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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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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휴직, 11월 해고...봄은 안 오는걸까

2월 ‘여행 캔슬 전화’ 폭주 뒤, 유급휴직 그리고 9~10월 해고·폐업
가장 먼저 여행업 젊은 노동자가 떨어져 나갔다
등록 2021-03-06 11:20 수정 2021-03-09 06:44
2월2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5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김정수(32·가명)씨. 박승화 기자

2월2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5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김정수(32·가명)씨. 박승화 기자


*표지이야기 - 여행업 청년들에게 2020년은 봄부터 겨울이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048.html

청년들이 일자리를 빼앗긴다. 취업을 준비하다 갈 곳을 잃는다. 너무 오래되고 익숙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는 어떤가. 코로나 시대의 청년 실업은 어떤 모습인가.
여행업은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가장 깊게 타격 입은 대표 업종이다. 낮은 취업 문턱으로 청년들을 쉽게 빨아들였다. 유연한 고용 형태와 낮은 임금으로 이들을 맘껏 부렸다. 불가항력의 재난을 맞았을 때 제일 먼저 이들을 밀어냈다. 청년들은 충격파를 견뎌낼 범퍼가 없다. 경력은 보잘것없고 모아놓은 돈은 쥐꼬리만 하다. 소득은 당장 끊기는데 시간은 흘러간다. 업계 안은 황폐하고, 업계 밖은 정글이다. 앉아서 기다릴지, 뛰쳐나가 헤매야 할지 알 수 없다. 위기는 중첩으로 몰아친다.
청년단체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는 청년 여행업 종사자의 지난 1년을 돌아봤다. 청년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2020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청년 여행업 종사자가 경험하는 불안정성’ 보고서에 담았다. <한겨레21>은 보고서를 입수해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을 다시 만났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1년 여행업계에서 일해온 27~35살 청년 5명을 2월25일, 26일 그리고 3월3일 각각 인터뷰했다.
회사 규모나 고용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은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그야말로 ‘버텼다’고 했다. 회사도 정부도 원망하지 못하고, 차라리 여행업을 선택한 자신을 원망하면서._편집자주
2020년 가을: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서민정(35)의 회사가 11월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서민정은 유럽을 누볐을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함께하는 그리스 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중이었다. 주로 동남아 지역을 담당했던 그의 첫 유럽 출장이었고, 인솔자로 거듭나기 위한 도전이었다. 무산됐다. 환불 전화만 처리하다 6월부터 사실상 업무가 종료됐다. 직원 10명이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몇 달을 더 버티다가 문을 닫았다.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 소식을 간간이 듣는다. 다단계를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들었다.

“언젠가는 문을 다시 열 거고, 그럼 제자리로 돌아와야지 생각했는데 폐업이 결정됐어요. 돌아갈 곳이 사라진 거죠. 박봉을 견디면서 10년을 버틴 회사가 사라지니까 방황이 시작되더라고요.” 방황했다. 여행 일을 시작했던 스물다섯 자신을 뒤늦게 떠올렸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지금의 나는 달랐을까, 더 나았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죠.”

첫발을 내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행이나 관광과 무관한 분야를 전공했다. 취업할 때가 됐다. ‘여행 자격증 학원이 있는데, 그 자격증을 따면 여행사 입사가 수월하다. 학원이 취업도 알선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했다. 4학년 2학기, 25살에 취업했다. 토익 시험도 치르기 전이었다. “한국 사람치고 여행 싫어하는 사람 없어서” 그런지 업계는 활황이었다. 기본급(170만원)은 내내 낮았다. 직원들 항의로 출장에 따른 인센티브제도가 겨우 생겼지만, 11년 일했는데 월급 통장에 한 달 220여만원 정도가 찍혔다.

같은 날 서울의 한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난 11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서민정(35·가명)씨. 고한솔 기자

같은 날 서울의 한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난 11년차 여행업계 종사자 서민정(35·가명)씨. 고한솔 기자

199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의 서비스화, 그에 따른 고용의 서비스화에 대한 우려는 오래된 얘기다. “비교적 동질적인 고용 특성을 갖는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은 매우 이질적인 업종들로 구성돼 있다.”(황수경, ‘우리나라 서비스업 고용구조의 특징과 문제점’, 2011년)

이질적이라는 것, 노동형태는 다양하고 임금체계는 복잡하다. 2010년대 청년에게 평생 일터, 연차나 직급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직장은 흔치 않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일시적으로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첫 직장으로 구한 청년이 2010년 37.6%에서 2020년 42.7%까지 늘었다.(2020년 청년층 부가조사) 호봉·직급·직능에 따른 임금체계를 가진 기업은 줄었다. 대신 가장 많이 늘어난 임금체계는 ‘무체계’(2014년 48.5%→ 2020년 60%)다.(임금직무 정보시스템)

업종, 고용형태, 임금에 따른 이해관계와 처지가 분절된 청년 노동자가 뜻을 한데 모으기 어렵다. 청년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019년 8% 정도로 극히 낮다.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1.5%에 그쳤다. 산업이 팽창하고, 노동 수요가 늘면, 그에 따라 노동자의 힘이 세지는 상식적인 상황은 분절화된 서비스업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늦가을, 그렇게 서민정은 실업자가 됐다. 실업급여(160여만원)가 나왔다. 최대 8개월까지다. 데드라인 앞에 연인과의 결혼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나한테 그 정도의 시간은 있겠구나 안도감도 들지만 동시에 이 안에 정말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초조함을 느꼈다.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해를 넘겨버린 2021년 1월1일 자정. 그는 엄마와 술잔을 기울였다. “어차피 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맞는 말이었다.

