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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저스 21

노동자를 발견하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배달노동자 노조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제1355호
등록 : 2021-03-22 21:53 수정 : 2021-03-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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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특별한 잡지를 네 번째 만듭니다. 2020년 코로나 뉴노멀(제1315·1316호),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제1326·1327호),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제1340호)에 이어 2021년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는 ‘체인저스 21명’을 펴냅니다. 지속가능한 세계, 평등한 세계, 자유로운 세계, 더불어 사는 세계를 꿈꾸며 체인저스들은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론 변하지 않는 사회를 보면서 분노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그 작은 변화의 흐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이들은, 작지만 값진 승리를 향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도 동행해볼까요? _편집자주

2018년 여름은 뜨거웠다. 110년 만의 불볕더위였다. ‘폭염수당 100원을 주세요’. 박정훈(37)씨는 서울시청역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팻말을 들었다. 그는 맥도날드 배달라이더였다. 도심 한가운데 홀로 선 그의 요구는 조용하고 소박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공유’ 경제와 플랫폼이라는 말로 자신들 기업활동의 혁신성을 강조하던 때였다. 박정훈씨는 가만히 서서 뜨거운 아스팔트를 견뎌내는 배달라이더의 몸과 노동을 ‘폭염수당 100원’이라는 말로 팻말에 담아냈다.

2019년 5월1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출범했다. 박정훈씨는 위원장이 되었다. 기자, 교수, 관료, 활동가들이 그에게 전화해 플랫폼과 배달산업에 관해 질문했다. 그들은 배달의민족과 배민라이더스의 차이를 물었고, 그는 자체 배달과 배달대행, 프로그램사와 배달대행사, 음식 주문 중개 서비스와 배달대행 플랫폼 등의 차이를 설명했다. 어찌 보면 간단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답은 이 문장에 있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했다. 정작 변화를 일군 건 코로나19였다. 사람들은 서로 거리를 둬야 했다. 수많은 배달라이더가 그 사이를 오갔다. 배달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폭염에도, 폭우와 폭설에도 라이더는 오토바이를 몰았다. 노동하는 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배민 같은 플랫폼기업은 그들에게 직접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배달라이더는 쏟아지는 배달콜에 몰려 차와 사람 사이를 비집고 달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이 거리를 위태롭게 내달렸다.

어린 시절, 형이 헤드록을 걸고 있다. 박정훈 제공

2003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교육청 앞 ‘NEIS 정보인권, 청소년 권리 찾기’ 1인시위에 참여했다. 박정훈 제공

쿠팡이츠와의 단체교섭, 그리고 어마어마한 선거를 앞두고
요즘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현안은 쿠팡이츠와의 단체교섭입니다. 그리고 조합이 위원장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반성이 있어서 조합원들을 간부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곧 선거가 있고 30명 정도가 출마할 예정입니다.”

어마어마한 선거가 되겠는데요.

“예. 대의원, 지회장, 지부장… 이제 노조 꼴을 제대로 갖추는 거죠. 그동안은 위원장과 중앙집행부 중심으로 운영됐는데, 이제 지역 중심으로 해서 라이더들이 간부를 맡고,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그분들 의견을 반영해서 조합이 운영되는 거죠.”

조합원 규모가?

“400명 정도.”

맥도날드에서 배달 일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생계가 가장 컸죠. 4대 보험을 들어주니까요.”

1990년대에 부산 범일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책에서 읽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몇 년 전 부산에 갔는데, 지금 ‘이중섭 문화거리’가 제가 살던 곳이에요. 그 ‘희망길 100계단’이라고.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죠. 가난한 동네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운동을 했다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효순이 미선이 사건’(미군 궤도차량에 두 여중생이 압사당한 사건) 촛불시위가 있었어요. 거기서 시작해 학교 급식, 복장, 폭력과 체벌 문제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많이 했죠.”

대학 진학을 정치외교학과로 정한 게 데모를 많이 할 거 같아서였다고요.

