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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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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해 눈물도 안 나오는 판결문

1년간 이어진 재판의 끝 우려는 현실로, 변호인의 의견서 같은 판결문
등록 2021-02-21 14:59 수정 2021-04-16 04:44
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2021년 2월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받고 나와 취재진 앞에서 유족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2021년 2월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받고 나와 취재진 앞에서 유족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기소된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수뇌부 11명에 대한 1심 선고가 있던 2021년 2월1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이 기자와 방청객으로 가득 메워졌다. 법정 분위기는 삼엄했다. 법원 직원을 방청석 곳곳에 배치해 유가족을 감시하고, 심지어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을 때 한 유가족이 불만을 표시하자 비디오카메라로 채증까지 했다.

탑승객 구조 가능성, 무죄의 근거로

나는 지난 1년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의 부실 수사로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면 어떻게 하나, 책임자를 처벌할 기회를 잃는 것 아닌가’라고 걱정했다. 이날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할 때 우려가 현실로 바뀌리란 걸 직감했다. 판결문 대신 ‘변호인의 의견서’를 잘못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한 뒤 퇴정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판결에 나는 기가 막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싶었지만, 원통한 마음에 울음소리조차 토해내지 못했다.

무엇이 최악의 재판 결과를 초래했을까? 검찰의 부실 수사와 재판부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을 탓할 수밖에 없다.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출범 당시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제기되는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실제 포장지를 뜯어보니 2014년 수사 결과의 복사판에 불과했다. 굳이 새로운 내용을 찾는다면 △피고인 김석균이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28분께 위기관리실에 임장했으며, 피고인 이춘재(전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가 9시19분 속보를 보고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았고 △피고인 임근조(전 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의 최악의 늑장 보고가 있었다는 사실 정도였다.

1심 재판부는 ①세월호 침몰 당시 법과 해경의 매뉴얼이 피고인들에게 ‘구조의무를 부여했는가’ 하는 것과 피고인들에게 ‘퇴선 유도의 책임이 있는가’ ②피고인들에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되는가 ③피고인들이 탑승객을 구조할 가능성은 있었는가 등을 핵심 쟁점으로 다뤘다고 나는 판단한다. 재판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특별한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세 번째 사항은 피고인들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해, 결국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

퇴선 명령을 하였더라도, 라는 가정

피고인들은 “세월호 사고를 인지한 이후 최선을 다해 인명구조를 지휘했지만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아무런 구호 및 퇴선 조치 없이 도망가거나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세월호의 선내 상황과 침몰 속도를 감안하면 구조세력이 현장에 도착하는 즉시 퇴선 명령을 하도록 지휘하였더라도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피해자들이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거나 탈출 과정에서 상해를 입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피고인들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음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 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구조 가능한 시간 안에 해경의 구조세력이 침몰 현장에 도착했고, 탈출 승객 모두를 태울 수 있는 유조선 둘라에이스호 등이 있었으며, 바람·수온·파도 등 구조 환경도 좋았는데, 피고인들이 왜 일사불란한 구조가 진행되도록 지휘하지 않았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구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들의 부작위와 지휘 부재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생각이다. 따라서 구조 방기 이유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검찰과 재판부에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러나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고,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책임을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123정장 등 현장 구조세력에게 떠넘겼다. 나머지 부분은 세월호의 선체 내부 결함 등으로 몰아붙이고 피고인들에게 ‘무죄’라는 엄청난 선물을 건넸다. 구조 실패 혐의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123정장 김경일에 견줘, 해경 수뇌부는 침몰 현장 구조작업을 총괄 지휘해야 할 최고위층 인사임에 따라 현장 구조세력보다 높은 주의 의무가 요구됨에도 재판부는 이에 눈감아버렸다.

유가족들에게 너무 원통한 사건이라, 재판부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하더라도 결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법과 해경의 매뉴얼이 피고인들에게 일사불란한 구조지휘권을 행사하도록 강제하고, “당시 상황실에서 수시로 전화를 걸고 스무 번 넘게 무전을 쳐 구조에 전념할 수 없게 했다”면서 “해경 지휘부에도 공동 책임이 있다. (현장 구조세력인) 123정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있음에도, 재판부는 국민의 법 감정을 깔아뭉갰다.

끝까지 지켜보리라

해경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권’을 수호하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조직이다. 세월호 침몰 같은 중대한 사건을 접수하면, 사고의 경중에 따라 ‘상황대책팀’을 소집하거나 ‘구조본부를 비상 가동’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유가족은 피고인들이 이것을 위반했으므로 사법기관이 엄격하게 판단해 합당한 처벌을 해달라고 호소했는데, 재판부가 정의를 무참하게 밟아버렸다. 항소심에서도 피고인들과 검찰, 재판부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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