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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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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여행자는 난민이 된다

인간의 자유와 성장의 드라마로서 여행이 불가능한 코로나 상황
최악의 여행자 숙소 같은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여행자 윤리
등록 2021-03-06 13:08 수정 2021-03-12 01:33
인적이 끊긴 여행사의 달력이 2020년 6월에 멈춰 있다. 연합뉴스

인적이 끊긴 여행사의 달력이 2020년 6월에 멈춰 있다. 연합뉴스

유튜브를 검색하다 한 청년의 이야기에 숨이 턱 막혀버렸다. 유럽에서 일하다 2019년 11월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만 거의 1년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겨울에 따뜻한 동남아에서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려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재난의 결과로 빚어진 일이다. 자신이 돌아갈 길도 없고, 여행업이 사라지니 할 일도 없어졌다. 그가 남긴 지난 1년간의 기록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급박한 때 도움이 되는 다른 사람의 경험

2020년 2월 남미에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코스타리카의 공항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검색과 질문이 이어졌다. 항공사 선임 직원이 오가며 몇 가지를 검토한 뒤 큰일 없이 다행히 탑승할 수 있었다. 걱정되는 건, 뒤에 남겨진 동료였다. 일주일 정도 지나 돌아올 동료에게 공항으로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알려줬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던 때였다.

몇몇 여행자 카페에 글을 남겼다. 오지랖이라고 할까봐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지난 여행의 경험으로 도움이 될 이야기는 하는 게 여행자의 윤리였다. 특히 급박한 상황일 때는 ‘풍부한’ 경험만큼 다른 사람이 빠르게 판단해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경험 많은 여행자를 만나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했다.

오지에 있다면 바로 떠나고, 한국행 직항이 있는 멕시코시티로 최대한 빨리 옮기고, 여의치 않으면 유럽이든 캐나다든 경유편을 구할 수 있는 대도시로 옮기라고 했다. 고립되면 끝이니 빨리 움직이라고 말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자국민에게 빨리 귀국하라고 정부들이 요청하고 있었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갈 때라는 표현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남미 여행자 카페에서 가슴 아픈 글을 하나 봤다. 지금 자기에게 생각나는 것은 엄마와 순댓국이라고 했다. 순댓국이라니, 이 음식 이름 하나에 너무 많은 그의 피곤함과 고통과 슬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지쳤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여행자들의 댓글이 달렸다. 간섭하지 않되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여행자의 마음이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이 고스란히 다가오는 것을 겪어야만 하는 것, 여행에서는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고,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 여행자는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린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노심초사해봤자 점점 ‘무기력’만 확인할 뿐이고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여행에선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돌아가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길이 막히면서 제주도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2021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제주공항 모습. 연합뉴스

외국 여행길이 막히면서 제주도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2021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제주공항 모습. 연합뉴스

떠날 수 없는 이방인, 벌거벗은 생명

돌아갈 수조차 없을 때, 그 순간부터 여행자는 이미 여행자가 아니다. 여행자가 여행자인 이유는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길이 있는 한, 빈털터리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가고 보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가다보면 뭔가 되겠지라며 배짱이라도 부려볼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여행자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건 떠나는 것이다. 최소한 여행자는 ‘탈출’이 가능할 때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고 여행자로서의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같은 재난은 ‘탈출’을 불가능하게 했다. 여행자에게 길이 사라진다는 건 더 이상 그가 여행자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자기의 정체성과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 그저 그 공간에서 그는 순수한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난민’이 된다. 그가 몸에 걸칠 수 있는 아무런 타이틀도 없다. 온전히 그 지역 사람들의 자비에 자신의 생명이 맡겨진다. 떠날 수 없는 이방인이란 ‘벌거벗은 생명’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관광을 가도 여행은 가지 못한다.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점에선 같은 것 같지만 관광과 여행은 다른 과정이다. 관광의 기본은 ‘구경’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관광은 접촉하고 만나지 않는다. 멀리서 구경한다. 그것도 이미 정해진 것을 구경한다. 관광을 간 사람들이 접촉하고 만나는 것은 같이 관광을 간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관광을 가는 사람들은 관광버스 안에서 춤추고, 관광지에서도 술을 마시고 춤추고, 정해진 코스에 따라 같이 몰려다닌다.

