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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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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노동운동] 가볍고 신중하게 잽잽잽

‘스타벅스 트럭시위’로 주목받은 MZ세대의 새로운 저항 방식
‘공정한 보상’ 우선시하고 가장 어울리는 방식 찾아 가볍게 저항
등록 2021-10-23 17:20 수정 2021-10-29 11:27
2021년 10월7일 오후 스타벅스 파트너(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시위 트럭’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스타벅스 1호점 앞에 멈춰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21년 10월7일 오후 스타벅스 파트너(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시위 트럭’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스타벅스 1호점 앞에 멈춰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그렇게 MZ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자)는 노동자가 되었다. 정치하는 MZ, 소비하는 MZ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노동하는 MZ’는 중요하다. 노동하는 MZ가 중요하다면 노동운동하는 MZ도 중요하다. 노동운동은 일하는 나와 세상을 잇는다. 어떤 형태로든 연대하게 만든다. 요구하게 만든다. 고민하게 만든다. 노동운동은 늘 세계를 조율하는 한 축이었다.
MZ의 노동운동은 어쩌면 달라 보인다. 블라인드 앱에 글을 올려 시위를 만들고, 서로 누구인지 모른 채 노동조합을 꾸릴 수 있다. 조합 상근자 대신 ‘스탭’이라고 서로를 이른다. ‘위원장을 맡는다’는 문장 대신 ‘총대 멘다’고 적는다. 상급단체를 두지 않는 개별 노조로 시작했다. 노조 없이도 운동은 가능하다. 보상체계의 공정성을 따진다. 사회적인 가치보다 조합원과 나의 이익에 집중한다.
MZ의 노동운동은 사실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분노한다. 회사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라고 요구한다. 미래를 불안해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노동자와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며 부조리를 깨달았다. 모여서 항의했다.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MZ세대가 주도해 설립한 사무직 노조 위원장, 민주노총에 속한 MZ세대 조합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생애 내내 이들이 보아온 노동의 풍경은 전과 달랐으므로.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불안은 산업혁명 때나 4차 산업혁명 때나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이전과 다른 노동환경, 하지만 같은 불안을 안고 MZ세대는 곧 노동자의 주류가 된다.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든다. MZ세대 노동운동의 모습과 배경을 살폈다._편집자주

엠제트(MZ)세대의 저항이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초부터 ‘공정성’을 내세운 대기업 사무직 노조 설립이 잇따른 데 이어, 10월에는 ‘트럭시위’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 스타벅스 파트너들이 등장했다. 저항의 내용이나 형식은 물론이고 민주노총과의 ‘거리두기’도 기존 노동운동과 달라 새롭다는 호들갑이 이어진다.

모이는 방법부터 새로워

MZ세대는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중반~1990년대 중반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애초에 시장이 이들을 주목한 것은 여론을 만들고 소비 트렌드를 이끈다는 이유였다. 최근엔 노동계도 주목한다. 새로운 방식의 저항운동을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반 의심 반의 눈빛이다. 반대로 보수언론은 평소 노조에 대해 갖고 있던 거부감을 MZ세대의 저항에 투영한다. 공정, 성과주의, 민주노총과의 연대 거부 등 한쪽 면만 크게 부각하는 식이다.

MZ세대의 저항과 ‘MZ세대 노동조합’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까. <한겨레21>은 ‘스타벅스 트럭시위’ 과정에 블라인드 앱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련 논문 등을 살펴보고, MZ세대 노조와 관련한 당사자, 전문가 등 15명을 인터뷰했다. MZ세대가 주도해 설립한 대기업 사무직 노조위원장(3명),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노조의 MZ세대 집행부(3명), 노조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정보기술(IT) 업계 노조 지회장(2명), 민주노총 간부 및 연구위원(5명), 노동전문가(2명)에게 그들이 실제 겪고 본 이야기를 묻고 들었다.

이를 통해 최근 ‘MZ세대 저항’의 특징을 크게 3가지로 꼽아봤다. 첫째, 모이는 방법부터 새롭다. 보통 남들 몰래 익명으로 쓴 글이 직장인 소셜네트워크인 ‘블라인드’에 올라오면 작당모의가 시작된다. 직장에서 쌓인 설움과 불만은 전광판에 요구조건을 내거는 ‘트럭시위’로 이어졌다(2021년 10월7일 스타벅스코리아 트럭시위). 블라인드에 제안글을 올린 지 일주일도 안 돼 사무직 노조를 만들기도 했다(LG전자). 민주노총 같은 기성 노조도 유튜브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활용해 2030세대 노동자에게 다가서려 애쓴다(LG베스트샵).

