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새로운 한국인’이 된 이주민을 만나다

결혼이민여성, 다문화가족, 이주노동자, 귀화자라 불리던 그들
등록 2021-06-05 11:43 수정 2021-06-09 07:15
김진수 선임기자

김진수 선임기자

국경이 막힌 코로나19 시대에도 해외 뉴스가 남 일 같지 않을 때가 있다.
2021년 5월2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아시아계 증오범죄 방지법’에 서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그 뒤로도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일어나는 증오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5월26일과 31일, 미국 뉴욕 길거리에서 각각 70대와 50대 아시아계 여성이 지나가던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쓰러진 사건이 전해졌다.
국내에선 중국 국적 외국인 특혜 논란과 중국인 혐오 정서가 번지고 있다. 법무부가 4월26일 입법예고한 국적법 개정안 내용 때문이다. 개정안은 국내 출생 영주권자(국내 체류 기간과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외국인)나 외국 국적 동포(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이나 그 직계비속)인 영주권자가 국내에서 아이를 낳고 신고하면, 그 자녀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요건에 해당하는 영주권자 대부분이 중국 국적 외국인이라는 점이 반대 여론에 불을 붙였다. 정치권에서도 “매국 행위”와 “중국 사대 정권”이란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판을 퍼붓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아동의 정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에 불과”한 내용이라며 확대해석과 혐오 시각을 경계했다.
국내 이주민은 현재 약 200만 명, 다문화가족은 약 35만 가구에 이른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짧게는 5년, 길게는 22년 국내에서 생활한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활동가 자격 체류자, 귀화자를 만났다. 서울시청에서 10년 넘게 다문화가족 지원 업무를 수행한 베트남인 영주권자 팜튀퀸화(39),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20년 가까이 알리며 ‘나눔의집’에서 일하는 일본인 활동가 야지마 츠카사(48), 무용 공연 무대에 서며 외국인 예술가 대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인 결혼이민자 엠마누엘 사누(40), 서울 마포구 다누리콜센터에서 몽골어 상담원으로 14년째 이주민을 상담하는 몽골 출신 귀화자 이다와(49)가 그들이다. _편집자주

독일에 거주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비자 연장을 위해 외국인청을 찾았다. 궁금한 점이 있어 담당 공무원에게 질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2016년부터 5년간 독일에서 이주자로 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독일에서 외국인이, 그것도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온 이주자가 ‘시민’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총인구 중 약 25%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외국인이고, 절반은 이주배경이 있는 독일인이다. 여기서 이주배경은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귀화, 입양 등의 경험이 있는 것을 뜻한다. 이런 독일에서도 외국인이거나 이주배경을 가진 독일인을 배척한다면, 이주배경 인구가 약 4.3%에 그치는 한국에선 어떨까.

한국에서 누구보다 ‘시민’으로 살고 있는 이주자들을 만나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베트남 출신 팜튀퀸화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생존 할머니들과 나눔의집에서 함께 지내는 일본 출신 야지마 츠카사씨, 아프리카 무용수로서 새로운 문화를 한국에 전파하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엠마누엘 사누씨, 폭력 피해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을 모국어로 상담해주는 몽골 출신 이다와씨가 그들이다(이하 존칭 생략). 여느 직장과 다름없이 그들의 일터도 어김없이 오전 9시에 시작된다.

서울시 공무원 팜튀퀸화가 다문화가정 업무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팜튀퀸화 제공

서울시 공무원 팜튀퀸화가 다문화가정 업무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팜튀퀸화 제공

팜튀퀸화 - 다시 아이를 가르치는 꿈

서울시청 외국인다문화과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팜튀퀸화(39)의 아침은 모든 직장맘이 그러하듯 분란하다. 본인의 출근 준비를 하는 동시에 중학생인 두 딸을 깨워 아침 식사를 챙겨줘야 한다. 아침 식사를 대충 챙겨주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빵과 시리얼 외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더 정신이 없다. 아침 식사를 집에서 하지 않고 보통 밖에서 사먹는 베트남이 유난히 더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아이들을 정신없이 학교에 보낸 뒤 출근하면 시청에서의 일과가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 서울시와 FC 서울이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교실에 참가할 다문화가정 자녀를 모집했고, 이제 선정 마무리 단계라 여러 행정문서를 처리하며 하루를 연다. 어느덧 공무원으로 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업무상 해당 법률을 찾아 해석해 민원인에게 안내하는 일 등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팜튀퀸화의 업무는 다문화가족을 다각도로 지원하는 일이다. 결혼이주여성의 건강한 출산과 산후 회복을 돕기 위한 의료 통역사업을 운영하고 건강검진이 필요한 저소득층 이주여성을 지원한다. 현재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과 함께 이 사업을 운영 중이다. 2020년 통역지원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매우 만족’이 92%가 나올 정도로 이주여성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외에 자녀 모국어 교육, 시간제 아이돌봄 서비스, 아동보험 가입 지원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사랑하는 한국, 그리운 조국

