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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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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정치적 싸움, 많이 변했다”

<마인드포스트> 박종언 편집국장 인터뷰
등록 2021-11-16 13:48 수정 2021-11-17 05:07
박종언 제공

박종언 제공

정신병동을 폐쇄하는 데 헌신한 정신의학자가 있다. 이탈리아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1924~1980)다. “의사의 권력은 환자의 권력이 감소되는 만큼 터무니없이 강해진다. 환자는 감금됐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권리 없는 시민이 되고, 자신을 마음대로 다루는 의사와 간호사의 전횡에 내맡겨지고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조차 갖지 못한다.” ‘바살리아 운동’이라 이름 붙은 정신병원 폐쇄운동으로 이탈리아에선 정신병원이 점차 문을 닫고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이 세워졌다.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이 혁명적 운동으로 이탈리아는 ‘정신병원 없는 나라’가 됐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 인권을 말할 때 늘 밀려나는 이들이 정신장애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우생학적인 장애인 정책과 의식은 아직 잔존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초 정신의료기관인 경북 청도 대남병원과 대구 제2미주병원에서 각각 100명이 넘는 집단감염자가 나오면서 잠시 폐쇄병동 환자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했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위드 코로나’를 코앞에 둔 2021년 10월 경남 창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또다시 100명 넘는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났다. 2021년 정부가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으나 거기서도 정신장애인은 누락됐다.
그리고 임계점이 왔다. 10월5일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철폐를 위한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연대’가 출범했다. 30여 개 장애인단체가 모였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정신건강복지법 중복 수혜’를 이유로 정신장애인을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했다며, 이들은 손팻말을 들었다.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침묵했던 정신장애인들이 비로소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말하기’는 운동을 넘어 전방위로 터져나오고 있다. 2018년엔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당사자 언론이 만들어졌다. 몇 년 새 출판시장에선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의 회복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장애인 인권운동의 핵심 모토인 이 말은 정신장애인들의 말하기를 관통한다.
<한겨레21>은 정신장애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 사회복지사, 전문의 등 15명을 인터뷰했다. 권위 있는 이들의 분석이나 주장이 아니라 정신장애를 경험한 동료시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 통계적으로 인구 100명 중 1명은 중증 정신질환자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믿는다._편집자주

정신보건법이 처음 제정된 1995년.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인 한국정신장애연대(KAMI·카미)가 처음 꾸려진 2010년.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 <마인드포스트>가 창간된 2018년. 한국 정신장애인들의 투쟁사를 쓴다면 연표에 고딕체로 새겨넣을 만한 지점들이다. 소거됐던 목소리들이 자신들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견고하게 닫혔던 세상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배제와 격리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걸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편견을 가진 사람이든 그들에게 우리의 존엄이 왜 훼손돼서는 안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큰 것을 얻으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사자 언론 <마인드포스트>의 기치다. 정신장애 때문에 30대 초반 기자생활을 그만둔 박종언(51·사진)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은 당사자로서, 기자로서 십수년 만에 다시 취재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그 자신이 병을 얻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지켜보니, 미디어는 정신장애인을 조롱하거나 두려운 존재로만 묘사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정신장애에 대해 모르죠. 조현병을 가진 딸이 60대 어머니의 뺨을 때렸다고 기사를 씁니다. 기사화될 이유가 없는 내용인데 정신질환자가 주체라는 이유로 보도가 나오죠. 정신장애인을 사회 안전에 문제가 되는 존재로 학습하고 치안적 통치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2015년 여름, 기자 출신 당사자와 기자 출신 사회복지사(최정근 <마인드포스트> 감사) 두 사람이 뜻을 모았다. 박 국장의 간절한 말에 최 감사와 사회복지학 전문가 등 우군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매주 수요일에 모여 취재 경험이 없는 당사자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취재 훈련을 했다. 3년 만인 2018년 6월11일 언론사 문을 열었다.

창간 뒤 박 국장 표현대로 끝없는 “정치적 싸움”이 시작됐다. 국회의원, 정당의 대표, 장관을 가리지 않고 차별과 모욕의 말을 쉽게 내뱉었고 언론은 무감각하게 받아적었다. <마인드포스트>는 끈질기게 이를 정정했다. 그동안엔 이렇게 달라붙어 고쳐주고 싸워주는 언론이 없었다. <마인드포스트>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당사자들도 용기 내어 싸울 수 있었다. 정치인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게 하고, 방송사에서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스무 군데 정도 항의하면 7~8군데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고쳐나갔습니다. 창간한 2018년만 해도 정신장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편견에 방송사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위기가 생겼고요. 자랑이 아니고,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그동안 정신장애에 대한 관점을 주도해온 정신의학계이기도 하다. 폐쇄병동 입원 중심의 회전문식 치료 구조에서 당사자는 배제돼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치료 과정을 거치며 한국 정신보건의 문제가 무엇인지 체감해왔기에 당사자들의 문제의식은 더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신장애인들은 의료권력, 그들이 판단하는 진단명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였거든요. 자신들의 경험이나 치유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담론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더 많이 목소리를 내고, 싸워가려고 합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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