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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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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기도 보내기도 어려운 무연고자의 죽음

개인정보 보호 이유로 소재 파악 늦어져, 병원비 미납하면 장례도 못 치러
‘제도 밖’ 무연고 환자는 병원도 주소지·보호자 등 정보 제공받기 어려워
등록 2021-11-03 14:35 수정 2021-11-03 23:31
2021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2021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한겨레21>은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 리포트’의 마지막 편으로, 누구도 존엄하고 외롭지 않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한다.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살폈다. 여러 제도적, 사회적 해법도 다룬다. 영국, 일본 등 고독사 문제에서 한국보다 한발 앞서간 나라의 현실도 직접 전한다. _편집자

김준호(가명)씨가 친구 이기영(38·가명)씨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건 2021년 7월8일이다. 이날은 김씨가 경찰서에 이씨 실종 신고를 낸 뒤 12일째, 그리고 이씨가 숨진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던 이씨와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자, 김씨는 경찰에 ‘실종 및 고독사 의심’ 신고를 했다. 이기영씨 건강이 좋지 않았던데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외아들이라 형제도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 휴대전화가 “자연 방전된 뒤 꺼졌다”는 사실만 알려줬고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법적 가족이 아닌 친구들이 제공받을 수 있는 정보는 사실상 없었다.

사망과 장례 사이에 벌어진 일

김씨는 결국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씨가 살던 지역을 샅샅이 탐문했다. 이씨와 만나고 헤어질 때면 늘 “(서울) ○○사거리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했던 기억을 토대로 주변을 뒤졌다. 알고 보니 이씨 거주지는 사거리 근처의 한 고시원이었다. 고시원 관계자는 6월 초 동주민센터 직원, 119구조대, 경찰까지 함께 와서 갑자기 쓰러진 이씨를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전했다. 수소문 끝에 동주민센터 직원과 119구조대원까지 찾았으나 역시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이씨의 소재를 찾지 못했대.

친구들은 인근 대형병원들까지 돌아다니며 이씨를 애타게 찾았다. 김씨는 7월8일 경찰로부터 “이씨가 한양대병원에서 6월9일 숨졌다”는 소식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사망원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무연고자의 마지막 순간은 종종 지체된다. 질환을 발견하고 치료받을 때부터 사망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제도적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과 보건복지부 행정지침인 ‘2021년 장사업무 안내’ 등에는 무연고자의 장례 절차, 책임 주체가 관할 지방자치단체라는 점만 규정돼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의료비 지급 등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제도상으로는 없다. 이 때문에 무연고자가 장례식장 안치실에 오래 머물게 되거나, 치료 단계가 아니라 숨진 뒤라야만 연고자를 만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이기영씨 경우도 오랜 친구들이 직접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숨진 뒤 석 달이 지난 9월19일에야 장례식이 진행됐다. 이씨 소재 파악이 늦어진데다, 병원 쪽이 ‘의료비 미납’을 이유로 사망진단서 발급을 지체했기 때문이다. 김준호씨는 “한양대병원 쪽이 병원비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는 사망진단서를 써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잔금을 치르지 못해 시신이 3년 동안 안치실에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가 친구들과 함께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병원비 150여만원을 낸 뒤에야 한양대병원은 성동구청에 ‘무연고자 사망’을 통보했다. 김씨와 친구들은 구청에 ‘장례주관자(연고자는 아니지만 사망자의 생전 의사에 따라 유골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수 있음)가 되겠다’고 별도로 신청해, 9월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병원비 못 내 3년 이상 안치된 시신도”

현행 규정대로라면 병원에서 무연고자가 치료받다가 숨진 경우, 병원 소재지 시·군·구가 공영장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이씨처럼 병원이 의료비 미납 등을 이유로 사망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팀장은 “한양대병원에서만 병원비를 이유로 사망진단서를 받지 못해 3년 이상 안치됐다가 공영장례를 치른 두 분의 무연고 사망자가 계셨다”며 “(연고자가 없어) 의료비를 정산할 수 있는 주체가 없는데도 병원 쪽이 ‘의료비를 내야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준다’고 압박하면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양대병원 쪽은 “병원비가 수납돼야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것은 모든 병원이 동일하다. 무연고 사망자 처리 과정에서 예외적으로 연고자가 있는데도 병원비 납부를 거부하는 경우 (사망진단서 발급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마치 탐정놀이를 하듯이 친구를 찾았다”고 답답해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무연고자가 숨진 이후만이 아니라, 생전에도 제때 복지제도 혜택을 받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행려환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주로 입원하는 공공병원에서도 이런 답답함을 호소한다.

