘을 가졌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나는 한국의 막강한 군사력에서 발견한다. 여러 지표가 한국이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한국은 2020년과 2021년 연달아 6위를 차지했고, 전세계 군사비 지출 8년 연속 10위(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연례보고서 기준)를 기록 중이다. 2021년 9월15일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는 함께 살 수 없을 것처럼 구는 거대 정당들도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큰 힘을 갖추는 일에는 합심을 넘어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무기 수출이 연평균 40억달러를 달성했다고 자랑하고, 국민의힘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방산 세일즈’의 초석을 닦았다며 무기 수출을 자신의 공이라 주장한다. 반면 큰 책임을 갖추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얀마, 바레인, 예멘,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 터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이 만든 무기와 시위 진압 장비가 쓰인 나라들이다. 이 지역에서 한국이 자랑하는 강한 힘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데 쓰였지만 양당 모두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벤 삼촌과 메이 숙모가 죽으면서 스파이더맨에게 남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강한 군사력을 구축하고도 더 강해지는 것에만 몰두하는 한국 사회가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큰 힘을 갖추고 과시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11월 참모회의에서 방위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우리는 수출국가이고 대양이 우리의 경제 영역”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통한 평화’를 기조로 하는 정부의 신남방정책, 오스트레일리아와 이집트로 확대되는 무기 수출은 한국 방위산업의 우수성과 경제효과만 요란하게 과시할 뿐 한국의 책임을 논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못하는 비극, 책임질 마음 없는 폭력

스파이더맨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벤 삼촌과 메이 숙모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큰 힘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우리는 막강한 힘에 대한 책임을, 중요한 것을 잃기 전에 깨달을 순 없을까? 우선은 한국의 강한 군사력이 세계 곳곳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강한 군사력에 환호하고 무기 수출 액수에만 들뜰 일이 아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힘은 비극을 낳고, 책임질 마음이 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다. 강한 힘만 추구하고 책임은 방기하는 건 자신이 히어로인 줄 아는 빌런(악당)들이나 하는 행동이지 않은가.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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