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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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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2020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인 분석 결과
‘원인 미상’ 전국 평균 3배, 이들의 61.7%는 병원 밖에서 숨져
등록 2021-10-20 13:18 수정 2021-10-27 02:14
서울시 강북구에서 취약계층을 주로 방문진료하는 ‘건강의집’ 홍종원 대표원장이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가 진료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은 노숙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다. 박승화 기자

서울시 강북구에서 취약계층을 주로 방문진료하는 ‘건강의집’ 홍종원 대표원장이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가 진료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은 노숙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다. 박승화 기자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유명래(가명)씨의 폐는 흉터와 폐기종으로 얼기설기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는 폐기능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진데다 심한 폐렴으로 호흡부전에 빠진 상태였다. 의료진이 아무리 좋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산소를 공급해도, 기도삽관을 해도 소용없었다. 유씨는 쇠약해져 스스로 가래도 뱉어내지 못하는 상태로 23일간 입원했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2020년 1월, 그날은 그의 만 63살 생일 이틀 뒤였다.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뒤에야

그의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고시원이다. 그것도 이미 문을 닫아 주소가 말소된 고시원이다. 유씨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유씨가 미혼이어서 아내도 자식도 없다. 유일한 혈육이자 연고자인 형제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우편물에 14일이 지나도록 회신하지 않았다. 그는 한 달 뒤인 2월에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공영장례를 치르고 세상과 작별했다.

폐렴은 흔한 질병이지만 연령이 높을수록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70대와 80대의 사망 원인에서는 3순위, 4순위지만 60대는 그보다 낮은 6순위다(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보고서). 하지만 60대 초반인 유씨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주치의였던 이지연 호흡기센터장은 “공공병원에 오는 행려환자들은 여러 질환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폐와 간이 안 좋고 당뇨병이 있어 콩팥과 심장 질환이 함께 나빠지는 식이다. 그마저도 중증으로 진행된 뒤 병원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유씨는 입원 전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받은 기록이 없다.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다음에야 병원을 찾은 셈이다.

유씨뿐만 아니라 무연고자들의 죽음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이 나타났다. 2020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심층 분석한 결과다.

먼저 주요 사망 원인이 일반인과 다르다. 우리나라 ‘3대 사인(사망 원인)’은 암, 심장질환, 폐렴이다(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보고서). 1순위(사망자의 27%)는 암(악성신생물)이어서 인구 10만 명 가운데 158명가량이 암 때문에 숨졌다. 그다음은 심장질환(10.6%), 폐렴(7.3%) 순서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44.9%)가 ‘3대 사인’으로 숨진다.

반면 무연고 사망자들의 1순위 사망 원인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162명)다. 넷 중 한 명(사망자의 24.4%)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졌다는 뜻이다. 이는 전국 평균(9.5%)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2020년 한여름에 구청 직원이 쓰레기 가득한 방 안에서 발견한 정인진(70·가명)씨는 숨진 뒤 한참 지나 얼굴 등 몸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그의 사망 원인은 ‘기타 및 불상’이었다. 나백주 교수는 “사인 미상이 많다는 것은 집에서 혼자 숨지거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소 진료기록이 없기 때문에 (사망 직전 또는 직후에) 병원에 가도 의사가 사인을 특정하기 어려워 ‘사인 미상’이라고 사망진단서에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간질환과 호흡기 결핵 비중 높아

사망 원인으로 특정된 질환 종류도 달랐다. 사인이 간질환인 경우 무연고 사망자는 5.4%(36명)로, 전국 평균(2.2%)보다 갑절 이상 비중이 높다. 호흡기 결핵 비중 역시 2.1%로 전국 평균(0.5%)의 4배가 넘는다. 일반인의 1순위 사인인 암이 차지하는 비중은 16.1%여서 오히려 전국 평균(27.5%)보다 크게 낮다.

이는 기존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다. 저명한 사회역학자인 리처드 윌킨슨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계급 간 혹은 소득집단 간 사망률 차이는 2~3배 심지어 4배나 난다. 주요한 원인군 가운데 소득분배와 연관성이 가장 낮은 것은 각종 암질환이었다. 소득분배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만성 간질환 및 간경변, 교통사고, 전염병에 의한 사망”(<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가난한 이들이 간질환, 결핵 등에 더 많이 걸리는 이유는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는 개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노숙인(홈리스) 사망 실태조사 연구를 여러 차례 진행했던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본부장은 “무연고 사망자도 홈리스 사망자와 대부분 비슷한 집단일 텐데, 홈리스의 경우 뇌를 다치는 등 손상으로 인한 사망자 비중이 가장 높았고 간질환, 폐결핵이 그다음이었다. 암이나 심혈관질환처럼 예방이 어려운 질병과 달리 뇌손상, 간질환, 폐결핵 등은 국가가 관리하면 예방 가능한 질환”이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사인 분석 결과에서는 ‘병원 밖’ 사망 비중도 높게 나타났다. 사인 1순위인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로 숨진 무연고자 162명 가운데 61.7%(100명)는 ‘병원 밖’에서 숨졌다. 자살이나 사고사 등으로 숨진 ‘외인사’(72명)도 59.7%(43명)가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 사망자 665명 가운데 61.8%(411명)가 병원 안에서 숨졌는데, 이는 2020년 사망자 평균(75.6%)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기초생활 수급자 많을수록 사망률↑

서울시 안에서도 대표적인 의료취약지인 강북구에서 취약계층을 방문진료하는 ‘건강의집’ 김창오 원장은 “의료급여 수급자는 선택병원이 지정되는 등 취약계층일수록 병원을 옮기기 쉽지 않은데, 코로나19 유행 이후 보건소가 셧다운되거나 열이 나면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하니 통계로 잡히지 않는 취약계층의 죽음도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득수준, 지역환경 등에 따라 죽음도 불평등하다. 서울시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이 높은 자치구 1~3순위(강북·노원·중랑구)는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가 몇 명인지를 나타내는 총사망률이 높은 자치구 1~3순위와 일치한다(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서울시 지역생활권 건강환경 분석’, 2020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1216명)가 많이 나온 자치구인 영등포구(134명), 용산구(80명)는 노숙인이 많이 살고 쪽방촌이 자리잡은 지역이다.

증가하는 무연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 답은, 결국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과 맞닿아 있다. 결핵치료 전문병원인 서울시립서북병원 병원장을 지낸 나백주 교수는 “치료가 끝난 환자 대부분이 폐가 망가져 일하기 어려우니 대부분 창문도 없는 고시원이나 여관으로 가는데, 퇴원 뒤 건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일본처럼 저소득층이나 폐가 망가져 근로능력이 없어진 행려환자들을 위한 공공요양병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리려면, 일단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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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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