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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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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아비가 못 지킨 약속 [세월호 7년]

수현 아빠의 재판 방청기_관련 기록 뒤지고 방청하는 7년간의 싸움에도
해경 지휘부 ‘무죄’… 합리적인 공소장과 판결문에 설득당하고 싶다
등록 2021-04-12 08:28 수정 2021-04-16 04:46
2014년 7월13일, 세월호 유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종이배를 세워놓은 채 세월호 특별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2014년 7월13일, 세월호 유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종이배를 세워놓은 채 세월호 특별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2021년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조사는 공적인 조사위원회가 세 차례나 구성됐는데도 공식적인 결과를 여태껏 내놓지 않고 수년째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세월호 구조 실패 혐의로 기소됐던 해경 지휘부 11명이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해경 재판 과정을 방청했던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버지 박종대씨가 무죄판결의 문제점을 짚고, 공적 조사위에 참여했던 박상은 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 세월호 조사가 결론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박 전 조사관은 2021년 2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 ‘재난 인식론과 재난조사의 정치: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를 펴냈다. _편집자

세월호 침몰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다닌 지 벌써 2549일(2021년 4월8일 기준)이 지났다. 최근 며칠 서울중앙지법의 작은 법정 한구석에 앉아서, 오로지 작은 모니터와 음질 불량의 스피커에 의지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피고인 등 9명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 방해 사건(2015년 추석날 아침, 나는 차례를 지낸 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한 ‘박근혜 및 청와대 구조의 적정성’ 조사 신청서를 작성해 1기 특조위에 제출했는데, 피고인들이 이것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킨 사건)을 방청하면서,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원통하게 죽어간 아들을 못난 아비가 명예롭게 저승에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구나!’라고 한탄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직업은 ‘진상 규명’이 돼버렸고, 이 재판에서 오직 5명에게 허용되는 방청 기회를 잡기 위해, 1시간30분간 태극기부대 세력과 경쟁하며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기약 없는 싸움을 치열하게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해경청장 보고받은 시간, 새롭게 밝혀졌지만

‘해경 지휘부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할 당시 재판장은 선고 절차 끝부분에서 마치 엄청난 죄를 지은 어린아이가 용서를 비는 듯한 모습과 목소리로, “이번 판결에 대한 지지와 비판 등 여러 평가를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일방적 선언과 함께 황급히 법정 밖으로 퇴장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는 피고인들을 제외하고 이 재판 결과를 구체적이고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특히 2년 이상 이 사건을 조사했던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노골적 침묵과, 7년 가까운 고통의 세월을 함께 이겨냈던 가족들, 그리고 직간접으로 이 사건에 관여했던 4·16 참사 관련 단체들이 재판부 판단 내용을 구체적으로 탄핵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극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또 현재 나에게는 이 난국을 타개할 마이크와 스피커가 전혀 없다는 절망감은, ‘앞으로도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가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닫고 조용히 산다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선고 결과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해본다.

세월호 침몰 사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과정은, ‘튼튼한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과 매우 닮았다’. 견고하게 기초를 닦은 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혹한 환경 속에 오랜 시간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건축물이 비로소 완성된다.

2014년 검찰은 튼튼한 건물을 건축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세월호 침몰 사건을 수사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정권 입맛에 맞춰 이 사건을 대충 덮는 것에 급급했고, 국민의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자 2019년 11월11일, 마지못해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켜 피고인들을 기소했지만, 수사 결과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직후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피고인은 자신의 책임을 면할 목적으로 ‘09:05경 상황담당관 임근조의 보고로 세월호 침몰 사실을 인지했고, 09:10경 위기관리실에 임장하여 중앙구조본부를 구성한 후 구조작업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감사원 감사, 국회 국조특위, 1기 특조위 청문회, 검찰 수사 등에서 마치 암기하듯이 똑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 재판 과정에서 김석균은 세월호 침몰 사실을 09:19경 이후에 보고받았으며, 위기관리실 임장 시간도 9:28경 이후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마치 수학 공식처럼 주장했던 ‘09:10경 중앙구조본부 구성’ 등은 당연히 폐기돼야 하고, 그들의 작위의무 위반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재수사했어야 옳다. 그리고 그들이 작성했던 허위 공문서와 1기 특조위 청문회 위증에 대해서도 검찰은 특별한 절차를 진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장을 제출했고, 1심 재판부도 법과 매뉴얼이 정한 ‘구조본부 비상 가동 권한 및 절차’를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선장만 퇴선명령을 할 수 있다고?

