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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대학을 면접할 차례입니다

큰아이를 영국 대학에 보내며 알게 된 것들
등록 2021-05-01 16:15 수정 2021-05-05 01:05
국내 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면접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국내 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면접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애린이가 9월에 대학에 간다. 고등학교는 지난해에 졸업했는데 대학에 갈지 말지를 포함해서 진로 고민이 많았다. 한국에선 청년 열에 일곱이 대학에 가지만, 영국에서는 절반만 진학한다.(25~34살 인구에서 대졸자 비율은 한국 69.8%, 영국 51.8%이다. ‘OECD 교육지표 2020’)

아이는 1년을 쉬며 여러 가지를 따져봤다. 영국 대학은 매년 신입생 유치를 위해 ‘오픈데이’를 한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캠퍼스를 둘러보고 교수들의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했을 텐데, 2020년에는 그것도 다 온라인으로 했다. 교수가 준비한 발표를 끝낸 뒤 참석자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애린이가 손을 들었다. “이 학교 졸업생의 취업률이 어떻게 되나요? 주로 어느 분야로 진출하나요? 학생들은 재학 중에 어떤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나요?” 애린이는 1년에 9250파운드(약 1400만원. 2020년 한국의 사립대학 평균등록금 718만원의 약 두 배다)나 되는 돈을 내면서 대학에 가는 게 과연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자주 의심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질문을 했다.

입학전형료 안 받는 대학

마침내 애린이는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교육과정, 시설, 교수진, 취업률, 졸업생 작품 수준 등을 검토한 뒤 지원 대학 5개를 골랐다. 원서 접수는 유카스(UCAS) 웹사이트를 통해 해야 한다. 유카스는 입학과 관련한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웹사이트에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A레벨(대학 입학에 필요한 국가자격시험) 성적과 자기소개서를 올리면 그 자료를 대학에 전달해준다. 편리하다.

한국에서는 지원하는 대학에 입학전형료를 내는데, 여기서는 유카스 수수료 26파운드(약 4만원) 말고는 돈을 내지 않는다. 사실 한국 대학이 입학전형료를 징수하는 것은 이상하다.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지원자를 꼼꼼히 평가하는 것은 대학이 마땅히 해야 하는 본연의 일인데, 그 비용을 지원자에게 청구하고 매해 수십억원의 수익을 낸다. 부당해도 한국 입시에서 학생은 절대 약자라, 대학이 요구하면 따라야 한다. 어쨌든 영국 대학은 전형료를 받지 않았다.

미술 전공의 경우, 작품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한다. 대학에서 일러준 웹사이트에 포트폴리오를 올렸다. 세 곳은 곧 합격 통지를 보냈고, 두 곳은 화상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인터뷰는 30분 동안 진행됐다. 왜 일러스트레이션에 매력을 느끼는지, 작품을 구상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어떤 표현 도구를 선호하는지, 차기 작품으로 무엇을 구상하는지,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데, 평가를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하는 평등한 대화처럼 들렸다.

“이번에는 네가 우리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볼 차례야. 네게 맞는 대학을 잘 선택하려면 우리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니?” 교수는 마지막 10분을 애린이에게 주었다. “이 대학이 미술산업 부분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1학년 학생에게도 그런 프로젝트 기회를 주나요?” 애린이는 시종일관 이게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교수가 물었다. “너는 우리 대학에 뭘 기대하니?” “저는 대학이 학생을 ‘전문인’으로 성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기대하는 것은, 이 대학에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입학해서 결국 프로페셔널로 졸업하는 것이에요.”

영국 대학생 약 70%, 학자금대출 받아

애린이는 ‘에스에프이’(SFE·Student Finance England·교육부와 융자회사들의 협력기구로 학자금대출을 맡는다)에 일찌감치 대출 신청을 했다. 얼마 전에 통지를 받았다. 9월부터 매년 학비 9250파운드(약 1400만원)와 생활비 1만2775파운드(약 1900만원)를 융자해준다는 내용이었다. 학비는 소득과 상관없이 전액 지원받을 수 있지만 생활비는 가계소득 수준, 통학 여부, 학교 소재지(런던 물가는 비싸다)에 따라 금액이 결정된다. 이 금액은 대출 최고액이다.

처음에 난 아이가 학자금 융자 받는 것을 꺼렸다. 빚지는 게 싫기도 했거니와, 어떻게든 우리 학비를 마련하려고 노력했던 부모님처럼 나도 아이들 학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내겐 그 돈이 없다.

영국에서는 부모가 학비를 대는 것보다 학생이 융자받아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일반적이다. 대학생의 약 70%가 그렇게 한다. (한국의 경우 대학생의 약 14%가 학자금대출을 받는다. 한국 가정이 그만큼 더 넉넉해서는 아닐 거다. 자녀교육비를 마련하려는 부모의 헌신 때문일 수도 있고, 학자금대출을 받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애린이는 3년 뒤 6만6천파운드(약 1억원)의 빚을 안고 졸업할 것이다. 그래도 겁나지 않는다. 대출금은 졸업 이듬해부터 갚아야 하지만 소득이 연 2만7295파운드(약 4천만원) 이하면 상환이 연기된다. (한국의 ‘취업후 상환 학자금대출’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은 상환 기준이 2021년 소득 기준 연 1413만원이다. 기준이 잔인할 정도로 낮다.) 월로 따지면 2274파운드(약 340만원)다. 예를 들어 월급을 500만원 받으면 초과분 160만원의 9%, 즉 14만4천원만 갚으면 된다. 계산해봤다. 우리 아이가 성공해서 매월 500만원을 번다면, 빌린 돈 1억원을 다 갚는 데 얼마나 걸릴까? 얼추 60년이다.

입학 통지보다 기쁜 대출 통지!

다행히도 학생 융자는 대학 졸업 뒤 30년이 지나면 채무가 면제된다. 즉, 남은 빚을 탕감해준다. 젊을 때 공부하려고 진 빚을 평생 족쇄로 묶어두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정부도 애초에 사람들이 대출금을 다 갚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대출금을 모두 변제하는 사람의 비율을 25% 정도로 잡는다. 75%는 다 갚지 못할 것을 안다. 애린이가 예술가로 대성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이 75%에 속할 거다. 솔직히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대출통지서를 받았을 때가 더 기뻤다.

영국에서도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 안에서 잘 공부하고 졸업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애린이는 그림을 그리느라 손목을 혹사해서 지금 압박보호대를 감고 있다. 그걸 보고 친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속으로 말했단다. ‘내가 한국인이거든, 짜샤.’ 잘할 거다.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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