팜튀퀸화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고, 이후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한국어 전공자다. 한국어 공부를 한 지는 20년 지났고 한국어를 하며 산 지는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한국어로 일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가끔 원어민(한국인)과 다른 발음이나 억양을 이유로 민원인에게 “외국인이죠? 상급자 바꿔주세요”란 말을 듣는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주눅 들어 전화를 넘겼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차근하게 대응한다.

“제 발음이 원어민과 조금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무슨 이야기인지 모두 알아들었고, 어떤 상황인지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민원을 처리할게요.”

그가 일하면서 속상할 때는 여전히 다문화가족, 특히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을 마주할 때다. 그는 유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와서 유학비자를 받았을 때와,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비자를 바꾸러 갔을 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싸늘하게 변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갑자기 반말을 하며 불친절해졌다. 최근에는 유럽이나 미국 국적의 가족 구성원이 민원 전화를 걸어와 ‘우리를 다문화 말고 글로벌 가족이라 불러달라’고도 말한다. ‘다문화가족’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는 방증이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르면 ‘다문화가족’이란 한국인과 혼인한 적이 있거나 혼인관계에 있는 결혼 이민자나 한국 국적 취득자로 이뤄진 가족을 뜻한다. 통계청(2020년 기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다문화가족은 35만3803가구에 이른다. 다문화 출생아 수는 1만7939명으로 전체 출생의 5.9%를 차지한다.

공무원으로 일하지만 팜튀퀸화는 언젠가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이 있다. 베트남 하노이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는 베트남어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두 딸이 어느 정도 크면 베트남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날이 오면 한국에서 사는 동안 많은 이에게 들어야 했던 ‘베트남에서 한국 오니 너무 좋지요?’란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저는 한국을 사랑해요. 제 아이들의 모국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베트남도 진심으로 사랑해요. 한국에 사는 동안에도 늘 그리운 제 조국이죠.”

‘나눔의집’ 활동가 야지마 츠카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야지마가 찍은 이옥선 할머니 모습. 야지마 츠카사 제공

‘나눔의집’ 활동가 야지마 츠카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야지마가 찍은 이옥선 할머니 모습. 야지마 츠카사 제공

야지마 츠카사 - 위안부 역사를 기록하며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집’. 일본인 직원인 야지마 츠카사(48)의 출근은 걸어서 2분 걸린다. 게스트하우스이자 직원 기숙사인 건물에서 나오면 바로 앞 건물인 생활관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 공간과 일본군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이 지내는 공간이 있다.

야지마는 하룻밤 사이 꽤 많이 도착한 전자우편을 처리하며 오전을 보낸다. 주말에 나눔의집 역사관을 방문하려는 외국인의 문의에 답변하고, 이번 여름방학 때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는 핀란드 유학생과의 미팅 일정을 잡는다. 매년 진행하던 한·일 대학생 대상 피스로드 워크숍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라인으로 열기로 해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기획회의도 진행한다. 한창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사무 공간과 연결된 공동거실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큰 소리로 그를 부른다.

“마리오야, 마리오야! 이리 오거라!”(마리오는 할머니들이 부르는 야지마의 영어 이름이다.)

야지마가 달려나가니 이옥선 할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나 화투 치고 싶어. 여기 직원들 몇 명이랑 같이 좀 앉아봐. 나랑 같이 시간 보내.”

나눔의집 직원들에게 할머니들이 원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큼 중요한 업무가 또 있을까. 야지마는 바로 바닥에 앉아 할머니와 화투를 치기 시작한다. 주말에는 외국인 대상으로 나눔의집 해설이나 박물관 투어를 진행하느라 바빠서 평일에는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현재 나눔의집에는 할머니 네 분이 지내는데 코로나19 상황에 병원 방문 절차가 한층 복잡해졌다.

