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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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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바이러스보다 위험한 변이 민족주의

방역을 구실 삼은 빗장걸기에 내부의 타자들까지 고립… 공존공생의 언어 절실
등록 2021-09-26 14:38 수정 2021-09-27 02:13
2020년 3월 일본 정부가 ‘2020 도쿄올림픽’ 연기를 발표한 가운데 도쿄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벚꽃 구경을 나온 공원에 올림픽 홍보 깃발이 걸려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0년 3월 일본 정부가 ‘2020 도쿄올림픽’ 연기를 발표한 가운데 도쿄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벚꽃 구경을 나온 공원에 올림픽 홍보 깃발이 걸려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

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⑨ 옛 동·서독 접경과 DMZ 생태계

⑩ 보건 위기와 젠더 불평등

⑪ 그리스신화가 말하는 경계 허물기

⑫ 러시아 내부의 경계선들

⑬ 예술 경험과 팬데믹

⑭ 광주 고려인 마을과 코로나19

⑮ 감염병 시대와 차별의 경계

일본에는 매년 12월1일 그해에 유행한 신조어나 유행어를 10개 선정하고 그중 가장 영향력 있던 단어에 상을 주는 ‘신어·유행어 대상’이 있다. 30년 가까이 지속한 이 행사는 당대의 세태를 반영하는 지표로서 일본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주목받았다.

2020년은 누구나 예측하듯이, ‘아베 노 마스크’ ‘고투(Go To) 캠페인’ ‘온라인~’ 같은 코로나19 관련 용어로 톱10이 거의 채워졌다. 대상에는 ‘3밀’(三密)이 선정됐다. ‘3밀’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이어지게 하는 ‘밀폐·밀집·밀접’을 나타내는 용어로 “3밀을 피하자” 등의 코로나19 확산 예방 구호로 널리 쓰이고 있다.

대상 선정에 관여한 한 선정위원은 “일본어는 복수의 단어를 정리하는 데 능해서, ‘3밀’이라고 하면 알기 쉽게 전달된다. 일본어의 위대한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글자와 글자를 연결해서 새로운 말을 지어내는 조어력이 강한 것은 한자어 일반의 특성이며 일본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터다. 하지만 ‘3밀’을 둘러싼 새로운 국면은 이 ‘위대한 점’에 대한 확신을 굳히게 한 것 같다.

2021년 8월 일본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에 각국 선수단이 모여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8월 일본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에 각국 선수단이 모여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3밀’과 ‘청결’한 일본어

‘3밀’이란 용어는 일본 국경을 넘어 한국 언론에도 수입돼 퍼지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2020년 9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등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3밀’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은, 한국의 방역 대책이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모범이 된다는 ‘코로나19 자랑’이 여전한 한국에서 드물게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을 참고한 사례가 ‘3밀’이라며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3밀’은 ‘Three Cs’(Closed Spaces, Crowded Places, Close Contact Settings)로서 세계에 인식되기에 이르렀다고 자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3Cs 회피’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2020년부터 계속되는 코로나19 유행 사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불투명하고 폐쇄적이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늑장 대처로 비판받아온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어는 ‘국위선양’의 모범사례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어와 관련해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일본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철저한 검사나 추적, 격리 같은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고도 방역에 처참히 실패한 유럽에 견줘, 감염 확산이 완만하고 사망률도 높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아베 정부는 ‘일본 모델’의 힘을 보여줬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 원인으로 1960~1980