세월호 침몰 사건의 구조 책임은 해경에 있고,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피고인 등 지휘부와 상황실 근무자,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함정과 헬기 등 구조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임이 틀림없다.

특히 해경 수뇌부는 모든 구조세력의 구조행위를 지휘하고 확인할 의무가 있었기에,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세력인) 123정 정장 김경일과 비교해 엄중한 책임을 확실하게 물었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경 수뇌부에게 상황실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되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평상시 공무원 임무 이상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 근무자들은, 승객들과의 122 신고 전화를 통해 구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또한 진도VTS, 세월호와 교신하며 구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본청도 09:37경에는 123정 정장 김경일과 경비과장 여인태와의 전화 통화에서 ‘배가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사실, 모든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사실, 바다에 뛰어내린 사람이 없고 구명벌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 등 구조에 필요한 중요 정보를 모두 확인했다.

‘무죄’ 결론 내놓고 재판 진행한 것 아닌가

따라서 당시 파악된 정보를 바탕으로 피고인 중 누군가 퇴선명령만 내렸다면, 모든 승객이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퇴선명령은 선장만 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퇴선의 필요성이나 시기, 방법 등은 원칙적으로 선박 총책임자인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과 지휘에 따라야 하고, 퇴선명령은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의 구조 매뉴얼은, “상황이 긴박한 경우 등 구조계획 수립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체크리스트 등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의 체크리스트에는 “배수 작업 가능 장비를 최대한 동원하고도 침수량이 감소하지 않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퇴선 여부를 결정(보고)”할 것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따라서 세월호 침몰 당시 피고인들은 선장과 상관없이 승객에게 신속한 퇴선을 명령했어야 하지만, 재판부는 끝까지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나는 1심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할 때, 방대한 재판 기록을 모두 읽고 깊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판단한 것이 아니라, 첫 기일부터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재판했다고 확신한다.

세월호 참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법과 매뉴얼이 부여한 사명을 피고인들이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초대형 사건이다. 구조를 위한 기상 환경이 좋았고, 구조를 위한 시간은 충분했다. 탑승객들은 122 신고 전화를 해 세월호 선내 정보를 먼저 해경에게 알려줬다. 구조가 가능한 시간에 헬기와 함정이 침몰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된 승객 모두를 태울 수 있는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해경보다 먼저 침몰 현장에 도착해 해경의 구조 지시를 기다렸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에서 퇴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나가” 또는 “나와”라는 단 한마디 말만 했다면 모두 탈출할 수 있었지만,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은 도주 선원들만 우선 구조하고 침몰하는 세월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재판부는 이런 세부 조건을 검토하지 않았고, 해괴한 논리와 왜곡된 증거를 동원해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물했다. ‘450명이 탑승한 여객선 세월호가 좌현으로 50도 기울었고, 승선원들의 거동이 어렵다는 내용만으로 즉각적인 퇴선조치가 필요한지를 피고인들(해경 수뇌부)이 판단할 수 없었다’고 봤다. 또 해경 수뇌부가 ‘세월호 선장에게 구체적인 선내 상황을 문의했더라도 계속해서 세월호에서 거짓 답변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즉시 퇴선조치를 해야 할 정도로 침몰이 임박했다는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었고, 선장을 대신해 퇴선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결정하기도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세월호 침몰 당시 목포서 상황실은 세월호와 VHF 교신을 설정한 사례가 없는데, 그리고 목포서장 김문홍은 상황실장 이병윤과 통화한 사실이 없는데 이들이 ‘교신도 하고 전화 통화도 했다’고 판단했다. 이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수뇌부가 마치 유선전화처럼 사용했던 통신장비 TRS(주파수공용무선통신시스템)를 두고는 ‘원활한 통신을 하지 못해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는 해괴한 판단을 하기도 했다.

‘진상 규명’이라는 직업에서 실직당하길

내가 원하는 진상 규명 작업의 끝은 피고인들의 유죄 여부와 상관없이, 검찰의 공소장과 재판부의 판결문에 ‘설득당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수도 없이 진술서 등 각종 증거기록과 매뉴얼을 뒤졌으며,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각종 증거와 일일이 대조해서 세밀하게 검증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최종 결론은 ‘아직 논리적으로 설득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다.

아직 정확한 기일은 지정되지 않았지만, 얼마 뒤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이때만이라도 검찰이 공격적으로 싸우고 재판부가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내가 ‘진상 규명’이란 직업에서 실직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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