“그게 사실이기는 한데, 대학 때는 데모를 많이 할 줄 알았으니까요. 청소년 때는 제약이 많아서 대학 가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죠. 근데 들어가서 보니 정치외교학과가 데모를 잘 안 하더군요.”

대학 시절엔 주로 어떤 이슈를 다뤘습니까.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습니다. 노동정책도 그렇고 이라크 파병 결정도 그렇고 문제가 많았는데, 민주-반민주 구도에선 특히 노동 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장애인운동이 한창 성장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점거하고 버스에 올라타자면서 장애인운동을 했어요. 활동 보조 서비스 제공 요구에 연대하고. 활동 보조 서비스가 제도화되기 전이거든요. 장애인 인권을 시작으로 환경문제, 빈민운동 등 대학생 때는 모든 의제를 다루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사회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중2 때 학교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책을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도서관에 갔거든요. 거기서 그냥 뽑은 게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이었어요. 그리고 <태백산맥>도요. 세상에 눈을 뜬 계기였어요. 제가 처한 경제적 상황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구나, 사회구조 문제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내가 가난한 이유를 설명해준 셈이에요. 그게 컸어요.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을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10대 때는 강렬했어요.”

2008년 ‘장애학생도 버스 타자’ 시위. 장애인들이 저상버스를 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부산대학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박정훈 제공

가석방 없는 감방 생활 그리고 징벌방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도 했더군요. 어떻게 결심했습니까.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가 계기가 됐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아요.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고. 거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조사 징벌방 100일과 책읽기’. <말이 되는 소리 하네>(공저, 2017)

의 저자 소개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입니다.

“감방 가서요? 이게 배경이 있어요. 병역거부자는 재범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보통 가석방을 줍니다. 3개월 먹기도 하고, 최대로 먹어야 4개월이죠. 그런데 저한테 파란색 명찰을 붙였더라고요. 이게 공안이랑 마약 사범에게 붙이는 거거든요.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확인하니 제 범죄를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잡았더라고요. 병역거부가 아니라. 제 형량이 병역거부에 다른 사건이 병합돼서 내려진 거거든요. 그래서 면담 신청해서 공안 사범 아니다, 집시법 사범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법무부 지침이 내려와서 못 바꾼다는 거예요. (그는 2014년 4월 수감됐다) 공안은 가석방이 없어요. 제가 가석방에 대한 희망을 버렸습니다. 감방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가석방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때부터 제 마음대로 살았죠. 감옥에서 불을 안 꺼준다든지, 그런 거로 계속 싸우면서 생활했어요. 그러다가 공부를 좀 하자 싶어서 독방에 가려고 했어요. 안 내주더라고요. 그래서 징벌방이나 독방이나 똑같으니까 그럼 거기 보내달라고 했죠. 크게 괴롭지는 않았어요. 다른 범죄자들이랑 지내는 것도 재밌었고. 조폭들이 국가에 대항해서 온 사람을 되게 좋게 보더라고요.”

어린 시절 변화의 계기를 ‘가난’과 소설 <아리랑>, 두 개의 열쇳말로 풀어냈는데 집안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은 없었습니까.

“있었죠. 한편으로는 그런 게 있었어요. 저는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대학교 때는 제가 다 벌어 먹고살아서. 이게 독립이죠. 그리고 가부장제의 혜택이 있었죠. 경상도에서 남자로 살았을 때의 편안함이 있었죠, 집안에서. 아무리 어머니라 하더라도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형한테는 미안하죠. 형님한테는 미안한데, 다른 가족에게는 크게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2013년 1월1일 알바연대가 출범했다. 사진은 2013년 6월14일 경총에서 최저임금 동결 철회를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인 알바연대. 한겨레 강태형 기자

최저임금 1만원 구호, 주휴수당 대중화
그는 2018년 초까지 알바노조에서 활동했다. 2016년에는 알바노조 2기 위원장도 했다. 알바노조의 출발은 2012년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대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의 대선 캠프. 일명 ‘순캠’에 모인 20~30대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들은 선거운동을 핑계 삼아 야밤에 편의점을 찾았고, 여기서 “민주주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일상에 놓인 ‘알바노동자’의 존재를 발견한다. 대선이 끝나고 청년들은 알바연대를 조직했다.