년대식 ‘일본인론’을 제시했다. 일본인의 “몸에 밴 공중위생 습관”이나 “일본인은 동조 압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등이다. 일본인의 청결한 ‘국민성’ 담론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특이한 것은 그 목록에 영어나 중국어에 비해 발음할 때 비말이 튀지 않는 ‘청결한’ 일본어가 추가된 점이다. 이 가설은 한 감염병 전문가가 제기한 뒤 유행했다. 펜 하나를 앞에 두고 ‘This is a pen’(디스 이즈 어 펜)과 ‘これはペンです’(고레와 펜데스)를 발음해 이 가설을 증명하는 실험 영상을 만들어 방영한 한 티브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패러디 영상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져 세계에 급속히 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 영상은 유사과학과 결합한 일본의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로다 객원논설위원이 일본의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서울 이태원발 집단감염이 발생한 원인으로 비말이 많이 튀는 한국어와 ‘3밀’을 피하지 않는 한국인의 습관을 거론한 사례에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심각함이 내재돼 있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일본어 내셔널리즘’의 모습이 일본어의 우수함에 더해 일본어의 청결함이라는 가치를 띠도록 변이됐을 때, 이것은 방역이라는 구실로 일본 내 언어 다양성을 억누르고 다른 언어를 차별하는 논리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지 시대에 일본에서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을 식별해 학살을 자행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그 사람이 일본의 어딘가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조롱’으로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섬뜩함이 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와 도쿄올림픽

감염 확산의 차이를 언어습관을 포함한 ‘국민성’으로 환원하는 이런 내셔널리즘은 팬데믹 국면에서 외국인 입국을 막아 국민을 보호한다는 유사 ‘쇄국’ 정책의 이데올로기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코로나19 유행 발생 직후부터 일본 정부는 ‘미즈기와’(水際) 대책이라는 국경봉쇄 정책을 펼쳤다. 미즈기와 대책은 원래 해상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물가(미즈기와)에서 섬멸한다는 의미의 군사작전에서 유래한 용어로, 병원균의 국내 침입을 막기 위해 공항이나 항구에서 물샐틈없이 막는 방역 대책을 뜻한다. 아베 총리 자신이 이를 ‘쇄국 상태’라 명명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와 국외를 안전/위험, 청결/불결로 나누고, 국외로부터 위험하고 불결한 요소의 유입을 억제함으로써 국내를 안전하고 청결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발상에서 나왔는데, 자국을 방역의 우위에 두면서 거국적 감염 방지를 위해 국민을 통합하고 동원할 수 있는 논리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큰 희생을 치른 것이, 바로 2020년 2월 요코하마항 해상에서 하선을 허락받지 못하고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 속에 장기간 격리된 채로 3711명의 승선자 중 약 20%가 감염되고 13명의 사망자를 냈던 크루즈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비극이다. 일본 정부가 탑승자 전수조사를 통한 격리 조처를 꺼리며 투명한 정보공개를 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는 사이 확진자가 기하급수로 늘었고 희생자도 나왔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들을 되도록 하선시키려 하지 않았고, 확진자 수를 일본 통계에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감염자 수를 축소하는 데 집착했다.

일본 정부가 해외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조처를 한 것은, 애초부터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일본을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나라로 선전해 어떻게든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도 2020년 3월24일에는 올림픽 1년 연기가 결정됐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으로 미즈기와 대책을 고집하며 강화해갔다. 이에 따라 한국, 중국을 포함한 140여 개국의 외국인 입국이 거부됐을 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나 유학생 등 장기 체류비자를 얻어 일본에서 생활해온 외국인에 대해서도 일단 출국하면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는 조처가 2020년 8월까지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3밀 회피’ 포스터. WHO 제공

세계보건기구(WHO)의 ‘3밀 회피’ 포스터. WHO 제공

미즈기와 정책, 자기 유폐의 역설

더욱이 이 ‘쇄국 상태’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단절을 더욱 고착화했다. 일본은 2020년 3월5일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정책을 중단한 데 이어 4월3일부터는 한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시행했다. 한국인 입국 금지는 이후 다소 완화됐다가 2021년 초 변종 바이러스 대책으로 다시 전면 재개됐다. 이런 상황은 해방기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 ‘분리’라는 역사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 직후 (미 군정과) 일본 정부는 식민지였던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설정된 경계선을 귀환한 조선인들이 ‘역류’해 콜레라가 유입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방역 대책의 관리 공간으로 구축했다. 이 국경 관리는 콜레라가 진정된 뒤에도 풀리지 않은 채 기존 ‘내지’와 ‘외지’의 경계선을 한-일 국경이라는 새로운 장벽으로 급속히 전환할 수 있었다.

