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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굿바이, 상큼한 김선생

등록 2021-02-26 23:40 수정 2021-02-26 23:54
녹색당 제공

녹색당 제공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성별 정체성) 트랜스젠더 당사자 김기홍씨가 2월2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녹색당 등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고인은 지난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서 비정규직 음악 교사로 일하며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자주 경험했다고 밝혔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일은 김기홍씨를 선출직 정치인에의 도전으로 이끌었다. 아니, 정확히는 문재인 후보에게 항의한 성소수자들에게 쏟아진 ‘나중에’라는 구호가 출마를 결심하게 했다. 김씨는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각각 녹색당 소속 제주도의원과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고인은 2020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허프포스트코리아> 인터뷰에서 “그들(성소수자들)이 공식적으로 존재하게 만들고 싶다”고 정치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필요하다면 비키니를 입고 본회의에 출석하는 일도 불사하겠다고 특유의 유쾌함을 담아 공약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당사자 후보가 국회 문턱을 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낙선이 낙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고인은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등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꾸준히 찾아내며 ‘나중에’에 맞섰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그림을 바꿨다. 성소수자 당사자의 자긍심을 담은 서체로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김기홍’ 존재를 적었다. 이름 옆에는 ‘상큼한 김선생’이라는 별명도 덧붙였다. 부고가 전해지자 추모가 잇따랐다. 녹색당은 김씨가 “상처와 고통이 자신을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좋은 활동가의 밑거름이 되도록 애쓰던 사람”이었다며, “그가 그 자신인 것에 대한 세상의 증오에 굳건히 맞서왔다”고 논평을 냈다. 대부분 사람에겐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운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가 누군가에겐 여전히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정인선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관심분야 - 기술, 인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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