둘째, 저항을 통해 요구하는 내용이다. 보통은 ‘공정’이란 말로 쉽게 요약한다. 기존 대기업 생산직 중심 노조에서 포괄하지 못했던 사무직 노동자들은 ‘공정한 성과급’(성과급 체계 개선)을 요구했다. 보상체계에 민감한 ‘MZ세대다운 구호’로 여겨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별도 소속기관을 설립해 고객센터 상담사(비정규직)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10월 중순 알려지자, 건보공단 정규직 안에서는 ‘비정규직 직접고용 반대’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건보공단, 서울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서는 MZ세대 정규직 직원들이 공채로 입사한 정규직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거세게 반대했다.

마지막으로, 저항하는 조직, 즉 노동조합의 유형이 기존과는 다르다. MZ세대 노조 가운데는 상급단체를 두지 않는 개별 기업노조 유형이 많다.

이러한 특징들은 ‘MZ세대 저항과 노조’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알아둬야 할 전제조건에 불과하다. 때로는 현상이 본질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현상의 맥락을 살펴보려는 이유다.

2021년 10월19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사옥 앞에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서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1년 10월19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사옥 앞에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서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스타벅스 트럭시위가 쏘아올린 공

9일. 문제제기부터 집단대응까지 걸린 시간이다.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2021년 9월28일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가 열렸다. 음료를 산 고객에게 다회용컵 굿즈를 제공한 행사다. 손님은 1시간 이상 기다리고, 대기 음료가 600잔이 넘기도 했다. 현장 직원들의 불만이 쌓였다. “손님이 평소보다 두세 배 이상 몰렸다. 그런데 근무인원은 똑같았다. 프로모션과 이벤트가 끝도 없이 계속돼 몸이 이미 갈린 상태였다. 행사 다음날부터 1+1 이벤트도 예정돼 있었다.”(스타벅스 6년차 파트너 ㄱ씨)

다음날 스타벅스코리아의 한 파트너(직원)가 블라인드에 ‘트럭시위를 위한 총대(‘총대를 메다’의 은어)가 나선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트럭시위는 아이돌 팬이나 게임 유저들이 가수의 소속사나 게임회사와 싸우기 위해, 온라인 모금을 통해 트럭을 빌리고 트럭 전광판에 항의문구를 넣어 도심을 도는 여론전이다.

“이따위 이벤트 때문에 퇴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략) 공감하고 동참하길 원하시는 사우님들, 댓글로 여러 의견이나 염려되는 부분, 트럭에 게시할 문구 등 가감 없이 남겨주세요.” 블라인드에 트럭시위에 찬성하는 글이 잇따랐다. 모의는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총대’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파트너를 소모품으로 취급하지 말고 인력난을 해소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면서도 ‘일회성 시위’이며 노동조합 설립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명예훼손, 단체행동 등 법률 조언도 받아 블라인드에 일일이 보고했다. 민주노총과는 관련 없음을 강조했다.

블라인드에서 트럭 대여 업체, 시위 장소, 항의문구 등을 정하는 투표를 진행했다(9월30일과 10월2일). 공지글 게시 뒤 3시간15분 만에 328만여원이 모였다(10월4일). 익명성이 보장되는 금융앱을 통해 180여 명이 돈을 보냈다. 시위하는 트럭 2대가 서울을 돌아다녔다(10월7~8일). 트럭시위가 보도되자 10월16일 스타벅스코리아는 신규 인력 1600명을 확보하고 임금체계를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노조 없이, 비밀스럽고 빠르게, 최소한으로 행동했는데도 성과를 얻어낸 ‘스타벅스 트럭시위’는 MZ세대의 새로운 저항 방식으로 칭송받았다.

조용히 빠르게!

이러한 조직화 방식은 2021년 초 설립된 대기업 사무직 노조 3곳도 비슷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만든 유준환(30) 노조 위원장은 2월17일 블라인드에 ‘안 되겠다 형들 내가 총대 멜게(사무직 노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전자우편으로 가입 의사를 밝힌 이들에게 신상정보를 받아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한 달 만에 2900여 명이 모였다. 2030세대가 절반 가까이 됐다. 2년 전에 노조를 설립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다. 노조 설립 기간이 길어지자 회사에서 많이 개입했다고 들었다. 이번엔 빠르고 비밀스럽게 진행하기 위해 상급단체(민주노총·한국노총)에 가입하지 않았다.”

노조 설립은 일주일 만에 완료됐다. 노조 임원도 블라인드에 글을 올려 모집했다. 10월 기준 노조원은 3400여 명으로 늘었다. 노조원은 익명성을 보장받으려 CMS(자동출금) 계좌로 노조비를 납부한다. “요즘은 비대면으로 노조를 만든다. 조합원끼리 서로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언젠가는 이런 방식이 노조 결성의 주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2021년 초 설립된 대기업 사무직 노조(LG전자·금호타이어·현대차그룹 등)에 자문해온 김경락 노무사의 말이다.

