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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팀장님 팀장님 베트남인 팀장님 [보이지않는노동자의도시②]

오랜 시간 머문 미등록 신분의 숙련노동자들, 영암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제2의 고향

제1389호
등록 : 2021-11-23 01:32 수정 : 2021-11-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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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선업 블록공장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인구 한 명은 어떻게 더해지는가. 시민 한 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전남 영암군 삼호읍은 한때 인구 한 명, 시민 한 명을 더할 게 명백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무화과 최대 산지 혹은 영산호 국민관광지 정도로 알려진 동네에,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가 들어섰다. 노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는 인구일 것이며, 동시에 시민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1990년대 초만 해도 1만 명이 안 됐던 인구는 2004년 2만 명을 넘어섰다. 삼호면에서 삼호읍이 됐다.

2021년 9월 말 삼호읍 인구는 2만1436명, 적지도 많지도 않다. 소멸 위기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는 전남 영암군치고는 많은 편이다. 이제는 동네 이름보다 더 유명한 조선소와 산업단지를 품은 동네치고는 적은 편이다. 인구를 둘러싸고 삼호읍은 낯선, 다만 인구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무척 중요한 고민을 앞서서 한다. 불황의 경험 덕분이다.

조선업 불황기 갑작스러운 인구 감소를 겪었다. 젊은 내국인 인구가 크게 줄었다. 쉽게 들고 날 만큼 조선업 노동은 유연해져 있었다. 이제 조선업이 회복 기미를 보인다. 내국인 노동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만큼 노동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채웠다. 다만 상당수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돌아보고 알았다. ‘일자리 하나=인구 한 명’이 아니었다. 노동의 자리가 언제든 쉽게 들어오고 밀려나는 극단적으로 유연한 형태일 때, 국내 노동자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구 1명이었다. 주민등록지조차 ‘영암군 삼호읍’으로 두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지역에 사는 미등록 이주자는 어떤 숫자로도 기록되지 않는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가득 찬 출근길, 외국어 간판이 더 많은 거리 곳곳 분명 한 사람, 한 사람 존재하는데 삼호읍 시민은 아니다. 인구가 아니다.

삼호읍에 10월27일부터 11월5일까지 열흘 동안 머물며 스물한 명을 만났다. 원주민, 합법 외국인 물량팀장, 미등록 외국인 물량팀장, 한국인 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외국인 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외국인 대불산단 블록업체 하청업체 노동자, 한국인 하청업체 대표 등이다. 한국인-외국인, 합법-미등록, 사내하청-물량팀이 뒤섞인 어지러운 호명은 조선업과 대불산단, 삼호읍의 인구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힌트를 준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호읍이 던지는 인구에 대한 고민, 시민 혹은 노동자의 삶과 생각을 대불산단과 거기에 딸린 주거단지의 평범한 하루로 재구성해서 전한다._편집자주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공공)기관 종사자가 아닌 한 모두 가명으로 적었다.

[보이지않는노동자의도시①]“출근길이 꼭 외국 같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232.html

3장 회색 노동
PM 3:00, 블록공장 컨테이너

두드리고, 녹여 붙이고, 갈아내는 소음을 막기에 얇은 벽은 역부족이다. 벽에는 화이트보드 4개가 붙어 있다. 세간이라 부를 만한 건 사물함 여섯 칸, 소파, 책상 정도다.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번갈아 적힌 종이로 창은 가려뒀다.

대불국가산업단지의 한 블록업체 공장 한쪽에 컨테이너 사무실 5~6개가 줄지어 있다. 물량팀 사무실이다. 후이(35)가 소파에 앉는다. 잠시 쉬러 온 동료와 옆 물량팀장이 와서 몇 마디 나누곤 까르르 웃는다. 후이는 베트남인 17명과 타이인 1명을 이끄는, 베트남인 물량팀장이다. 조선업 특유의 노동형태인 물량팀은 공정별로 팀을 구성해 조선소나 하청업체를 돌며 일감 단위로 계약해 노동한다. 후이의 팀은 사상(용접 부위나 표면의 거친 부분을 다듬거나 갈아내는 작업) 공정을 맡고 있다. 지금 작업 중인 블록은 물량팀 3곳이 각각 사상, 취부(가용접), 용접을 나눠서 하는데 용접 쪽 물량팀장만 한국인이다. “용접도 일하는 사람은 다 외국인이에요.”

