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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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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이즈 커밍

등록 2021-10-28 15:49 수정 2021-10-29 00:25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연일 허둥지둥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스카프와 겉옷을 하나씩 든든하게 챙겨다녔는데도 밤이 되면 몸이 덜덜 떨렸다. 10월15일까지는 가장 따뜻한 10월 날씨를 기록하다가 10월16일부터 0도에 육박하는 기온을 보고 있으려니, 기후위기는 단지 기온 상승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기상 이변으로 나타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놀랍지 않다, 날씨가 불평등의 지렛대

기후위기에 따른 영향은 동일하지 않다. 질병관리청이 집계하는 온열질환자와 한랭질환자 발생 통계로 유추해보면 날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단연 외부에서 일하는 작업자다.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질병이 발생할 때 그 장소가 ‘집’인 경우는 압도적으로 많다. 이 통계는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는 작업환경, ‘집’답지 않은 집에서 사람들이 병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날씨조차 불평등의 지렛대가 된다. 놀랍지 않은가!

농담이다.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을 안다. 찬 바람이 불면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는 ‘추위 속 빈곤층의 현실을 다루고 싶다’는 언론사 요청이 자주 온다. 바야흐로 빈곤층 성수기랄까. 그러니 모두 이 문제를 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 알지만 이 현실을 실제 문제로 다루는 사람이 없다. 정확하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방관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혹서기, 혹한기를 비롯한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자 작업중지권이나 비적정주택에 사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수없이 제안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겨울에도 홈리스행동은 △한파를 자연재해로 판단해 거처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긴급주거지원을 실시할 것 △쪽방과 비닐하우스 등 비적정주택 거주자에게 응급쉼터를 제공할 것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최저주거기준을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이행되지 않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응급쉼터를 마련했지만, 인구 50만 명인 어느 구에선 응급쉼터가 단 30곳에 불과했다. 긴급주거지원도 확대하지 않았다. 방음·환기·채광·난방 설비를 적절히 갖추라고만 얼버무리는 최저주거기준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

지난여름 오세훈 서울시장은 양동 쪽방촌에 폭염 순시를 나왔다. 쪽방 몇 개를 둘러보고 바닥에 물을 뿌리는 시장에게 쪽방 주민들은 ‘선풍기 틀어봤자 더운 바람만 나온다, 주거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슷한 시기 국민의힘 대표단은 동자동 쪽방촌에 왔다. 생수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러 온 대표단을 향해 동자동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맹물 말고 공공주택!”이라고 외쳤다. 그날 저녁 뉴스에는 팻말을 든 주민들의 등만 나왔다. 스포트라이트는 봉사활동을 나온 정치인들을 향했다. 카메라 방향은 반대로 있어야 옳았다. 주거권을 요구하는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가 폭염 대책이고 기후위기 대책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집에 머물 것’이 성립하려면

무가 깊이 자라면 겨울이 춥다고 한다. 농부들은 무를 뽑으며 겨울 추위를 예측해본다던데,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무의 선견이 통할지 모르겠다. 자랄 땅도, 비집을 흙도 없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겨울은 또 어떤 시간이 될 것인가. 한파가 닥친 뒤에야 ‘한파 속 빈곤층’ 찾을 생각일랑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겠다. 집다운 집이 있어야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최대한 집에 머물 것’ 아닌가. 마땅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대책에는 침묵하고 봉사활동으로 선심 쓰는 것, 더 이상은 ‘노 땡큐’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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