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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에 필요한 건 ‘존치’만은 아니다

낮은 인식, 적은 예산 속 ‘무에서 유’ 만들어야 할 부처…
존폐 논란 넘어 성평등 정책 강화 고민해야

제1372호
등록 : 2021-07-16 16:53 수정 : 2021-07-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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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당시 여성가족부 통폐합을 반대하는 학계, 종교계, 법조계, 시민사회계, 방송계, 의료계, 문화예술계 남성 100명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대 ‘존치’ 논란이 뜨겁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선 과정에 촉발된 논쟁으로, 정확히 얘기하면 부처는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 방식으로 운영하자는 주장이다. 소모적인 논쟁의 반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기왕 공론화된 이상 코로나19로 여성과 청년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 시기에 정말 필요한 정부 조직 방향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약 0.2% 예산 비중, 저임금으로 버텨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왜 반복될까. 한마디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여가부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 격차가 있다는 의미다. 특히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성평등과 성범죄 근절에 대한 국민의 높은 요구 수준에 견줘 주무 부처답지 않게 주춤거린 부분에 아쉬움이 매우 크다.

다만 여가부가 가진 특수한 어려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여가부는 정책 실행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녹아 있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국민, 국회, 다른 부처를 설득하는 노력을 추가로 쏟아야 한다. 성평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전방위로 미약한 상황에서 성평등 정책의 토대를 앞서 다져나가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과 같다. 정치는 물론이고 정책적 의사결정 단계에서 성평등 문제를 비중 있게 끌고 갈 사람이 여전히 적다는 점도 성평등과 여성인권 정책에 대한 인식 격차를 쉽게 줄이지 못하는 원인이다.

2001년 다른 부처가 조 단위의 예산을 운용할 때 여성부는 겨우 317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출범했다. 여가부는 20년이 지난 2021년에도, 예산이 1조2325억원으로 총지출의 약 0.2%에 불과하다. 여성 정책뿐 아니라 가족·청소년 정책까지 수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적다. 이렇게 적은 예산으로도 여가부는 아이돌봄 지원사업이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운영 등 많은 일을 했다. 사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은 ‘저임금’에 있다. 관련 사업을 위탁받거나 보조받는 상당수 사업현장에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며 다른 부처보다 적은 인건비로 이런 사업을 유지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외부 환경도 늘 열악했다. 2008년에도 여가부는 폐지될 뻔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작은 정부론’을 표방하며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급히 회의를 열어 “여가부를 보건복지여성부로 통폐합하자”는 법률안에 대해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행정안전위원회로 전달했다. 명확한 반대 의견이었다. 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여성 의원은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했고, 한나라당 여성 의원도 인수위원회에 여성 정책 강화를 위해 독립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런 노력 끝에 여가부는 존치됐지만 의욕은 꺾였고 많은 에너지가 쓸데없이 소모됐다.

위원회로 부처를 대신할 수 있을까?
2001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여성부로 대체된 점은 그 자체로 조직의 성장 경로를 보여준다. 현 정부 공약에 있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도 실효성 우려로 추진되지 않았다. 여가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사업은 ‘위원회’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 위원회는 여러 부처와 심의, 조정하는 일에서 기본계획 조정 이상의 일은 하기 어렵다. 예컨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처럼 위원회가 힘있게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안할 수 있을지 몰라도 법률안 제안과 예산안 편성 주체는 해당 부처일 수밖에 없다. 결국 관련 정책 추진은 해당 부처의 관심과 의지 여하에 달린 문제가 된다. 이런 행정적 이유를 고려하면 “부처 없이 위원회를 통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주무 부처가 없다는 것은 국회 기능도 함께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를 여러 부처로 분산하고 그 부처를 소관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살펴볼 수야 있다. 다만 지금처럼 집중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현재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성인지 예산제도’ 운영을 살펴보면 10년 넘게 일부 국민이 가지는 오해, 즉 ‘35조원의 예산을 여성에게만 준다’는 것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성인지 예산 편성이 부실하다는 분석 결과를 매년 내지만 각 부처는 ‘성평등’ 관련 이슈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주무 부처가 있어야 국민도 좀더 쉽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국회가 주요 현안 위주로 관심을 쏟는 상황에서 주무 부처마저 없다면 일상의 안전과 성평등 정책을 요구하는 국민은 더 힘들어진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여가부는 국무회의와 사회관계장관회의, 정부의 인구태스크포스(TF)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일자리위원회 등 주요 회의에서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을 대변하고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한다. 부족한 것처럼 보여도 20년 동안 쌓아온 여가부의 전문성을 대체할 부처는 없다. 여가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지금 이 시국에 성평등 정책을 약화시키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성평등 열쇠 없이 지속가능한 사회 없다
2005년 호주제 폐지에서 2021년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성과는 모두 주무 부처인 여가부를 독립적으로 설치한 이후에 나왔다. 현재 여가부의 역할과 기능은 시대적 흐름과 과제를 고려할 때 보강되는 것이 맞다. 다만 2014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부 개정된 점을 고려할 때 부처 명칭도 해당 법 취지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다.

시대적 과제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성불평등 문제는 저출산·고령사회, 양극화, 코로나19 장기화,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급변하는 가족형태 등 사회의 여러 위기적 사안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다. 성평등 촉진이라는 열쇠 없이 위기의 시대를 빠져나가기 힘들다. 주무 부처가 더 나설 수 있게 오히려 예산과 인력, 조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줘야 한다.

지금 우리가 묻고 토론해야 할 것은 ‘여가부 폐지’ 또는 ‘존치’라는 말 몇 마디가 아니다. 다음 세대가 더 잘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국가가 성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하면 더 종합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심도 있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새 정부 국가운영 10대 과제에 ‘성평등 정책 강화’를 포함할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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