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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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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나도록 때려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성진씨 죽음 이후에야 알려진 장애인거주시설의 비리…
미신고시설, 활동지원제도 허점 이용해 상당한 수익 올려
등록 2021-02-19 23:16 수정 2021-02-22 18:00
2020년 3월8일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을 2021년 2월9일 바라본 모습. 한 지붕 아래 평강타운(미신고시설)이 함께 운영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2020년 3월8일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을 2021년 2월9일 바라본 모습. 한 지붕 아래 평강타운(미신고시설)이 함께 운영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지적장애인 때려 숨지게 한 활동지원사 구속.’
2020년 5월11일, 짧은 언론 기사가 하나 떴다. 경기도 평택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적장애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중국 동포 정아무개(35)씨가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다고 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던 정씨는 그해 3월8일 아침 6시10분, 지적장애 1급인 김아무개(38)씨가 칭얼대자 그의 머리를 손과 발로 여러 차례 때렸다. 김씨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1일 만인 3월19일 숨졌다. 정씨는 상해치사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1월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세용)가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는 또 다른 짧은 기사가 보도됐다.
짧은 기사는 의문을 남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이미 시설에서 보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시설에서 만날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정씨는 평택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근무했고, 그 시설 거주자인 김씨를 돌봤으며, 김씨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했다.
<한겨레21>은 사건 발생 장소인 ‘시설’에 주목했다. 인근 마을로부터 거리가 있는, 송전탑 아래 위치한 이 외진 시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피해자 가족과 그들의 변호인에게서 가해자 정씨의 수사·재판 기록 650여 쪽을 입수했다. 이 기록에는 정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동료 활동지원사, 시설 원장의 진술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가 폭행당해 병원으로 실려간, 급박했던 그날의 기록도 보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서 보건복지부, 경기도 평택시·시흥시·안산시,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도 확보했다.
모두 1천여 쪽에 이르는 이 기록을 살펴보니, 시설에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피해자를 숨지게 했던 활동지원사 뒤에는 시설 원장,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숨어 있었다. 현재 원장 부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집한 기록에 근거해 피해자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시설, 시설을 둘러싼 국가의 행적을 역추적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_편집자주

“성진이가 머리를 다쳤어요. 수술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시나요. 별일 아니니 굳이 오실 필요는 없어요.”

2020년 3월8일 오후 5시50분. 안복순(68)은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장애가 있는 아들 김성진(38)을 돌보는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 원장 김은애(62)가 다급히 말했다. 성진의 동생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어머니를 데리고 형이 있다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일단 수술에 동의한다고 서명했다. 원장이 전한 자초지종은 이랬다. “성진이가 아침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거실로 기어 나오다가 머리를 출입문 문틀에 부딪쳤다. 몇 시간 동안 괜찮았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서 119에 신고했다.”

한 통의 전화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

의사는 다음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성진의 머리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보며 “6시간 이내 충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성진은 병원에 실려오자마자 뇌수술을 받았고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10여 일을 버티다가 3월19일 세상을 떴다. 사인은 외상성 뇌출혈과 뇌부종.

성진은 뇌성마비와 지적장애(1급)가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오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6살이던 1988년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걷거나 앉지 못했다. 어릴 때 다리가 굳었고 내내 엎드려 생활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찼다. 말은 하지 못했다. ‘아아’ ‘까까’ 정도로 의사표현을 했다.

그런 성진을 돌보는 건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은 돈 벌 나이가 되자마자 독립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성진은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면 홀로 집에 있었다. 2008년 가세가 더 가파르게 기울었고 어머니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성진을 돌봐주던 활동보조인이 ‘시설에 성진을 입소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사랑의집’은 어머니가 고민 끝에 고른 시설이었다. 원장의 아들도 성진과 같은 장애인이라고 했다. 믿음이 갔다. 매월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로 대신한다고 했다.

그렇게 성진이 시설에서 산 지 12년여 흐른 참이었다. 갑작스러운 성진의 죽음에 가족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성진은 엎드려 누워 있는 장판을 누가 끌어주거나 스스로 기어서 이동했다. 속도가 매우 느렸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쳐 다치는 것도 이상한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가. 직원이 들어올리다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성진의 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 평택시청 복지과를 찾았는데, 성진이 사랑의집에서 퇴소 처리돼 있다고 했다.