미즈기와 대책이라는 ‘쇄국’ 상태를 지속하며 외국인에 대한 빗장을 좀체 풀려 하지 않았던 일본은, 2021년 7월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며 국경을 열어 ‘개국’ 상태를 연출했다. 고도 경제성장 이래 자기 긍정의 도도한 흐름이 1990년대 들어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실에서, 국민통합의 원리로서 맺어진 네오내셔널리즘(신민족주의)과 그 신봉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실추된 국제적 위신의 회복과 부흥 계기로 여겨졌던 올림픽을 개최하도록 일본을 몰고 갔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 그 후과를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급증했고, 올림픽 전후로 PCR(유전자증폭) 검사 건수도 10만을 넘겼다. 국경만 강화하면 국내는 안전하고 청결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내부로 향한 자국 우월의 시선이 어느새 일본을 고립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글로벌화가 심화한 세계에서 일본 국내는 결코 ‘안전’하고 ‘청결’한 곳이 아니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배제되는 소수자

이에 비해 한국은 WHO의 권고대로 국경 폐쇄나 경제활동 중단, 주민 이동 통제 같은 극단적인 조처 없이 개방성·투명성·신속성 원칙 아래 대대적인 검사, 추적, 격리 등의 방역 조처를 해서 코로나19 유행을 통제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효과적 행정지원체계와 공동체적 시민의식이 융합해 이를 뒷받침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민관협력’이나 ‘공동체적 시민의식’ 속에 언어적·민족적 마이너리티(소수자)는 자주 배제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인권침해와 차별에 대한 이주민들의 체감 상황을 설문을 통해 파악해 2020년 11월27일 공개한 ‘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 상황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민 응답자의 60.3%가 코로나19와 관련된 ‘일상적 차별’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의 73.8%가 코로나19 관련한 ‘정부 정책과 제도에서 차별’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점이다. 구체적인 경험으로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음’(30.8%),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난문자를 받을 수 없었음’(29.8%),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코로나19 안내 및 상담을 받을 수 없었음’(22.8%) 등을 많이 호소했다. 코로나19 유행은 전세계에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분단과 혐오도 확산시켰다. 그런 가운데 세계 각지의 이주자들이 의료에서 배제되거나 소수언어 사용자가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외국인 혐오범죄가 다발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가 공격받고 있다. 이것은 ‘방역 모범국’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학교 학생들만 마스크 지급 제외

일본의 경우 2020년 시행된 1인당 10만엔(약 106만원)씩 ‘특별정액급부금’ 지급은 외국인도 3개월 이상 체류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외국인에게 정보를 제공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에서 다언어 정보 발신을 개시했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7개 국어로 설명서나 동영상 등을 만들어 외국인 참여를 독려하는 곳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쉬운 일본어’(やさしい日本語) 쓰기도 확산됐다. ‘쉬운 일본어’는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고안된 것으로, 이후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재난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간단한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전시켜왔다.

이 축적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이를 바탕으로 후생노동성은 9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여 감염 의심자에 대한 상담소나 검진 방법 등을 설명하는 누리집을 열었고 현재 쉬운 일본어, 영어, 중국어(간체자·번체자), 한국·조선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타이어, 타갈로그어, 네팔어의 11개 언어로 안내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적·제도적 차별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대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5월 마련된 ‘학생지원긴급급부금’은 조선대학교의 재일조선인 대학생들을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선학교 학생들만 마스크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든지, 일상과 제도에서의 소수자, 특히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구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의 분단과 비대면 속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변이되는 내셔널리즘의 모습이 어떤 궤적을 걸을지 알 수 없지만, 내부 타자들과의 공존 모색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부단한 접촉을 통해 영위됐던 우리 일상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대화의 기회가 줄고 문자 텍스트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어난 이 뉴노멀 시대에, 공존공생을 향한 언어적 노력 또한 코로나19 이전 시대와는 달라야 할 것이다. <끝>

임경화 중앙대 접경인문학연구단 HK교수

*‘팬데믹 시대의 접경’ 접경인문학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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