후이는 2009년 한국에 왔다. 일한 지 벌써 12년째, 숙련노동자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한국인과 결혼해 합법 체류 자격을 구했다. 그의 동료는 “대부분 미등록이다”. 후이는 물량팀장의 일을 “친구를 돕고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모아 팀을 꾸린다. 고향 친구, 한국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알음알음 모았다. 외국인 네트워크는 그의 자산이다. 조선업이 회복되면 고국 친구가 더 많이 모일 거로 후이는 짐작한다. 일감 물량을 받아와 일정을 짠다. 매일매일 진행 상황을 관리한다. 여느 상사처럼 가끔 엄하게 굴고, 뒤돌아서 미안해한다.

농업과 조선업을 오가는 유령들
유령의 흐릿함에 등급이 있다면, 그의 팀에 속한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는 가장 흐릿한 축에 속한다. 누구이며, 얼마나 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고용 통계뿐만 아니라 인구·사회 통계에서도 그렇다. 법무부가 불법체류자 통계를 내고 있지만,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건 떠났다는 사실과 어디서 떠났는가 하는 정도다. 이들이 떠나서 어디에, 무엇을 하며 머무는지는 알 수 없다. 대불산단 블록공장 등 사내하청업체의 “60% 정도가 외국인이며, 많게는 최대 80%까지 외국인들이 일하고 있다”(배규식 외,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대책>)고 본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로 조선업 전반에 퍼져 있으리라 짐작한다. “거제 같은 좀더 큰 조선업 도시도 상황이 다르지 않을 거예요.”(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소장)

농업이나 건설업, 영세 제조업에서 주로 이야기됐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조선업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점하게 됐다. 국가주도 개발 시대의 산업 역군, 높은 임금을 성취한 중산층 정규직, 한국인 불안정 노동자로 변해온 조선업 노동자의 표상을 외국인이 이어받았다.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도 어떤 면에서는 ‘최적의 유연노동자’로 임금에 따라 작업장과 팀을 옮겨다닌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금세 다른 팀으로 가버리기도 해요.”(후이) 한 사업장이나 회사에 속할 의무가 없으므로 다양한 일을 돈다. “농번기에는 농촌에서 돈을 더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럼 또 그쪽으로 우르르 가버리기도 하고요. 농촌이든 제조업이든 외국 인력 쟁탈전인 거죠.”(A블록업체 임원)

미등록 신분일지라도 숙련노동자가 돼 있다. 4년10개월짜리 비전문 취업비자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으나 중간에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더 오랜 기간 머물며 미등록 신분이 된 외국인노동자가 많다. “불법이면 오래 일한 거고, 그럼 일 더 잘해요, 안 그래요?”(보우킴따이)

이제 막 사람이 귀해지기 시작한 대불산단, 더 나아가 한국인이 찾지 않는 농촌, 건설현장, 공장에서 미등록 외국인은, 나름의 협상력을 더해간다. 코로나19로 외국 인력이 귀해지며 한층 귀한 존재가 됐다. 아직 내국인에 견줘 외국인노동자 임금은 대체로 낮다. 그래도 “한때는 내국인 3분의 1 수준이던 임금이 지금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올라왔다”고 A블록업체 임원은 말했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자유는, 불황기에 언제 어디서든 사라지고 옮겨질 가능성과 같다. 후이는 조선업 불황기인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동안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보우킴따이는 그 시기 주로 “농사일을 했다”. 한 달 동안 벌어야 할 돈은 정해져 있으므로 조선소에 일감이 없다고 쉴 수도 없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눌란은 지난 주말에도 빈 일감을 스스로 채웠다. “일 없으면 쉬고 돈 못 벌어요. 이번주에도 인력사무소에 가서 ‘사장님, 일 주세요’ 공사장에 가서 청소했어. 여기서 하루 13만원, 공사장 하루 13만원. 그러니까 결국 한 달 버는 돈은 같아요.”