상급단체가 있는 노동조합 역시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직운영이 활발하긴 마찬가지다. 금속노조 산하 LG베스트샵 노조는 2020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노조 가입 원서를 모았다. 조합원 850여 명이 모이자 밤 10시에 유튜브 라이브방송으로 노조 설립을 발표했다. MZ세대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노조 ‘집행부’ 대신 ‘스탭’이라는 호칭을 쓴다. LG베스트샵 바른노동조합지회 설립을 주도한 김세현 금속노조 전략조직부장은 “요즘 MZ세대 노조원의 특징이 신분이 회사에 드러나는 걸 엄청 꺼린다. 이들은 예전처럼 생존 문제가 걸려서 노조에 온 사람이 아니다. 짜증 나고 힘든 노동환경을 바꾸고 싶은 첫 번째 실천이 익명 보장이 되는 노조에 가입하고 돈을 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회사와 싸우는 일이 무거운 발걸음이었다면, (이 세대는) 노동조건을 바꾸려 돈을 내는 등 작은 걸음 내딛는 일을 덜 부담스러워한다. 가볍게 잽을 날리는 것이다. 스타벅스 트럭시위처럼 노조가 없어도 누구나 잽을 날릴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MZ세대가 주도한 대기업 사무직 노조의 주된 요구사항은 성과급 체계 개편 등 개인의 성과에 합당한 보상이다. 여기에는 ‘공정한 보상’에 대한 기대심리와 함께, 평생고용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2020년 LG전자가 영업이익 3조원이라는 최대 실적을 냈는데도 이에 비례해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회사는 이렇게 많이 버는데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 직원에게 주려고 하지 않으니 박탈감이 커졌다.” 하지만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 위원장은 이른바 ‘MZ세대 노조’의 요구가 성과급 요구만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 “성과급에 대한 (공정한 분배) 요구가 가장 컸지만 유일한 요구사항은 아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재량근로제 등과 같은 근무환경도 노조는 문제 삼고 있다.”

2021년 초 발족한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가 요구한 핵심은 ‘노조가 있는 생산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사무직은 생산직과 달리 격려금과 연차수당을 받지 못했고, 임금피크제 적용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 자체를 ‘MZ세대 노조’만의 특성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임금체계와 노동조건 개선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요구하는 사안이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에는 4050세대도 많다.

민주노총이 2021년 10월20일 열린 총파업을 홍보하려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패러디 영상 ‘총파업 게임’. 영상 갈무리

민주노총이 2021년 10월20일 열린 총파업을 홍보하려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패러디 영상 ‘총파업 게임’. 영상 갈무리

왜 공정이냐면?

2020년 작성된 ‘금속노동자의 세대별 노조활동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로 20대부터 40대까지 모두 ‘임금수준과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를 가장 많이 골랐다. 20대(45.6%)가 가장 많고 30대(41.8%), 40대(35.8%), 50대(27.6%)가 뒤를 이었지만 연령대별 차이는 크지 않았다. “임금을 높이든, 직장 내 부조리를 해결하든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세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금속노조 생산직은 호봉제가 대다수여서, 젊을수록 임금도 적다. 그래서 세대별로 임금 인상 방식을 두고 의견이 갈릴 때가 많다.” 인식조사 연구를 진행한 김우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2021년 초 설립된 대기업 사무직 노조 3곳은 상급단체(민주노총·한국노총)에 가입하지 않았다. 스타벅스 트럭시위 ‘총대’들도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MZ세대 노조나 시위가 민주노총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진실은 조금 달랐다.

“생산직 노조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생산직 선배들도 사무직 노조에 관심 갖고 있다. (상급단체 가입에 대해)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아예 배제하지 않는다.”(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위원장) “민주노총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겠다는 방침은 아니다. 단지 사무직은 기존 노조에서 소외됐다는 반감이 있다. 기능직 노조가 우리를 대변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 위원장)

대우조선해양 사무직 노조는 2020년 2월 상급단체가 없는 개별 기업노조로 출발했다가 금속노조와 연대하기로 결정했다. 노현범(36)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우조선해양 사무직지회 지회장은 처음에는 ‘일한 만큼 성과에 따라 달라’는 요구사항을 내걸었으나 지금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한다. “이제는 회사와 노동자는 상호투쟁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두다보니 연대가 가능하고 같이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기업노조로 출발한 사무직 노조가 단체교섭권을 확보하려면, 기존 노조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주요 과제가 되기도 한다.

MZ세대는 당장 회사의 불공정·불투명한 보상체계 같은, 자신과 직결된 단일 사업장의 문제를 주로 제기하지만 ‘외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 또한 열어둔다.