가족들은 1년 한두 번 원장과 미리 약속하고 성진을 만나러 사랑의집을 찾았다. 어머니와 막냇누이가 마지막으로 성진을 만난 2018년 추석으로 기억한다. 성진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고 손을 뻗었다. 나도 집으로 데려가달라는 얘기였다. 어머니는 그때 성진을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가슴을 쳤다.

활동지원사로 ‘입사’했을 때 들은 지시

“제가 (성진이를) 때렸습니다.”(정민수)

“폭행에 의해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말입니까.”(경찰)

“예, 맞아요.”(정민수)

2020년 4월30일, 정민수가 평택경찰서 조사에서 자백했다. 그는 사랑의집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며 피해자를 돌봤다. 전날 경찰에 긴급체포된 그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정민수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 목욕탕 심부름꾼, 휴대전화 부품 생산 일을 전전하다 28살이 되던 2013년 한국에 들어왔다. 지게차 운전, 일용직을 옮겨다니던 그에게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던 어머니가 같은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니까 한번 해봐라.”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한다. 장애인 활동지원기관에서 이론·실기 교육 40시간, 현장실습 10시간을 채우면 교육 이수증이 발급된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해 신체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을 도우면 지자체가 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나 정민수는 ‘장애인거주시설’인 사랑의집에서 숙식하며 일했다. 원장과 일종의 근로계약도 맺었다. 이면계약에는 급여계좌와 통장, 카드를 원장에게 제출하고 그 급여는 사랑의집이 관리하며, 이런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1)

정민수가 사랑의집에 ‘입사’했을 때 원장에게서 들은 지시는 이러했다. “애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라.”2)

사건이 발생한 3월8일 아침 6시10분, 성진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랑의집에서 예배는 가장 중요한 일과다. 장애인은 물론 활동지원사도 예배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정민수는 예배 시간에 맞춰 방에 누워 있는 성진을 예배당(거실)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나가기 싫어서 고개를 흔드는 성진의 멱살을 잡고 예배당으로 끌어당기자 성진이 몸부림쳤다. 정민수는 화가 나 성진의 머리를 세 차례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그날 오후 성진이 그가 건넨 캔커피를 손으로 쳐 이불에 쏟았다. 그는 다시 한번 성진의 머리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성진이 입에 거품을 물고 손과 발을 떨었다. 구급차가 왔고, 성진은 병원에 실려갔다.

“우리 말이 삐뚤게 나가면 안 돼”

정민수는 처음부터 장애인을 때린 건 아니라고 항변했다. 원장과 그 남편은 ‘훈육’을 이유로 장애인을 때렸다. 활동지원사에게 직접 시범을 보인 적도 있다.3) 2020년 초 평일 아침 예배 시간. 또 다른 장애인 이도현(42·지적장애)이 예배를 보는데 이를 간다는 이유로 원장 남편이 효자손을 들었다. 정민수는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다. “장애인을 때리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져 촬영했다. 나중에 신고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4) 그러나 학대는 학습됐다. 같은 해 2월 정민수가 예배당 앞에서 성진을 때렸다. 성진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말리는 이는 없었다. 원장 남편은 이를 보고도 피가 나지 않게 때리라고만 했다.5) 원장도 평소 “(성진이는) 살이 있는 곳만 때려라”라고 했다.6)

원장 부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건 당일 원장 남편에게 전화해 “자수할까요”라고 묻자, 원장 남편은 “바빠죽겠는데 왜 이러냐. 조용히 있어라”라고 했다고 정민수는 주장했다.7) 원장 부부는 활동지원사들을 모아놓고 “우리 말이 하나가 돼야 한다. 말이 삐뚤게 나가면 안 된다”고도 당부했다고 한다.8)

원장은 3월10일 정민수를 퇴사 처리했다. 경찰에 제출한 ‘사고 발생 당일(3월8일) 활동보조사 근무자 명단’에도 정민수를 누락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정민수를 수사하는 계기가 됐다.

