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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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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위드 에브리원

<한겨레21>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이 본 ‘위드 코로나’의 미래
등록 2021-09-17 09:28 수정 2021-09-18 00:03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김진철씨는 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부 지원을 받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박승화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김진철씨는 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부 지원을 받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박승화 기자

‘위드 코로나’는 체념에서 시작된다. 국민의 89.6%는 생각한다. “코로나19는 버티면 지나갈 대상이 아니다.” 91.5%는 걱정한다.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드 코로나’는 끝나지 않을 위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감염병을 상수로 둔 일상으로 전환한다는 선언이다.

‘위드 코로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감염병과의 전투, 그저 생명을 지키고 생계 위기를 버티기 위한 응급처치를 넘어선다. 감염 위험에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고 했던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과거 같은 상태로의 회복만 의미할 수도 없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달라진 세계의 성질을 살피고, 불가피한 전환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들을 이제라도 지켜야 한다. 어느 시민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2월부터 지금까지 <한겨레21>이 만났던,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위드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지금, 안녕한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무엇이 삶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어떻게 하면 ‘위드 코로나’의 세상이 당신과도 ‘함께’일 수 있는지 들었다. 모두가 연결된 세상에서 그들의 고통은 크든 작든 우리 모두와 관계 맺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성인 155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포스트-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통해 ‘단계적 일상 회복’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도 함께 살폈다.

1장 위드 사장님- 멀어진 세상과 전환

서울 마포구의 일식 주점 사장, 전남 여수의 치킨집 사장, 경기도 평택의 노래방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세상에 번지고 있다.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인 2020년 4월 만난 사람, 대구 중구에서 고기뷔페를 운영하는 김병철 사장(제1309호 ‘평범한 저녁은 언제 돌아올까요’)은 2021년 한가위를 앞두고 셈해보고 있다. “계산해보니 한 달에 1천만원꼴이었어요. 이번만 버티면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면서 갖다쓰다보니까.” 빚 얘기다. 김 사장은 2020년 2월부터 지금까지 1억원 넘게 빚을 냈다고 했다. 정부가 지원한 소상공인 대출을 받고, 창업자금 대출도 받고, 개인신용 대출도 한도까지 받았다. 당장 매출 감소는 직원을 줄이고 몸으로 때워 버틴다.

빚은 ‘위드 코로나’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의욕을 꺾는다. “고기뷔페라는 장사 자체가 배달은 안 되고, 그나마 이 자리에서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들죠. 여기서 더 빚을 진다면… 2~3년 뒤면 갚아야 하는 돈이 벌써 1억원을 훌쩍 넘었어요. 폐업하고 새로 시작할 수 없어요. 코가 꿰었어요, 완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2021년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1년 전보다 18.8% 늘었다. ‘빚투 열풍’ 속에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가계대출 증가율(9.5%)보다 높다. 새로 빚을 얻은 자영업자 비중(2021년 1분기 기준 29.2%)도 1년 전보다(2020년 1분기 19.4%) 크게 늘었다.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20년 말 기준 238.7%다. 코로나19 충격이 시작된 2020년 3월보다 42.8%포인트 늘었다.(금융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 부채 리스크 평가와 관리방안’)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경제 상황은 김병철 사장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보통의 날들’로 돌아온 듯 보인다. 2021년 2분기 수출액은 42.1% 증가(전년 동기 대비)했다. 2분기 소매판매지수는 4.4% 올랐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6% 올랐다. 다시 경기는 뜨거워지고 있다. 회복한 것처럼 보이는 가게 바깥의 세계는 오히려 새로운 위협이다.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고깃값도 30%는 올랐고 채솟값은 말해 뭐해요. 금리도 오를 것 같고.” 김병철 사장한테는 버는 돈 없이 재룟값만 오른 꼴이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 부담은 더 커진다. 그렇게 가게 바깥과 가게 안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으로 인한 손실 보상에 대한 여론은 아직은 대개 사장님들 편이다. 다만 고통을 겪는 당사자와 바라보는 이들 사이에 인식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포스트-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에서 손실 보상에 우호적인 여론은 자영업자만 90%를 넘어섰다. 다른 직업에서는 80% 초중반 수준이다. 언제까지 이해받을 수 있을까, 불안하다.

그보다 사정이 좀 나은 가게들에도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춘 적응과 전환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제법 사람이 북적이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김진철 사장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2020년 9월, 그는 코로나19 탓에 언제 닥칠지 모를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망원시장 상인들과 온라인 판매에 나선다고 했었다.(제1329호 ‘그때와 같은 어쩌면 더 가혹한’) 정부 도움으로 전통시장 배달앱 ‘놀장’(놀러와요 시장)과 ‘네이버 장보기’에 입점했다. 아직 별 도움이 안 된다. “웬만한 상품을 다 취급하는 대형 플랫폼이랑 다르게 우리는 구색이 다양하지 않잖아요. 혼자 장사하는 분은 가게를 보면서 물건을 배송 장소에 가져다놓고 가격을 정리하는 게 어려워서 매니저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 싶고요.” 전환은, 방향성만큼이나 디테일의 문제다.

