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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더 캄캄한 변호사 관문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역차별… ‘관리 인력 부족하다’는 법무부
등록 2021-10-23 04:11 수정 2021-10-23 04:30
2020년 1월5일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의 한 건물 앞에서 수험생들이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5일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의 한 건물 앞에서 수험생들이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는 박수영(가명)씨는 2022년 1월 제11회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찾아가는 길도, 건물 구조도 익숙하지 않은 낯선 장소에서 시험을 치를 것 같아서다. 그는 빛과 어둠만 구별할 수 있을 정도(전맹)의 시각장애인이다.

비장애인 모교에서 시험 치는데 장애인은 불이익

2021년 1월 있었던 변호사시험은 전년과 다소 다르게 치러졌다. 전년도 시험(제9회)까지 9개 로스쿨로 제한된 시험장이 2021년(제10회)부터는 25개 로스쿨로 확대됐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지역 이동을 줄이고 시험장 밀집도를 낮추려는 조처다. 비장애인 응시자는 되도록 희망지(1·2지망)를 골라 시험장을 배치받았다. 모교에 배치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장애인 응시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제한된 장소(6곳)에서 시험을 치렀다. 특히 전맹 등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6명)은 서울 동작구 중앙대 한 곳에서 시험을 봤다. “누구나 익숙한 장소에서 시험 보고 싶지 않겠어요? 로스쿨에서 함께 공부하는 비장애인 친구는 모교에서 시험 봐도 저는 모교가 아닌 낯선 장소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거예요.” 박수영씨는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씨가 모교가 아닌 낯선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험장을 찾아가는 길은 물론 인근 지리, 건물 구조를 미리 익혀놔야 한다. 더군다나 변호사시험은 휴식(1일)을 포함해 5일 동안 진행된다. 시험장 근처에서 숙박하거나 집에서 매일 오가야 하다보니 지리적 친숙함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할 시간에 저는 시험장 지리나 익히는 상황이어서 답답하죠.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 도시락 싸서 다니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면 식당 위치부터 하나하나 익혀야 하니까요.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시험 외적인 부분에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거예요.”(박수영씨)

지리 익히랴 ‘시험 이삿짐’ 싸랴

코로나19 유행 이후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장소를 크게 늘렸다. 지역에 따라 응시장소를 차별하는 문제도 해소된 듯 보였다. 하지만 장애 학생에게만은 ‘시험 관리’라는 명목이 더 크게 작용했다. 법무부는 먼 거리의 로스쿨에서 시험 보는 장애인 응시자를 위해 해당 학교의 기숙사를 배정한다. 장애인 응시자에게는 시험시간을 연장해주거나 답안 작성을 도와주는 등 편의 제공의 일환이다.

그러나 서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권태훈씨는 이런 편의 제공만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응시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근육병(근이영양증) 등으로 인해 밤에는 인공호흡기와 통증을 줄여주는 전용 매트가 필요하다. 다른 학교 기숙사에 머물려면 이 모든 물품을 포함해 이사하는 수준으로 짐을 옮겨야 한다. “장애 유형에 따라 한번 이동할 때마다 필요한 짐의 규모가 달라요. 장애인 응시자가 굉장히 적은 수라 모교에서 시험을 보게 해주면 될 텐데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시험장으로 배치하는 법무부 입장은 이해가 안 가요.”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는 2021년 9월 “비장애인 학생들과 달리 장애인 응시자를 ‘관리’ 목적으로 하나의 학교로 몰아서 시험장을 배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장애인 응시자의 변호사시험장 선택권을 확대해달라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서울 동작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변호사시험에 응시한 장애인(장애인복지법상 등록 기준) 수는 10명 안팎이다. 법무부가 ‘장애인 편의 제공’을 신청한 장애인 응시자 수를 집계한 결과다.

법무부는 장애인 응시자에게 시험장을 전면 확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험시간 연장, 보조기기 배치 등 장애 유형에 따라 제공되는 편의가 달라지는 만큼 시험 관리의 난이도가 높은데, 인력 운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법무부는 설명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매년 3500여 명의 응시자가 4일 동안 시험을 보다보니 다수의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장애인 응시자 관리 인력을 하루 이틀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숙련도를 높일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다만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험장을 2021년 1곳에서 2022년 2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형식적 평등’조차 지켜지지 않은 시험

김남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는 “법무부 편의에 따라 장애인 응시자를 일부 로스쿨 시험장에 몰아서 배치하는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형식적인 평등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필요하다면 관리 인력을 충원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그 관리 부담을 장애 학생이 떠맡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 이어진 기사 - 중앙대, 2009년 로스쿨 도입 뒤 장애 입학생 0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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