그의 책 <최저임금 1만원-알바들의 유쾌한 반란>

(박종철출판사, 2018)은 2013년 1월1일 알바연대 출범 기자회견장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단 한 명의 기자도 없었습니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확산한 데는 알바노조의 공이 크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휴수당’의 대중화(?)도 이들 덕이다.

이들은 최저임금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청와대, 최저임금위원회를 찾기도 했다. 경총 건물 처마 위에 올라가 점거시위를 벌이고, 청와대 앞 신무문에 올라 유인물을 뿌렸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선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알바노조 활동의 의미는 제도정치가 눈길 주지 않았던 알바노동자의 존재를 우리 사회의 시민권자로 불러 세운 데 있었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빨간소금, 2019)에서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방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도 안에 갇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구도가 가부장제와 연결돼 있다고 했고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장하기보다는 운동을 만들어내려 노력하는 거고요. 어쨌든 지금 구조에선 정규직화를 이야기하는 게 너무 배부른 소리가 돼버렸고, 또 이는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방향이 돼버려서 거기에 종속되는 운동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규직이라는 자원을 획득하면 다시 비정규직 차별에 나서게 되고. 이런 방향으로는 노동문제의 어려움을 타파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세 권의 책을 썼는데 ‘아르바이트노동-제3노동시장-사장’이라는 노동 주체와 열쇳말로 우리 사회 노동현실을 제시했습니다. 일상과 맞닿은 현실을 다룬다고 느꼈는데, 논의가 확산되지는 않았나봅니다.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로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발언권이 주어지냐 주어지지 않냐, 또 그 당사자가 이걸 발언할 생각이 있냐 없냐의 문제도 있는데, 뭉쳐서 집단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는 거죠. 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라는 개념도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됐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노동은 가속화하고 있다고 봐요. 노동에 노동이 아니라고 하는 시도들이. 프리랜서에서 시작해 지금은 플랫폼노동까지.

알바노조 시절이나 지금 라이더유니온에서 조합원과의 관계에 거리감이 있습니까.

“알바노조는 좀 그랬던 거 같아요. 라이더유니온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제가 일하는 사람이고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업계의 말’ 말씀인가요.

“그렇죠. 얘기가 통하죠. 한번 모이면 집에 안 가요. 저는 조합원들 두고 도망가요. (웃음) 본인은 혼자 일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말하기도 어렵죠. 그런데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런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거죠.”

알바노조 시절과 라이더유니온 시절의 감각 차이는 일을 하고 안 하고 차이에서 만들어진 건가요.

“그게 있고, 버는 액수가 다르고요. 알바는 최저임금 이하였는데, 배달노동자는 여하튼 생활비를 벌죠. 그 감각이 완전 다르죠. 오토바이에 투자하는 비용도 크고. 단일 업종이고. 이 업계에서 꾸준히 일하는 분도 많습니다.”

2018년 ‘폭염수당 100원을 주세요’ 팻말을 들고 서울 광화문 맥도날드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2019년 라이더유니온이 발족한 뒤 박정훈은 위원장이 되었다. 사진은 2020년 노동절을 앞두고 오토바이 행진을 벌인 조합원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폭염수당 100원’으로 다시 시작하며
질문을 드려도 될까 싶습니다. 알바노조에 큰 논란이 있었잖아요. 2018년인가요.(2018년 알바노조에 비선의 ‘언더조직’이 있다는 폭로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그 언더조직의 알바노조 담당자로 박정훈씨가 지목됐다.)

