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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샴이 처음 들은 이야기

등록 2021-11-10 08:00 수정 2021-11-12 11:5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2021년 10월22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2021 서울 아덱스(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평화활동가들이 현대로템의 K2 전차에 올라갔다. 그들은 ‘K-방산 살인을 수출하지 말라’고 쓴 펼침막을 들었다. 그들이 탱크 위에서 펼침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동안, 나는 무기 상인들의 돈벌이와 전쟁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피 묻은 달러’를 하늘에 흩뿌리며 히샴을 생각했다.

‘피 묻은 달러’를 뿌리며

2021년 5월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를 처음 만났다. 예멘 내전의 한복판에서 히샴은 학교에 들이닥친 반군에 끌려가서 소년병 입대를 강요당하다 탈출해서 한국으로 왔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심사에서 떨어졌고, 인도적 체류 자격으로 머무르며 난민 심사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히샴의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그에게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를 다시 아랍어로 번역했고, 답변을 미리 달라고 요청했다.

히샴은 답장을 굉장히 늦게 보냈는데 그나마도 문장이 엉망이었다. 알고 보니 히샴이 직접 쓴 글이 아니었다. 히샴은 글을 쓸 줄 몰라서 친구가 대신 써줬다. 아랍어는 읽을 수 있어도 쓰기가 어려운데다, 예멘이 오랜 기간 내전 중이라 학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히샴처럼 글을 쓸 줄 모르는 청소년이 제법 많다고 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평범하게 쓰는 사람, 글솜씨가 좋지 않은 사람으로만 이뤄진 세상에서 살아온 내게 정규교육을 받았는데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쓰고 읽는 능력은 21세기에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기본적인 걸 앗아간 것이 전쟁이었다.

히샴과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준비하지 않은 질문을 했다. 예멘 내전에 한국 기업 한화에서 만든 무기가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히샴은 당황하더니,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히샴의 당황하는 표정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물론 예멘 내전의 가장 큰 책임은 유엔이 지적한 것처럼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에 있고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 지원을 한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있다. 그리고 아덱스 같은 무기박람회를 개최한 한국 정부와, 아랍에미리트에 무기를 판 한국 군수산업체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

나는 전쟁의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만 지우고 싶지 않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다룬 책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독일인의 전쟁 책임을 말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다양하게 있었지만, 그리고 그 정보를 알고 알리는 것이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이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은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애써 외면했다. 레비는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고의적으로 외면한 죄

평화활동가들이 K2 전차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친 것은 예멘 내전을 포함한 세계의 각종 군사분쟁과 전쟁에서 한국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5년 사이 한국은 무기수출액이 210% 늘었고 세계 9위의 무기수출국이란 사실을, 나날이 규모가 커지는 아덱스에서 거래되는 무기가 전쟁범죄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히샴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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