전남 영암경찰서 삼호지구대원이 삼호지구대에서 개발해 사용하는 ‘외국인 의사소통 보드’를 들어 보였다.

“한국인은 그래도 혜택 받잖아요”
합법 노동자인 후이조차 일하고 돈을 제대로 못 받은 때가 꽤 있다. “액수가 적을 때는 도움을 청할 데가 마땅치 않아 그냥 넘어갔다.” 미등록 처지인 베트남 친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고향 사람들한테마저 배신당한다. “한국 사람이든 베트남 사람이든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어요. 나쁜 팀장이랑 일하다가 돈 못 받은 친구도 많아요.”

산업단지에서 이들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하나, 공식화할 수 없다. 답을 찾기 어려운 회색지대다. 회색 공간에 있는 미등록 노동자인 후이네 팀원은 어느새 사무실에 들어와 “꼭 하고 싶은 말 있어요. 한국인들 일자리를 줄였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해야 해요. 한국인은 어느 정도 혜택을 받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잘 안 하려는 일을 우리가 하는 거예요” 하고 다급하게 말을 얹더니, 다시 일하러 갔다.

회색지대는 노동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삶도 그렇다. 이들의 집, 원룸이 있는 대불 주거단지에서는 염려와 고민이 교차한다. 물론 환대도 있다.

4장 뒤섞임
PM 4:00, 삼호지구대

대불 주거단지 큰 길가에 경찰서인 삼호지구대 건물이 있다. 김경준 지구대장은 ‘의사소통 보드’를 들어 보인다. 영어, 베트남어, 우즈베키스탄어 등 7개 언어로 만든 종이판이다. ‘잃어버렸다’ ‘폭행당했다’ ‘사기당했다’ 같은 주요 단어를 한국어와 나란히 적어두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건·사고의 전모를 파악한다. 우즈베크 유학 경험까지 있는 지구대원 한 명이 아이디어를 냈다. “전국 최초였는데, 여기저기서 벤치마킹해가고 격려도 많이 받았어요.”

다만 의사소통 보드만으로 외국인 밀집지역이 된 동네의 독특한 고민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버렸을 때, 자기가 피해자여도 경찰서로 오는 게 아니라 도망가버리는 실정이죠.”(김경준 지구대장) 사건에 연루되면 추방을 각오해야 하는 미등록 체류자는 사법제도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출근 물결을 이루는 오토바이만 해도 경찰한테 마냥 진풍경일 수 없다. 미등록 체류자가 많으므로 무등록 오토바이도 많다. 경찰은 대불체육공원이 잘 보이는 자리에 무등록 오토바이 단속 펼침막을 내걸고 2021년 7월 단속을 시작했다. 쉽지 않다. “무등록 오토바이 문제로 단속당해 신원이 드러날까 두려우니까 외국인이 숨어버려요. 그럼 산업단지가 돌아가지 않죠. 국가경제가 마비되죠.” 동네의 작은 지구대에서 국가경제의 우려를 듣는 일쯤은 대불 주거단지에서 별일 아니다.

