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있었던)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인 지옥 같은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제 평생 지울 수 없는 성착취 피해로 인한 상처와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디 가해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법 집행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성폭행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로 2020년 8월31일 불구속 기소된 국군정보사령부 중령과 상사를 재판하는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북한이탈여성인 피해자 한서은(30대 초반·가명)씨가 보내려는 탄원서의 한 부분이다.
<한겨레21>은 한씨가 한국에서 국군정보사 현역 군인 2명에게서 1년 넘게 성폭행당했고,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봤다는 내용을 2020년 6월 보도했다(제1318호 표지이야기). 두 달 뒤 군검찰은 가해자 2명을 기소했고, 관련 재판이 현재 군사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씨와 한씨를 돕는 (사)안양여성의전화는 가해자 2명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2월8일부터 3월14일까지 한 달여 동안 인터넷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http://han.gl/AVPAu). 한씨는 “저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들이 또 나오지 않도록 부디 많은 시민이 서명에 동참해주시길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2020년 10월 시작된 재판은 지금까지 5개월 동안 세 차례의 준비기일과 한 차례의 심리가 진행됐다. 하지만 2021년 1월19일 첫 공판 이후 다음 일정이 한 달 넘도록 잡히지 않고 있다. 한씨의 법률 지원을 맡은 양태정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이미 피해자를 포함해 4명의 증인 신문을 하기로 정해졌음에도 재판 일정을 미루는 건 드문 일”이라고 의아해했다.
앞서 군검찰에서도 이 사건을 맡은 군검사(단기 군법무관)가 이례적으로 8개월씩이나 시간을 끌며 수사하다 2020년 7월 전역한 바 있었다. 당시 군검사가 불기소 처분하고 전역했더라면 가해자들의 잘못은 그대로 묻혔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 피해로 생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공포 속에서 자살 충동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될 뻔한 것이다. <한겨레21>은 이 재판을 계속해서 관심 갖고 지켜볼 작정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기획 - #미투 그후 3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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