이제까지 ‘MZ세대 노조’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어봤다. 하지만 ‘저항하는 MZ세대 노동자’의 전부일 수는 없다. 저마다 다른 위치에 MZ세대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노동자 안에서도 고용형태가 갈수록 분화하는 흐름을 MZ세대도 비켜갈 수 없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에서 청년사업을 맡고 있는 서선주 전략조직차장은 “(언론 보도 등으로) 특정 ‘MZ세대 노조’가 과잉 대표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민주노총에 가입해 그 뜻에 동의하고 적응하는 청년 조합원들과 사무직 외에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있다”고 말했다.

반기 든 거 아닌데…

MZ세대인 김종진(29)씨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교육선전부장이다. 2017년 7월 경기도 화성 현대모비스 이화공장 협력업체에 입사한 1차 사내하청 노동자다. 기아자동차에 납품할 자동차 모듈을 만든다.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조합원은 총 670명가량, 평균연령은 38살이다. 조합원들도 또 다른 MZ세대다. 김씨는 “노조는 우리 얘기를 할 수 있는 창구”라며 최근 스타벅스 트럭시위와 대기업 사무직 노조 설립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기성 노조 안에도 세대 간 미묘한 의견 차이는 있다. 김씨는 “장기근속자는 회사에 오래 헌신한 만큼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젊은 세대는 동일한 노동을 하니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 설립된 네이버, 카카오 노조(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 지회, 카카오 지회)의 주축은 30대 노동자다. 최근 MZ세대 담론이 퍼지면서, 이들 노조 활동도 그 연장선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2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직원들의 성과급·인사평가 등에 관한 불만에 대답하는 간담회에 나서자 몇몇 언론은 ‘사건의 중심에 MZ세대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수직적 상명하복 문화에 MZ세대가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서승욱(42) 카카오 지회장은 “그건 MZ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IT 업계 내부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에 터져나오는 불만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네이버와 카카오 지회는 최근 설립된 대기업 사무직 노조들과 달리, 노조 설립 때부터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느꼈다. 오세윤(38) 네이버 지회장은 “계열사가 워낙 많아 산별노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노조 경험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개별로 싸우는 대신 공동투쟁을 고민한다.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네이버,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지회 등이 모여 ‘판교IT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승욱 지회장은 “IT게임 업계는 이직도 많고 한 회사의 문화나 제도가 변하면 다른 회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포괄임금제 같은 평가·보상 문제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여러 노조에서 함께 사회적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민주노총도 MZ세대 청년 조합원의 참여와 활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2021년 3월 민주노총은 처음 청년사업실을 신설했다. 연미림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장은 “1987년 6월 이후 민주노조 운동을 이끈 1세대가 곧 정년을 맞는다. 공공부문은 청년 조합원이 전체 조합원의 40% 이상 차지하는 사업장도 생기고 있다. 청년사업은 민주노총 존속과 전망이 걸린 문제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단에 청년 부위원장을 신설하고 중앙 대의원 가운데 청년 비중을 확대할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2021년 11월 최종 발표를 목표로 청년 조합원 실태 조사와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페토, ‘카트라이더’, ‘총파업 게임’…

일상적인 사업에서도 MZ세대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잇따른다. 2021년 4월30일 민주노총은 전 조합원을 상대로 노동절 기념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와 <카트라이더> 대회를 열었다. 10월7일 민주노총 유튜브 채널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해 ‘총파업 게임’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10월17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선 총파업을 앞두고 온라인 청년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연미림 실장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시위 요구가 많았고, 특히 거리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 조합원들이 쉽고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시위를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대란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많게는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MZ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묶어서 MZ세대 노동자들이 동질한 특성을 가졌다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수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최근 MZ세대의 저항 또는 노조활동에 쏠리는 관심은 유의미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노조가 20~30대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통로를 만들지 못하고 다양한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한 건 분명 지적받아야 할 일”이라면서도 “최근 MZ세대 노조(저항)의 흐름을 단지 새로운 현상으로 조망하기보다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역할에 성찰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조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 증가를 요구하는 건 (과거 노조들도 그랬듯) 당연한 일이지만 노동조합의 본질은 교섭력 없는 저임금 노동자같이 ‘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선주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전략조직차장 역시 “원래 권익 향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노조들은 사업장마다 있었고,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서 연대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노조운동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본인이 MZ세대이기도 한 김우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MZ세대 노조를 강조하는 것은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사 쪽 전략이지만, 전체적으로 노동운동이 4050세대 중심으로 기울어진 건 사실이다. 노동운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청년세대 연구나 청년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터에서 지친 평범한 청년들이 디지털 공간에 모여 속닥이고 있다. 우리의 저항은 따로 또는 같이 계속될 수 있을지. 우리는 기성세대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저항하는 MZ세대가 노동운동에 던진 질문이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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