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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탈시설’ 정책 제자리걸음, 무늬만 국정과제?

시설에서는 근본적으로 학대 발생 가능성 높아, 100대 국정과제 삼은 국가는 응답해야

제1351호
등록 : 2021-02-22 02:59 수정 : 2021-02-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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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5일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 그곳에 사람이 있다’에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적장애인 때려 숨지게 한 활동지원사 구속.’

2020년 5월11일, 짧은 언론 기사가 하나 떴다. 경기도 평택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적장애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중국 동포 정아무개(35)씨가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다고 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던 정씨는 그해 3월8일 아침 6시10분, 지적장애 1급인 김아무개(38)씨가 칭얼대자 그의 머리를 손과 발로 여러 차례 때렸다. 김씨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1일 만인 3월19일 숨졌다. 정씨는 상해치사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1월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세용)가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는 또 다른 짧은 기사가 보도됐다.

짧은 기사는 의문을 남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이미 시설에서 보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시설에서 만날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정씨는 평택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근무했고, 그 시설 거주자인 김씨를 돌봤으며, 김씨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했다.

<한겨레21>은 사건 발생 장소인 ‘시설’에 주목했다. 인근 마을로부터 거리가 있는, 송전탑 아래 위치한 이 외진 시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피해자 가족과 그들의 변호인에게서 가해자 정씨의 수사·재판 기록 650여 쪽을 입수했다. 이 기록에는 정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동료 활동지원사, 시설 원장의 진술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가 폭행당해 병원으로 실려간, 급박했던 그날의 기록도 보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서 보건복지부, 경기도 평택시·시흥시·안산시,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도 확보했다.

모두 1천여 쪽에 이르는 이 기록을 살펴보니, 시설에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피해자를 숨지게 했던 활동지원사 뒤에는 시설 원장,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숨어 있었다. 현재 원장 부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집한 기록에 근거해 피해자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시설, 시설을 둘러싼 국가의 행적을 역추적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_편집자주

“원장에게 맞아서 발에 피가 났어요. 그래서 가출했어요.”

2018년 4월13일 거주지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신고 접수된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발견됐다. 그의 발등에서 상처가 발견됐다. 전남 함평군의 미신고시설 신○○○이 그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고, 담배꽁초를 줍는다고
“원장이 빗자루로 △△△도 때리고 저도 때려서 빗자루가 부러졌어요. 그래서 ★★★가 고쳐놨어요.” “원장이 등긁이(효자손)로 발·머리·손을 때렸고, 피가 났어요.”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미신고시설 원장 ㄱ(85)씨의 폭행 사실을 줄줄이 읊었다. 그가 치료를 위해 찾았다는 병원의 진료 내용을 확인해보니, 피해자의 상해가 특정됐다. 폭행 도구로 지목된 효자손에 묻은 혈흔에서 피해자 디엔에이(DNA)가 검출됐고, 시설 압수수색에서 수선된 흔적이 있는 빗자루도 발견됐다.

ㄱ씨는 2010년 1월~2018년 4월 이 미신고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허락 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는 이유로,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닌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때리거나, 방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 감금했다. 거주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수당 7700여만원은 원장의 채무 변제나 전화료 납부에 쓰였다. 1심 재판부(광주지법 목포지원)는 2020년 3월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ㄱ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폭행 도구로 쓰인 효자손, 쇠숟가락, 쇠막대, 나무빗자루가 몰수됐다.

2002년 보건복지부가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을 펼칠 때다. 법정 기준을 갖추지 못해도 신고 뒤 유예기간 내에 법정 기준을 갖추면 국가 지원이 가능한 신고시설로 전환해주는 조건부 방침이 마련됐다. ㄱ씨는 1986년부터 운영한 사회복지시설을 신고시설로 전환하기 위해 신축공사를 마치고 사회복지사를 시설장으로 앉혀, 2005년 11월 함평군청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필수종사자 근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군청은 사회복지시설 신고증을 내주는 대신, 2006년 12월까지 필요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 유예기간은 3년 더 연장됐지만 ㄱ씨는 필요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 2009년이 지나 미신고시설이 됐다. 그 뒤 학대가 벌어졌다.

불법시설에 주는 갱생 기회
사랑의집 사건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는 2020년 5월 전국 미신고시설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신○○○을 비롯한 미신고시설 9곳에서 장애인 49명이 거주 중인 사실이 파악됐다. 신고하지 않은 채 운영되는 장애인거주시설은 명백한 불법이다. 2020년 장애인복지시설사업 안내에 따르면, 미신고시설은 발견 즉시 폐쇄하는 등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운영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신○○○ 등은 사실상 폐쇄됐다. 그러나 2곳은 공동생활가정으로 전환됐다. 1곳은 신고시설로 전환을 추가 유도 중이다.

한 개인의 의사나 결정권을 고려하지 않고 제한된 공간에 수용하고 규율하는 시설은 근본적으로 학대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다. 수용자는 생살여탈권을 쥔 운영 주체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2017년 7월 뉴질랜드 인권위원회는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Institutions are places of abus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이런 점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를 ‘조직적 학대’라고 했다. 조직적 학대는 학대가 일어나기 쉽고, 이런 상황이 시정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미신고시설을 신고시설로 전환한다고 해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이유이자, ‘탈시설’에 공감대가 모인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 ‘탈시설’을 들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말뿐이라고 비판한다. 앞서 미신고시설의 신고시설 전환 유도도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와 방향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부 기조에 따라 시설은 더 늘리지 말아야 하고, 하더라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 불가피한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새로 길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트랙에 철도를 더 깔아서 되겠냐”고 비판했다.

탈시설, 말만 100대 국정과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9월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탈시설을 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하고 탈시설 정책 방향과 목표, 추진 일정과 예산 등을 포함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정부가 탈시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시설 소규모화에 국한돼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10월 한국 정부에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탈시설을 향한 정부 차원의 계획은 사실상 답보 상태다.

2021년도 보건복지부 사업설명 자료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시설 관련 예산은 해마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거주시설 운영지원비는 2019년 4787억5천만원→ 2020년 5055억6900만원→ 2021년 5469억5천만원으로 늘었다. 시설 신축, 증개축을 위한 기능 보강비도 2021년 111억7300만원에 이른다. 반면 탈시설을 위한 지역사회전환센터 신규 설치비는 2억여원에 불과하다. 탈시설 실적이 부진할 수밖에 없다. 2020년 한 해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 수는 2251명으로, 탈시설을 한 장애인 수(843명)보다 2.7배 더 많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신고시설 중 문제 있는 곳은 이미 고발 조치했다. 기본 여건을 갖춰 시설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곳을 양성화한 것이다. 정책 기조가 탈시설이라고 해서 장애인을 무작정 원거주지로 돌려보내고 시설을 폐쇄하기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표지이야기 - 사랑의 집 성진씨의 죽음 그리고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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