지역사회와 분리된 외국인

할머니들이 그를 ‘마리오’라고 부르며 누구보다 친근히 대하는 데는 ‘시간의 힘’이 크다. 2000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을 통해 나눔의집을 처음 방문한 뒤, 야지마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2003년부터 3년간은 역사관 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많은 방문객에게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알렸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는 당시 함께 지냈던 8명의 할머니가 그에게 매일 한국어를 가르쳐준 덕분이다. 독일로 이주해 13년간 사는 동안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시민단체 ‘코리아 페어반트’에서 활동했다. 다시 나눔의집으로 돌아온 건 2019년 2월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제국주의, 전쟁성폭력, 여성인권 등 여러 문제를 담고 있어요. 많은 이가 모국어로 이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독일, 중국 등 국제팀 네트워크가 있으니 할머니들의 증언을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해보려고 해요. 이미 영어 작업은 진행되고 있어요.”

야지마는 사진작가로서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도 꾸준히 한다. 과거 일본에서 <아사히신문> 출판국 사진기자로 일했던 그는 2002년부터 전쟁성폭력 생존자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일본과 독일, 대만 등에서 전시회를 이어왔다. 생존자가 살아 있는 한 기록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과 독일에서 이주자로 살아본 야지마는 두 국가의 가장 큰 차이로 ‘시민사회’를 꼽았다. 어딜 가든 외국인이 소수자로 사는 것은 비슷하지만, 베를린 시민사회가 여러 이주자 이슈에 연대해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외국인과 지역사회가 분리됐음을 느낀다.

“제가 지내는 경기도 광주에도 이주자가 많이 보여요. 하지만 광주 지역사회와 이들이 통합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른 도시에 가도 청소노동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하는 이주자를 많이 봐요. 사회 통합을 위한 제도나 법적 시스템을 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 외국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약 199만228 명에 이른다(2021년 4월30일 기준). 이 중 장기체류는 약 157만 명, 단기체류는 약 42만 명이다. 나라별로 보면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인이 86만5천 명으로 가장 많다. 그다음은 베트남(20만9천 명), 타이(17만6천 명), 미국(14만5천 명)이다. 10만 명 미만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네팔에서 온 외국인이 거주한다.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는 전국 곳곳에 만딩고 춤과 예술을 알리고 있다. ChadPark 제공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는 전국 곳곳에 만딩고 춤과 예술을 알리고 있다. ChadPark 제공

엠마누엘 사누 - 외국인 예술가가 안정적으로 살 방법은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 무용가인 엠마누엘 사누(40)의 하루는 매일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한 ‘동네한바퀴’라는 예술 프로젝트 자료를 조사할 때도 있고,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공연 기획회의를 하기도 한다. 오후엔 보통 노들장애인야학과 성미산학교 등에서 춤 수업을 한다. 최근 공연이 다시 열리면서 늦은 저녁까지 연습하는 날이 많고,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스튜디오에서 댄스 워크숍을 연다.

사누가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것은 경기도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초청을 통해서였다. 당시 그는 국내 무용 콩쿠르 1위를 거머쥔 뒤 아프리카 오페라 <사헬> 무용수로 발탁돼 유럽 각지를 돌며 부르키나파소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을 공연했다. 이후 여러 안무가, 무용수와 협업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중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초청을 받아 2012년 한국행을 택했다.

유럽과 다른,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공연을 기대하며 그는 한국에 도착했지만 부당계약과 노동착취라는 차별을 마주한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를 한 대륙이 아닌 한 국가처럼 인식하는 것에 충격받았다. 부르키나파소만 해도 60개 넘는 민족이 모여 사는 국가인데 아프리카가 한 민족이라니.

아프리카라는 나라?

사누는 맞서 싸웠고 함께 한국에 왔던 아프리카 동료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도 혼자 이곳에 남았다. 자신의 뿌리인 만딩고 춤과 예술활동을 한국에서 이어가고 싶었다. 이후 지금까지 여러 수업을 통해 ‘만데문화’를 소개해왔다. 무용단 ‘쿨레칸’(Koule Kan)도 꾸렸다. 쿨레칸은 서아프리카 만데문화권에 속하는 많은 나라가 사용하는 ‘줄라어’로 ‘뿌리의 외침’이란 뜻이다. 어느덧 한국에 정착한 지 8년째. 그가 느끼는 한국 사회의 변화는 긍정적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 비해 이주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느껴요.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로 다가가기도 하고요. 그러나 연일 이주노동자들의 사망 소식,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출생등록을 할 수 없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린 이주아동 이야기 등을 들을 때는 한국 정부가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가끔은 여기에서 이주자의 삶이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누는 현재 한국인과 결혼해 결혼비자(F-6)로 살고 있지만, 예술흥행비자(E-6)를 갖고 있을 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려 노력한다. 2021년 4월 열린 예술인 비자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도 패널로 참석해 “여전히 외국인이라 여러 예술 지원 프로젝트에 지원할 자격이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체류하며 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며 외국 예술가 대우 문제를 짚었다.