2021년 3월 정보기술(IT) 계열 청년 구직자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포스터를 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1년 3월 정보기술(IT) 계열 청년 구직자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포스터를 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0년 겨울: 이직의 벽은 높다

“올해도 힘들죠. 2023년까지 봐야죠. 코로나가 끝난다 하더라도, 비슷한 감염병이 올 수 있잖아요. 그럼 지금 이 사태가 또 반복될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업을 이어나가야 하나 생각하다보면, 여행업은 내 업으로 삼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가 끝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제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니,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김정수(32)의 말은 단념이다. 또한 다짐이다. 몇 년이고 기다리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공기업을 준비하게 된 이유다. 특히 안정성에 끌렸다. 여행업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코로나19 앞에 깨달았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공기업 취업에 필요하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7월이다. 결혼한 터라 유급휴직 급여(70%)도 부족했다. “소득을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개인적인 소비는 한 달 7만원만 썼고 회사 허가를 받아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러나 지원한 공기업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 달은 폐인처럼 살았다. 불면증이 찾아와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5년 일한 그의 숙련은 깊되 넓지 않다. 그리고 그의 깊은 숙련이 필요한 산업은 무너졌다. 여행업계가 아니라면 다른 직종에서 활용이 불가능하다. 여행업계에서는 그의 직무를 오퍼레이터라고 부른다. 국내외 여행지를 발굴하고 일정을 계획해서 판매하는 전반을 맡는다. 오퍼레이터가 다루는 예약관리시스템은 회사별로 다르고 시스템을 능숙하게 관리하는 데 3년 이상이 소요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널려 있는데, 무용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 딱 거기까지였다. 32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내가 쌓아놓은 커리어는 다 버려야 하는 건가. 32살이면 남들은 다 대리 이상 다는데 나는 사원으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무서워요. 시대가 변화하고 산업 규모나 구조가 바뀔 거라는데, 정부가 그런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산업군을 육성하면 안 되는 건가요?” 9월에 이르러 모바일 금융서비스 업체에 지원해 면접까지 봤지만 떨어졌다. “왜 여행업을 벗어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산업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그는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든 구직자와 경쟁해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말하지만, 여행업 한 분야에서만 일해온 이 ‘중고 신인’들이 당장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건 쉽지 않다.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은 여섯 종류(직접일자리·직업훈련·고용서비스·고용장려금·창업지원·실업 소득 유지 및 지원)로 구분한다. 실업 지원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이를 빼면 노인일자리사업 같은 직접일자리 창출 비중이 높다.

고용서비스는 전체 일자리 사업 예산 가운데 비중으로 보면 제자리다.(2014년 4%, 2020년 4.7%) 흔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인색한 영역으로 꼽는다. 고용서비스는 채용정보를 알리고, 훈련과 연계하고, 고용을 알선한다. ‘실업한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코로나19처럼 “산업구조 변동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서복경 서강대 교수), 새 일을 찾는 청년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실업자가 됐지만 어쨌든 노동자로 수십 년을 더 지내야 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아무리 늘어놓아도 무엇을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면 의미 없다. 고용서비스의 양적인 확대만 필요한 건 아니다. 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발 빠르고 세련돼야 한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취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임금수준과 직장만족도에서는 참여 집단이 비참여 집단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김덕호, ‘청년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이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 2019년)

계절을 한 바퀴 돌아온 지금, 강미나 회사가 받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 기한(3월31일)은 끝나간다.(정부는 재연장을 검토한다.) 서민정의 실업급여 종료 시한도 몇 달 남지 않았다. “유럽 여행 인솔자로 커리어를 발전시킬”(서민정), “착실히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모을”(박정연) 수 있었던 시간이 사라졌다. “자격증을 6개 따도 결국 아무것도 안 한 느낌”에 고개 숙이거나(강미나), “시대는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만 가만있다는 무서움”으로 대신 채웠다. 그렇게 다시, 봄이 왔다.

경제활동인구 취업자(지난 일주일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와 실업자(4주 동안 구직 활동을 한 사람)를 합한 인원.

비경제활동인구 15살 이상 고용조사 대상 인구에서 경제활동인구를 뺀 인원. 일하고 있지 않지만 구직에도 나서지 않은 사람.

고용보조지표3 확장실업률 등으로 불린다. 실업자에 더해,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추가로 더 일하고 싶은 사람, 구직 기회가 없었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 등을 포함한 실업률. 실직보다 취업이 문제가 되는 청년층 고용 상황을 언급할 때 자주 쓰인다.

고용유지지원금·특별고용지원업종 경제위기 등으로 생산량이나 매출액이 감소한 기업이 노동시간 조정, 휴업·휴직 같은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는 기업에 휴직수당의 3분의 2를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지원한다. 코로나19로 특별히 위기에 처한 여행업·항공업 등 8개 특별고용지원업종에 대해서는 휴직수당의 최대 90%를 지원한다.

실업급여 고용보험 가입자가 실직한 뒤 재취업 활동 기간에 받을 수 있는 지원금. 비자발적으로 실업했어야 하고, 구직 활동에 나서야 하며, 고용보험 적용 사업장에 180일 이상 근무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실업부조 취업 준비 활동을 전제로, 미취업 상태이거나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보편적 취업 지원 제도.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가 2021년부터 시행됐다. 아직은 중위소득 50% 미만을 대상으로 50만원씩 6개월을 지원(1유형)하는 수준이다.

국민내일배움카드 생애에 걸친 직업교육·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300만~5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 주로 실직자와 중소기업 재직자를 지원했는데, 2020년부터 국민내일배움카드로 이름을 바꾸고 대상을 대부분 국민으로 확대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1353호 표지이야기 - 여행업계 청년 코로나 실업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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