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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산재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요양원에서 일하다가 우울증… 여전히 아픈데 산재 급여 끊겨

제1382호
등록 : 2021-10-03 23:57 수정 : 2021-10-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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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이미경(가명)씨가 2021년 7월30일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모습. 류우종 기자

노회찬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① 평택항 이선호 친구 이용탁씨

②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동료 이준석 지회장

③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하창민

④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

⑤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의 강송구·박용식씨

⑥ 학교 밖 청소년 배움터 ‘일하는학교’의 이정현씨

⑦ 아이에게 대물림된 산재, 삼성반도체 노동자

⑧ 코로나19로 급성 스트레스 겪은 요양보호사

전업주부였다가 혼자 살림을 꾸리게 된 이미경(가명)씨는 “한 달에 180만원은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자격증을 딴 뒤 처음 취업한 곳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맞았다. 6개월 남짓 요양원에서 일한 그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뒤 산재보험 급여를 받으며 10개월 동안 요양했다. 2020년 1월 요양원에 취업해 산재를 얻고 치료를 막 마친 2021년 9월까지, 이씨는 “나쁜 꿈을 꾼 것만 같다”.

3박4일, 혼자 지옥에 던져졌다
“약 먹으면 잠만 오고 머리 아프고, 누워 있어요. 이러다 갑자기 이제 어떡하지 급여도 없는데, 공포스럽고 불안하고. 노후 걱정은 병원에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산재보험 급여로 3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10분 정도 상담하고, 일을 못하는 동안 휴업급여를 받았던 이씨는 이제 산재보험 급여가 끊겨서 수입이 0원이 됐다. 이씨는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가 지원하는 ‘산재노동자 생계비’를 받았다. 이마저도 이제는 바닥났다. 다시 일을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예순셋인데, 일해야 하는데….”

2020년 5월 말이었다. 요양원에 출근한 어느 날, 같은 층에서 일하는 선배 요양보호사가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선배 요양보호사는 전화기에 대고 연신 “죽어도 못한다”고 답하더니 이씨를 바꿔줬다. 아래층에서 일하는 한 요양보호사가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되고 다른 요양보호사들도 자가격리에 들어가 아무도 없으니 그날 밤만 근무를 연장해달라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을 때부터 조심하라고 매일 지침만 내려왔어요. 다른 교육은 없었어요.” “소독도 다 했고 안전하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약한 이씨는 연차가 오래된 선배처럼 모질게 거절할 수 없었다. 이씨 혼자 아래층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래층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방호복, 안경, 장갑이 던져졌다. 3박4일의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식사, 배변, 건강상태 등에 대해서 어떤 정보도 없이 던져진 이씨는 어르신 열두 명을 혼자 돌보며 사흘 밤을 보냈다. 화장실에도 거의 안 갈 만큼 땀을 많이 쏟았다.

사람을 더 보내달라고 했지만 지원은 오지 않았다. 보건소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어떤 도움도 오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급하게 요양보호사를 구하려 했는데 하루 45만원을 준다 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요양원 원장은 조금만 참으라고, 나중에 회사에서 보상이 있을 거라고 이씨를 달랬다.

“어르신들 붙잡고 넘어지는 악몽 시달려”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있으니까 (3박4일을) 다 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아래층 복도를 지나가도, 유리창 안에 나 혼자 있는 게 보여요. 나만 지옥에 던져놓은 기분이었어요.”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노인들을 두고 나갈 수 없었다. 나흘 뒤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인해 요양원이 일시 폐쇄되면서 상황은 끝났다. 이씨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요양원에서는 이씨에게 집으로 가서 자가격리할 것을 지시했다.

“기어 들어가다시피 집으로 갔어요. 나도 힘들어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무도 내게 병원으로 가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혼자 있어야 하는 집으로 갔어요.”

이씨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확진되는 꿈, 어르신들 붙잡고 넘어지는 꿈을 꾸는 거예요.” 1년이 지난 지금 공포스러운 꿈은 좀 줄어들었지만 ‘코로나19’라는 단어를 들을까봐 텔레비전 뉴스를 틀지 못한다. 이웃들이 이씨와 마주칠까봐 꺼리는 것도 여전하다고 느낀다.

“슈퍼라도 가면 수군거리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고. 나는 확진자가 아닌데. 밖에 나가고 싶은데. 종일 혼자 있으니까 20~30분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데 못 나가요. 지금도 나를 피하는 것 같아요. 내가 느끼기에.”

요양원에서 나와 자가격리할 때는 이렇게 오래 아플 줄은 몰랐다. 진료비와 약값을 보건소에서 보전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건소에 가니 서류를 떼오라고 하더라고요. 떼가면 뭐가 빠졌다, 다시 떼와라, 왔다 갔다 하다 그만뒀어요. 진료비에 약값 1만 몇천원 받으려고,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요양원의 본부장이라는 사람은 자기들도 손해를 봤다고 하면서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규정대로 하겠다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고는 나 몰라라 하는 게 분했다.

다시 요양원에 나갔지만 일할 수 없었다. 공포, 불안으로 온몸이 떨렸다. 요양원에서 일을 더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산업재해 신청을 해서 근로복지공단 승인을 받았다. “산재 승인 받는 게 쉽지 않은데요. 이거 여러 명이 심의 보는 거예요.” 다달이 휴업급여 신청할 때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하는 말이 이씨의 가슴을 눌렀다. “(근로복지공단이)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갈 때마다 (급여를) 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늘 불안했어요.”

급성 스트레스는 산재, 우울증은 산재 아니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받던 산재보험 급여가 끊어진 지금, 이씨는 여전히 아프다. “산재 신청할 때 반응성 우울증 진단을 같이 받았는데 산재로 인정을 안 해줬어요. 선례가 없대요. 급성 스트레스만 산재라고.” 이씨는 우울증에 대해서도 다시 산재 신청을 하고 싶지만 가능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요양원에서 이씨가 노인들을 부둥켜안고 기저귀를 갈고 날마다 노인들의 체온을 재는 동안 요양원 밖에서는 ‘덕분에 챌린지’가 펼쳐졌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돌봄의 가치를 알게 됐다며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라’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고 정치인과 정당은 목소리를 높였다. 맨 앞에서 온몸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맞서야 했던 요양보호사 이씨는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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