한국에서 가족을 꾸린 사누는 9월에 아빠가 된다. 그래서 모든 일을 태어날 아이의 미래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사누 부부도 아이가 한국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요즘 자신의 색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기서 ‘색’은 피부색을 포함해 개인 고유의 특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성을 담고 있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스스로 누구인지에 대해 자랑스러울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자신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 있도록요.”

서울 마포구 다누리콜센터에서 상담원 이다와가 몽골어로 상담하는 모습. 이다와 제공

서울 마포구 다누리콜센터에서 상담원 이다와가 몽골어로 상담하는 모습. 이다와 제공

이다와 - 14년차 상담원

서울 마포구에 있는 다누리콜센터에 오전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다문화가족과 이주여성에게 위기상담과 긴급지원, 한국 생활 정보 제공, 생활통역 지원 등의 서비스를 24시간 13개 언어로 제공하는 센터이다보니 다국어로 오는 전화가 많다. 몽골어 상담원인 이다와(49)가 전화를 받았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와 함께 집을 나온 몽골 여성이 경찰서에서 상담 요청을 해왔다. 숙소나 긴급피난처에 입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다와는 우선 안전한 곳에 가족을 옮기고 상담을 이어가기로 했다. 몽골어로 차근히 입소에 필요한 행정 절차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설명한다.

몽골에서 의학, 한국에서 상담심리학

이다와는 몽골에서 국립의과대학을 졸업했다. 7년제 본과 공부를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는데, 등록금을 또 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우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1999년 한국에 왔다. 그는 처음엔 일반 제조업체나 사무소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우연히 통역 일을 시작했다.

“당시 몽골 노동자가 한국에 많이 와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동자와 회사 사이에 통역할 일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일을 여러 차례 제의했어요.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참 행복하더라고요.”

이후 통역 일을 찾는 과정에서 주한몽골대사관 누리집에 올라온 다누리콜센터 몽골어 상담원 모집 글을 발견하고, 고민 없이 지원했다. 당시 이다와는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사무실은 서울 신설동에 있어 통근 거리가 꽤 멀었다. 그렇지만 출근이 행복했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그는 어느덧 선임 상담원이 됐다. 서울센터에 선임 상담원은 베트남어·중국어 상담원을 포함해 3명이 있다. 이들은 어려웠던 상담 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일을 한다.

다누리콜센터에 2021년 4월 한 달 동안 접수된 상담은 총 1만6820건. 내담자 국적으로는 베트남(3577건)과 중국(3466건)이 엇비슷하게 많다. 러시아(2426건), 캄보디아(1008건), 타이(995건), 몽골(483건)의 상담 건수도 상당하다. 상담은 의료(8210건) 관련 내용이 압도적이다. 그다음은 가정폭력(1062건), 일반 법률(853건), 부부 갈등(749건), 체류 및 국적(678건), 취업 및 노동(439건) 등이다.

상담원으로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2011년 한국 대학으로 편입해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이다와는 의학 공부와 상담 업무의 접점이 있다고 말했다.

“의사도 환자를 만나면 어디가 아픈지 들어준 뒤 필요한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해주잖아요. 상담 역시 내담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들어주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면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몸과 마음을 치료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 다만 이주배경이 있는 아들을 대학생으로 키우며 학부모로서 꼭 변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결혼이민 부모를 배려한 자녀 진학 상담 과정이다. 이다와처럼 한국어를 쓰며 일하는 데 지장이 없는 다문화가정 부모도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하고 대학 입시나 진로 상담을 받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는 “학부모 교육 상담이나 코칭 프로그램에 통역을 지원해도 좋고, 이들을 위한 특강이나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작성한 ‘2021 청소년 통계’를 보면, 전체 초·중·고생(535만6천 명) 중 다문화가정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2.8%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독일인, 새로운 한국인

베트남, 일본, 부르키나파소, 몽골에서 와서 한국에 정착한 이들을 인터뷰하며 독일에서 함께 일했던 터키계 독일인 친구 튤린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이주배경과 이주역사를 가진 새로운 독일인이야.”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나 이주배경이 있는 내국인은 이제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 가족이 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민여성, 다문화가족, 이주노동자, 귀화자 등 다양하게 불렀던 이들의 이름은 ‘새로운 한국인’이다.

채혜원 객원기자·<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