무등록 오토바이를 단속하면
‘산업적 필요 때문에 탄생한 이주노동자를 기존 공동체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디까지 시민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는 오랜 질문이다. “19세기 후반 처음 출현한 이주노동자 제도는 단기간 이주하여 노동력을 제공한 후, 취업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본국으로 귀국할 것을 약속하는 식으로 설계되었다. …생산요소로서 노동력만 공급받는 것이 이주노동자 제도의 기본 취지였지만, 인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노동력 상품의 특성상 사람이 이동하여 거주하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설동훈, ‘국제노동력 이동과 외국인노동자의 시민권에 대한 연구’)

존재하나, 시민의 목소리는 없는 이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걸 토박이들은 깨닫는다. 공터에 쌓인 쓰레기랄지, 정리되지 않은 인도를 짚어가며 이 동네에서 건축업을 하는 현민수는 “여기는 목소리가 낮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잖아요. 표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낙후돼 있죠. 생산에 기여하는 사람들이지만 목소리는 작으니, 정주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서울 이태원처럼 세계 문화 거리를 조성하자는 제안은 나온다. 아직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제도나 인프라보다 이주자를 먼저 환대하는 건 의외로 소비, 거주 등으로 얽히게 된 동네의 선주민들이다. 대불산단에서 원룸 관리를 하는 이명자(78)는 “사람 다 똑같아요. 지나가다 만나면 귤도 하나씩 쥐여주고. 이 사람들이 정이 있어” 했다.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 나갔던 친척 얘기를 한참 하더니, 불현듯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나 보고 싶겠어, 가족들.”

대불산단만 그런 건 아니다. 경기도의 한 공단을 연구한 논문(김현미 외, ‘미등록 이주민의 사회적 관계와 지역 재생산’)은 “미등록 이주민들이 거주하고 노동하며 소비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역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 참여하면서 ‘불법’ 이주민이라는 주어진 정체성을 뛰어넘어 주체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논문을 인용했다.(McNevin, ‘Irregular migrants, neoliberal geographies and spatial frontiers of the political’, 2007) 사람의 구체성은 ‘불법’을 뛰어넘는다. 그 구체적인 관계를 만들게 해주는 자기 동네, 영암군 삼호읍을 보우킴따이는 이렇게 소개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동네. 그래도 내 나이 마흔하나. 스물여덟에 왔으니까 어른 되고서 베트남 생활, 한국 생활 똑같아. 그래서 제2의 고향.”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서문에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

5장 있고, 없다
PM 6:30, 동네 식당

제2의 고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나의 동네, 대불 주거단지로 보우킴따이, 꾸엉, 후이는 무사히 퇴근해 돌아왔다. 꾸엉은 이 동네에서 베트남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원룸 이웃으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생일에 친구들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줬어요.” 그런 순간에 “고향 부모님한테 맡기고 온 세 살, 다섯 살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잠시 잊는다. 후이는 베트남인 축구팀을 꾸렸다. 삼호읍에는 현대삼호중공업 사내에 한 팀, 후이가 만든 한 팀이 있다. 후이는 “사내에 있는 팀은 팀원들이 어리다”고 은근히 자기 팀의 연륜을 자랑한다.

보우킴따이는 원룸 주인 강성호와 저녁을 먹는다. 보우킴따이가 강성호네 원룸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쯤 됐다. 식당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동안 잠깐 사라졌던 보우킴따이는 박카스 몇 병을 사들고 왔다. 그는 “회사에서 차로 데려가고 데려다주고 할 정도로” 자신이 싹싹하고 신뢰받는 노동자가 된 걸 자랑스러워한다. “의리, 의리가 중요해”를 신조처럼 외친다. 보우킴따이의 삶만큼이나 강성호의 삶도 변했다. 나이 육십 넘어 동네 골목에 자리잡은 마라탕집이나 양꼬치집, 베트남 음식점을 꿴다.

“의리 의리”의 신뢰받는 노동자
문득 “미안해요, 나 불법이에요”, 보우킴따이가 시선을 떨군다. 그는 ‘불법체류자’라서, 영암군 삼호읍의 인구로는 없다. 숙련노동자로는 있고, 원룸 세입자로도 있고, 능숙한 젓가락질로 육회를 집어드는 식당 손님으로는 있는데, 시민으로는 없다. 삼호읍의 주민으로는 없다. 소멸 위기 지역의 희망으로는 없다. 이토록 복잡한 자기 존재의 기원을 따져보기에 앞서 보우킴따이는 대뜸 사과부터 하고 본다.