여행은 다르다. 여행은 아무리 계획을 잘 짠다고 해도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향한다. 밤새워 정보를 찾아 모으고 떠나더라도 여행의 기쁨을 좌우하는 건 예기치 못한 것과의 접촉이고 만남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설레고 긴장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래서 낯선 것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고 이미 친숙한 ‘끼리끼리’ 친목을 다지고 돌아오는 관광과 달리, 여행은 친숙한 것에서 떨어져 낯선 것으로 향한다.

영웅의 면모, 공동체의 성장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말한 것처럼, 영웅은 ‘일상적인 세계’를 벗어나 ‘초자연적인 경이로운 세계’로 떠난다. 적을 만나 대적하거나 동료를 만나는 등 여러 일을 겪으며 떠나기 전에는 갖지 못했던 ‘동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귀환한다. 그렇기에 영웅의 여정 자체가 여행이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성장이다. 캠벨이 말한 것처럼 돌아올 때 여행자는 이전에 없던 힘을 가지고 돌아온다. 더구나 그 힘은 ‘동료에게 이익을 주는 힘’이다. 자기만의 성장이 아니라 자기 힘의 성장은 곧 자기가 귀환하게 되는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힘이다. 그렇기에 청년을 젊어서 혹사시키며 노동력만 착취하는 사회야말로 어리석은 사회다. 젊어서 해야 하는 것은 공동체에 없는, 그러나 필요한 역량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이다.

또한 여행의 의미는 자유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떠날 수가 없다. 자신의 일상에서 자유롭고, 일상의 관계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정해진 인생 경로에서 자유롭다. 다른 말로 하면 자유의 핵심은 익숙한 것에서의 자유이며 낯선 것을 만날 수 있는 자유다. 그렇기에 자유와 성장이 만난다. 자유로운 자만이 낯선 것을 만날 수 있고, 낯선 것을 만난 사람만이 가지지 못한 힘을 연마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여행은 사고와 사건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여권을 잃어버리고, 누군가는 소매치기를 당하고, 누군가는 보도 듣도 못한 현자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재수 없는 사고로 처리하는지,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만드는지는 여행자에게 달렸다. 사실, 사고를 당하며 그것을 사건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그 여행자에게 여행과 관광이 판명나는 순간이지만 말이다.

‘달관세대’니 하는 말이 회자됐지만 여전히 다수의 청년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의 바닥에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다. 낯선 것을 만나 자신의 터전에서라면 배우지 못할 것을 배우며 힘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외국에 나가 유흥을 즐기거나 흥청거리다 돌아오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난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인간의 자유와 성장의 드라마로서 여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낯선 세계로 떠나는 건 금지된 일로 보인다. 낯선 것을 만나고 접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었다. 유일하게 허용되는 건, 친숙함 안에 안전하게 머무르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길이자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길이 되었다. 길을 떠나지 않는 것이 길인 것이다.

경험을 전수하되 경험을 방해하지 않는 것

여행자에게는 특유의 윤리가 있다. 자신의 오랜 경험을 전수하되 그것을 절대화해 다른 이의 경험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 조언하고 충고하되, 절대 먼저 나서서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 위험한 순간과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되,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막 여정을 떠난 영웅의 길을 막아서는 일만큼이나 어리석으며 여행자 윤리에서는 금기다. 타인의 경험을 재단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여행자의 존재 이유이자 기쁨인 자유와 성장을 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지에서 종종 여행자 윤리를 망각한 이들이 전횡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여행을 떠났다가 꽉 막혀서 더는 여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가장 최악의 여행자 숙소와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말하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한편에 자기가 떠벌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과장해서 떠들며 숙소의 공기를 독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이제 막 길을 떠났다가 길이 막혀 완전한 막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초보 여행자를 보며 은근히 그의 곤혹을 놀리며 즐기는 닳고 닳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 모두 여행이란 무엇인가부터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평가하고 혼낸다.

사람들은 이 피곤함을 더는 감당하기 힘들다. 경이로움이 가득한 바깥 세계로 떠나기는커녕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상에 완전히 쪼그라들고 갇힌 이 삶도 답답하고 힘든데 저 소리까지 들으려니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여행이 불가능해져 모두가 난민이 되어버린 지금이야말로 이 ‘숙소’에 갇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여행자 윤리다. 경험을 전수하되 경험을 방해하지 않는 것. 배려하고 걱정하되 협박하고 윽박지르지 않는 것.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늘어난다고 시민들에게 “해이해졌다”고 ‘면박을 준’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하는 말이다.

엄기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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