빚을 안고, 갈수록 멀어지는 세상과의 거리를 느끼며, 두 사장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는다. 버티는 것만큼이나, 적응도 막막하다. 어느 청년은 같은 시대 앞에 우울과 무기력을 느낀다. 9월8일 저녁 8시, 인천공항에서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유도하고 짐 싣는 일을 하는 하덕민(31·가명)은 퇴근길이라고 했다.

2020년 3월 승객이 사라진 인천국제공항에서 청소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0년 3월 승객이 사라진 인천국제공항에서 청소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장 위드 청년- 우울과 꿈

퇴근이라니. 하덕민은 전에 다니던 인천공항 지상조업사에 다시 입사했다. 정규직이다.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네요.” 2020년 6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하덕민은 해고, 정확히는 계약해지 당했다.(제1308호 ‘왜 꿈을 꿨을까, 왜 공항에 왔을까’) 2년 계약직으로 지상조업 일을 시작했지만 언젠가 항공기 정비사가 되고 말리라는 꿈을 향해, 대체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던 때다. 계약해지로 갑자기 꿈을 멈췄다. 2021년 3월 재입사했으니, 멈춤의 시간은 9개월 정도다.

항공기 승객이 줄어든 하늘길은 화물이 대체했다. 일할 사람이 다시,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는 이제 거의 매달 사람을 뽑는데, 대개는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이 일이 고급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쉽게 들어오는데, 해보면 힘드니까 열에 한두 명 정도만 남고 금방 나가는 것 같아요.” 하덕민은 하루 평균 12시간쯤 일하는 것 같다. 기술을 다져 항공기 정비사가 되겠다는 꿈은 이제 꾸지 않는다. “잘리고 나서 멍한 시간을 보내고 멘털이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요. 만약 지난해 6월처럼 또 갑자기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번에는 ‘뭐 그래’ 하고 말 것 같은 느낌이에요. 더 꿈을 꾸는 건 힘들어요.”

코로나19 유행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여겨진 청년 일자리는 탄력적인 회복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2021년 1월 65.9%까지 떨어졌던 만 25~29살 고용률은 7월 68.9%까지 올라왔다. 같은 기간 30~34살 고용률도 75.6%에서 76.1%로 증가했다.

다만 일하는 장소는 달라졌다. 대면 서비스업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은 2020년 7월 35만2천 명 감소(전년 동기 대비)했는데, 2021년 7월에도 회복은커녕 1년 전보다 19만8천 명이 더 감소했다. 반면 택배나 항공화물 등 운수업은 2020년 7월 기준으로도 1년 전보다 고용이 줄지 않은 업종(5만8천 명 증가)인데, 비대면 소비가 늘며 2021년 7월에도 12만1천 명이나 고용 규모를 키웠다. 즉,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업자가 감소했던 업종과 현재 취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업종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한국노동연구원 ‘2021년 상반기 노동시장 평가와 하반기 전망’)

업종마다 고용 규모가 큰 폭으로 바뀐다는 건, 노동자가 메뚜기처럼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래 간직한 꿈이나 숙련 같은 것은 한번에 사라진다. 하덕민의 동료들은 다시 ‘사람이 필요하다’는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계약해지 될 때 받은 상처 때문인 것 같아요.” 국립중앙의료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정서적 문제’를 호소한 이들은 20대부터 나이의 역순으로 많았다(아래 그래픽 참조). 젊을수록 우울했다.

여행업계에서 10년 일한 서민정(35·가명)은 우울의 바닥을 치고, 완전히 다른 일을 찾았다. 그가 다닌 여행사는 2020년 11월 폐업했다.(제1353호 ‘2020년은 봄부터 겨울이었다’) “충격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여행업 쪽은 그만 보고 아예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석 달 전부터 온라인으로 옷을 판다. 새내기 사장은 아직 헤맨다. “옷장사는 겨울에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여름에 문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밖에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시장 규모도 줄어든 듯해요.”

투자 비용이 덜 드는 좀더 쉬운 온라인 창업, 저숙련 노동은 코로나19 시대에 한층 빠르게 늘어난다. 문턱은 낮지만 불안정하다. 서민정은 문득, 온라인 옷장사라는 일을 믿고 꿈을 키워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모르겠어요. 위드 코로나든, 어느 방향으로든 상황이 좀 예측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직업의 불안정성에 상황의 불안정성이 더해질까 걱정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감염병 위험은 늘 품고 살아야 한다. 그 위험이 공포로 번져 다시 세상을 뒤흔들지 않으려면, 최소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코로나19에 걸려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들은 목에 파스를 붙인 채 뛰다가 울고 또 뛰었다.(제1345호 ‘“오늘, 숨 막힌다” 간호사가 혼잣말했다’) 그런데 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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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마저 코로나19 곁에 남지 않을 때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927.html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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