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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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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청문회, 사장님은 아직도 불안전한 행동 탓

국회 환노위 사상 첫 산업재해 청문회, ‘중대재해처벌법’ 구체화 절실
등록 2021-02-26 23:46 수정 2021-02-26 23:54
2021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맨 오른쪽) 등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관계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맨 오른쪽) 등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관계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산재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이게 작업자들이 뭘 지키지 않아서 행동을 잘못한다, 이런 말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한영석 대표도) 아마 중대재해처벌법에서 피해가지 못할 것 같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날 선 발언이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향해 날아갔다. 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가 사상 처음으로 연 산업재해 청문회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자리는 수많은 논란 끝에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실효적인 준비와 안착을 위해 산재의 원인을 짚고 대책을 마련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국회에 불려온 산재 빈발 아홉 기업

증인으로는 한 대표를 포함해 최정우 포스코 회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상 제조업), 우무현 GS건설 대표,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이상 건설업),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장,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이상 택배업) 등 9명이 나왔다. 모두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아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업체로, 이들 기업 9곳의 사업장에서 2016~2020년 일하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03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청문회에서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숨지는 끔찍한 산재 사고의 원인에 대한 회사 쪽 낮은 인식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시작은 “2016년 297건이던 현대중공업 산재 신청 건수가 2020년 653건으로 2.2배 늘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박덕흠 의원(무소속)의 질문이었다.

한영석 대표의 문제 답변은 이랬다. “저희가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까 실질적으로 불안전한 상태하고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더라. 그래서 불안전한 상태는 저희가 안전 투자를 해서 많이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상당히 (바꾸기) 어렵다. 저희 작업장에서 직원이 약 3만 명 작업하고 있고 또 중량으로 취급하는 작업장이다. 그래서 정형화돼 있는 것보다도 상당히 비정상적으로 작업하는 부분이 많이 이뤄져서 저희는 항상 표준 작업에 의한 작업을 유도하고 있다.” 누가 들어도 사고의 책임이 피해 노동자 개인한테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한 대표의 책임 전가성 발언을 놓고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졌다. 이수진 의원의 “(한 대표가) 제대로 된 현장 진단 다시 한번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지적에 이어,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대표 발언에) 심각한 우려가 든다”며 “(산재 사고 발생 원인에는 시설·장비 측면, 관리 감독 측면도 있는데)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 때문에 산재가 발생한다면 우리가 이런 걸(청문회를) 왜 하느냐”고 따졌다. 결국 한 대표는 ‘비정형화된 작업과 비표준화된 작업이 많아 작업자가 불안전한 상태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설명한 것일 뿐 작업자 행동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그 뒤에도 “작년 국정감사 준비 기간 중 현대중공업 임원 몇 분이 제 사무실을 방문해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해명했는데, 재해 주원인을 노동자의 과실이나 부주의로 몰아가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답변을 했다고 해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오늘 대표의 답변을 들어보니 평소 현대중공업의 임원과 관리자의 안전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비판이 이어졌다.

“1조원 안전 대책도 결국 기만”

산재 사고만 나면 여론 무마용으로 안전설비 확충 등에 수천억원대 투자 계획을 밝히나 실제 작업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대기업의 행태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주로 포스코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2018년 7월 취임 때 잇단 산재 사고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1조1천억원대 안전설비 투자를 약속했다. 이날 청문회장에선 의원들이 2018년부터 최근까지 노동자 20여 명이 사고로 숨지고 55명이 다친 사실을 들어 최 회장의 투자 약속이 재해 방지에 소용없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노웅래 의원은 2020년 12월 포항제철에서 추락사한 노동자 사례를 들며 “1조원 안전 대책은 결국 포스코 노동자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포스코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앞두고 하청업체에 위험성 평가서 조작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가 문제 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를 향해선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태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2020년 10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장덕준 노동자가 숨진 뒤 쿠팡 쪽은 산재 인정과 직결된 장씨의 노동강도를 알 수 있는 서류를 유족 쪽에 제공하지 않고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재 신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는커녕 산재 인정을 방해한 것”이라고 짚었다. 장씨는 결국 2021년 2월9일 산재를 인정받았다. 강은미 의원은 네이든 대표가 이날도 장씨가 일하던 물류센터 7층의 노동강도가 낮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산재 판정서는 장씨가) 야간 고정 근무를 했고 육체 강도가 높은 업무였다고 얘기한다. 27살 노동자가 과로로 숨진 게 사실이라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얼마나 센 건지 정말 심각한 상황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네이든 대표가) 과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위증한 것”이라고 했다.

“산재 둘러싼 전 과정 감시해야”

시행 11개월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 사고를 줄이는 쪽으로 작용하려면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감시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하위 법령은 다양한 전문가로 티에프(TF)를 구성하고 관계 부처 및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2021년 7월까지 제정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법 집행 과정과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법이란 게 입법 됐다고 법의 취지가 실현되는 게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기소와 판결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재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중대재해 보고서가 부실하게 작성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산재를 둘러싼 전 과정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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