김희정 서울의료원 의료사회복지팀장은 “행려환자로 승인받는 경우 국가의 의료급여 체계 안에서 관리받을 수 있어 (이후 절차에) 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행려환자로 승인받지 못하는 경우”라며 “병원 쪽에서 (다른) 지원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불승인된 정확한 이유와 환자의 주소지를 알아야 하는데 개인정보란 이유로 지자체에서 아무 정보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쓰러져 119나 경찰 신고로 응급실에 입원하는 무연고 환자가 의료비 등을 지원받으려면 그가 발견된 지역의 지자체가 ‘행려환자’로 승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는 △일정한 거소가 없는 자 △경찰서·소방서 등에 의해 병원에 이송된 자 △응급환자임이 진단서상 확인되는 자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이 없는 자,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행려환자로 승인하고 의료급여 1종 수급자로 인정한다.

의료급여를 지원받지 못하는 제도 바깥의 무연고자들도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좀더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의료급여를 지원받지 못하는 제도 바깥의 무연고자들도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좀더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행려환자 불승인되면 병원도 속수무책

김희정 팀장은 지역사회와 병원 간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다보니 “가족이 (다른 지역에서) 실종신고를 하고 애타게 찾는 경우도 있는데 (병원과) 연결이 안 되”고, “병원도 보호자 유무를 알기 어려워 환자 치료 방향과 범위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고, 행려환자로 승인받지 못한 무연고자라도 “공적 체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받거나 사망 뒤 (공영)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이처럼 제도 밖에 놓인 무연고자가 만성질환으로 치료나 돌봄이 필요하면 공공병원을 옮겨다니며 살거나 요양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서울시는 이들을 위해 ‘안전망 병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보장제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지속해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일부 민간의료기관을 ‘안전망 병원’으로 지정하고, 시립병원과 연계해 공공의료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성가복지병원, 다일천사병원, 요셉의원 등 복지재단이나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이 대표적인 ‘안전망 병원’이다.

이곳에서도 무연고자들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 진행된다. 연고자를 찾거나, 말소된 주민등록번호를 재등록할 수 있도록 돕거나,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주거나, 시설과 연계할 수 있도록 병원이 지원하는 식이다. 하지만 원활하게 이뤄지긴 어렵다. 정성숙 성가복지병원 사회사업과 팀장은 “개인정보 관련 부분이 까다로워지다보니 보호자를 찾기 어렵고, 민간병원이라 (관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더 힘들다”며 “특히 호스피스로 오는 환자들은 돌아가신 뒤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된 뒤에야 (구청을 통해)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알코올중독 등이 있는 무연고 환자의 경우 퇴원한 뒤 외래진료를 다니다가도 결국 나중에 혼자 돌아가신 뒤 발견되는 일이 있다. 지역사회 안전망이 좀더 촘촘해져서 (이런 경우) 병원과 빨리 연계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제도 밖에 있는 무연고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선 각종 제도가 좀더 세밀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존엄한 작별을 위하여

김준호씨는 “만약 한양대병원에서 (이씨가) 숨진 6월9일 직후 바로 무연고자로 사망 처리를 했다면 마지막으로 주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이미 장례가 끝났다는) 더 허망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며 “(사망진단서를 늦게 발급해준) 병원이 괘씸하면서도 결과적으론 친구를 직접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모든 무연고자에게 김씨처럼 뒤늦게 의료비를 완납해줄 지인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무연고자라도 제도 안과 제도 밖의 온도차는 크다. 행려환자나 의료급여 수급자로 승인받지 못하면 복지체계 밖에 머물 수밖에 없다. 돈을 이유로 무연고자의 죽음을 ‘승인’받는 일이 지체되지 않을 때, “제도 ‘밖’에 있는 사람까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정성숙 팀장) 방법이 마련될 때, 그제야 무연고자도 존엄한 작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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