잠시 침묵, 강성호의 잔소리는 좀 남았다. “안주 좀 먹어. 내일 또 일 가야 하는데 술 좀 천천히 먹어.” 보우킴따이는 언제 의기소침했냐는 듯이, 강성호의 팔을 건드린다. “영감 팔 통통해, 내 팔 얇아. 많이 먹으면 영감처럼 돼.” 식탁 위로 굵기도 피부색도 다른 두 팔이 올라왔다. “영감 말고 형님이랬지!” 강성호는 외친다. 원룸 주인과 투덕거리는 이런 순간에 보우킴따이는 분명, 있다.

영암=글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회색지대 ‘숙련·생산직·외국인 노동자’
미등록 불법체류자 느는 이유

삼호읍 사람들이 짐작하듯 미등록 이주자의 규모는 통계에서도 계단처럼 늘었다. 법무부가 집계하는 불법체류자는 2014~2016년에는 해마다 20만 명 수준을 유지했다. 2017년 25만 명으로 늘어나더니 2020년에는 39만2195명에 이르렀다. 대부분 노동하기 위해 비자 기한을 넘겨, 혹은 정해진 사업장을 이탈해 한국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왜 증가했는가? 결국 ‘(불법 여부에 관계없이) 외국 인력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이규용 외, <외국인 비합법 노동시장 연구>)

외국인 노동력은 수요가 커지는 만큼 복잡해지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단순 노무·저임금 노동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반대로 세련된 화이트칼라 전문 인력을 넘어선다. 그 사이 광대한 영역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요구한다. 대불국가산업단지와 조선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아예 일하러 오지 않는다”고 대불산단의 한 도장업체 대표는 하소연했다. 분야별 숙련이 중요한 조선업 생산 현장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지닌, 또한 젊은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는 물량팀장 역할을 맡기도 하고, 팀을 옮겨다니며 몸값을 높이기도 한다. 인구 고령화와 한국 젊은이들이 발 들이기 어려운 노동조건 사이에 외국인이 자리잡았다.

제도는 아직 ‘숙련, 생산직, 외국인’이라는 거대한 노동 공간을 회색지대로 남겨뒀다. 합법적인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은 단순기능인력 자격(2020년 기준 40만9039명)으로 한국에 머문다. 한 차례 체류 기간은 4년10개월로, 숙련을 쌓기에 부족한 시간이다. 기술을 익혀 전문인력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전문인력으로 선발하는 이는 한 분기에 130명뿐이다. 바늘구멍이다.

재하청과 물량팀이 만연한 조선업 노동환경 또한 미등록 체류를 유도한다. 합법 체류자는 정해진 사업장에 속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게다가 숙련 인력이 귀한 상황이라면 한 사업장에서 정해진 임금을 받기보다 이 팀 저 팀 옮겨다니며 더 많은 임금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노동자가 사실상 불법파견 업체에 속해 일한다. 한국인이 만든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와 고용형태를 그대로 외국인이 답습하고, 이는 미등록 체류로 이어진다.

수요와 공급뿐인 정글을 배경으로 숙련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는 떠돈다. 임금체불, 경기변동, 산업재해 같은 각종 위험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단속의 두려움도 물론, 개인 몫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소장은 “업종에 따라 외국인의 숙련을 좀더 넓게 인정해 비합법적인 노동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복잡한 문제다. 노동력 감소를 외국인으로 메우는 일이 단순할 순 없다. ‘내국인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내국인과 경합해 전반적인 일자리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는 지켜야 한다. 왜곡된 노동구조가 만연한 산업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같은 산업이래도 시점(호황 혹은 불황)에 따라 다른 처지, 역시 고려해야 한다. 유연하되 세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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