“알바노조 사태는 좀 복잡합니다. 제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기존 운동 방식의 한계가 컸고. 알바노조는 사실상 학생운동 조직이었어요, 알바노동과 학생운동이 결합된. ‘스카이’ 대학 중심의 학생운동이 끝나고, 알바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 중심으로 기획한 학생운동이었어요. 알바노조 특징이 행동주의적 성격이었죠. 점거하고. 그게 그냥 나온 것이 아니죠. 강력한 조직적 질서에서 나왔고. 서로 서운한 게 많은데 사실관계를 일일이 따지는 게…. 저는 어쨌든 이렇게 정리했어요. 내 잘못으로 가져간다. 욕하면 계속 욕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라이더유니온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 처음부터 노동운동을. 근데 제 나름 슬픈 거는, 그 조직 운동에서 여러 부류가 뛰쳐나간 건데, 한 그룹에선 제가 너무 권위적이라고 비판받고, 또 어떤 분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전망을 제시해줄 수 없어서 무능력한 사람이 된 거죠. 제 입장에서는 다 후배들인데, 그래서 두 후배 그룹을 잃은 거죠.”

2018년 ‘폭염수당 100원’ 시위가 그렇게 해서 다시 시작한 것입니까.

“그렇죠. 근데 뭐 계획도 없었어요. 정말 내 동료가 힘들다고 하니까, 그럼 뭐 내가 직업이 활동가였는데 팻말 정도는 들어보자 했는데, 너무 큰 반응이 있었고 그때부터 책임감이 생겼죠. 사실 지금은 정치적으로 좌절한 시기예요. 노동운동을 하지만 정치적 전망이 없죠.”

책에선 노동문제 해결은 결국 정치적 해결의 문제라고 했는데.

“그렇죠. 하지만 정치 문제를 많은 사람이 착각합니다. 정치는 중요한데 한 명이 가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과반을 차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가 가면 다를 것이다? 조직이 가야 달라지거든요. 세력이 가야지. 그런 건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운동조직이 살아 있는 곳이…. 어쨌든 저는 마흔 살에 귀촌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도 다시 뭘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았던 거예요, 지금까지 사람들한테. 세상을 바꿔보자, 같이. 평생 운동을 같이해보자. 그렇게 인연을 맺은 후배들이었는데. 이제는 무너진 거죠. 서로 상처를 가지고. 내가 뱉은 말은 책임지고 살고 싶습니다. 내가 노동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평생 운동을 하자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죠. 약속을 지키고 싶은 거죠.”

귀촌하면 거기서는 어떤 운동을?

“지금 관심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 운동입니다. 거기 노동현실이 참혹할 것이다,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좀 지긋지긋한 면도 있고. 여기는 어차피 모든 마이크가 몰려 있고. 거기도 삶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 몇 년 살면서 그걸 이해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글 이철 르포 작가,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박정훈을 바꾼 것

<숫타니파타> “감옥에서 읽은 책. 고립돼 있었기에 자신과의 대화가 가장 많았던 시절,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게 해줬던 책입니다.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지만,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살아가는 부처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호시우행(虎視牛行) “늘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탁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처럼 우직하게 뜻을 꺾지 않고 운동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인생의 좌우명입니다.”

겸손 “살면서 건방지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죽비처럼 늘 옆에 간직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에필로그

그는 책 세 권을 썼다. <최저임금 1만원-알바들의 유쾌한 반란>(개정판, 박종철출판사, 2018),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빨간소금, 2019),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빨간소금, 2020). 2016년 6월부터 1년6개월간 <한겨레> ‘2030 잠금해제’에 칼럼을 연재했고, 2019년 12월부터는 <한겨레21> ‘노 땡큐!’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질문에 답하며 순간순간 말하기를 주저했다.

최근 한 칼럼(‘공짜 짜장면과 천 원짜리 밥’)에서 그는 <동자동 사람들>(정택진, 2021)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타인의 고통과 가난을 쓰는 일은 괴로웠다. 타자의 고통을 지적 유희의 재료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그는 그동안 이 질문을 회피하고 산 건 아닌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당사자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획득하면서, 고통받는 노동자의 삶을 말과 글로 묘사해왔다’는 고백을 한다.

‘내 옆의 사람이 글 속 주인공이 아니라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게 조력하는 조연. 내가 생각하는 타인과 가난을 쓰는 이, 그들과 함께하겠다는 이른바 활동가들이 가져야 할 책임’은, 무척 무거울 것이다. 그에게 쉽게 질문을 던진 나로서는 짐작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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