성진에 대한 정민수의 폭행 사실(2건)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는 2020년 5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원장 등도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받았고, 일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원장이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을 하나의 시설로 운영한 사실” “원장이 원장 남편, 활동지원사들과 공모해 장애인활동지원급여비용을 부정하게 청구한 사실” “암환자에 대해 기본적인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 등을 인정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숨진 김성진씨의 생전 모습. 사랑의집 예배당에서 가족들과 만나 웃고 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그는 장판 위에서 생활했다.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책장 넘기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유족 제공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숨진 김성진씨의 생전 모습. 사랑의집 예배당에서 가족들과 만나 웃고 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그는 장판 위에서 생활했다.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책장 넘기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유족 제공

12명의 주소지 41차례 옮겨

사랑의집은 평택의 외진 곳에 있다. 원장은 2002년부터 미신고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을 운영하다, 2007년 2월 이곳으로 시설을 옮겨왔다. 그러다 2011년 3월 평택시에 공식 등록해 신고시설(정원 8명)로 전환했다. 수십 미터 송전탑 아래 논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인근 마을에서 400~500m 떨어져 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피해 장애인 대부분은 사랑의집에서 생활할 때 외출한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온종일 방 안에 멍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남자는 까까머리, 여자는 단발머리. 개인 소지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진이 유품으로 남긴 거라곤 회색 상의와 트레이닝복 바지 2벌, 양말 한 짝이 전부였다. 속옷과 신발은 공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맞지 않는 신발을 덜걱거리며 신었을까. 그 신발조차 신고 나갈 일이 생기면 좋았을까. 장애인 여러 명이 무좀을 앓고 있었다.9)

개인의 욕구나 필요는 지워졌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상 의무교육 대상자가 3명(입소 당시 만 17살·12살·14살) 있었지만 학교에 다닌 적은 없었다. 2008년부터 10여 년간 시설에서 거주했던 또 다른 입소자는 사건이 발생하고 시설을 옮긴 뒤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다.

반면 원장의 권력은 선명했다. 장애인이 입소할 때 원장은 신분증과 도장, 통장 등을 건네받았다. 그때 쓴 각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이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지라도(사건, 사고, 가출, 사망 등) 사랑의집에는 어떤 이유라도 묻지 않고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실제로 퇴소 처리는 물론, 전입 신고까지 원장의 전권하에 이뤄졌다.10)

입소 장애인 통장에 꽂히는 돈도 물론 원장이 모두 관리했다. 한달 생활비로 평가될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비(생계급여, 주거급여) 외에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등을 착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 15명은 매월 105만~115만원을 받았다. 그들의 통장에선 커피숍, 식당, 가전용품 렌털 등의 사용 내역이 발견됐다. 2003년부터 2020년 4월까지 2억1800여만원을 착취한 것으로 추정된다.11)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활동지원제도의 허점도 파고들었다.

원장 김은애는 2019년 말 리모델링을 마친 미신고시설 평강타운에 장애인 명의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사랑의집에서 퇴소 처리한 장애인들을 미신고시설인 평강타운 101~104호에 입주한 것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평강타운은 사랑의집과 한 지붕 아래 있는, 내부 복도를 통해 연결된 사실상 하나의 건물이다. 성진을 비롯해 장애인 18명이 이 지붕 아래에서 성별에 따라 2~5명씩 함께 방을 썼다. 하지만 서류상으로 4명은 사랑의집에, 14명은 평강타운이라는 가정집에 1~2명씩 짝지어 사는 것처럼 꾸몄다. 가족도 모르는 사이 성진은 사랑의집에서 퇴소 처리돼 2014년 9월~2019년 12월 5년여간 경기도 안산 본오동에 거주한 뒤 이 미신고시설로 전입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를 포함해 장애인 12명의 주소지는 2011~2018년 모두 41차례나 옮겨졌다.12)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이미 시설에서 지원받고 있기에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시설 퇴소 처리하고 주소지를 미신고시설로 옮기면 서류상 시설 거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활동지원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파견된 활동지원사를 사랑의집은 나랏돈으로 월급을 주면서 마치 시설 직원처럼 부린 셈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맹점을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장애인을 이용한 한층 진화된 범죄다.”(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보건복지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사랑의집과 평강타운 운영으로 얻어지는 예상 수익은 월 1845만원이다. 신고시설 수익원(시·도에서 지원하는 보조금과 입소자의 장애수당 등)과 미신고시설의 수익원(기초생활수급자와 비수급자의 장애수당 등)을 합한 금액으로, 두 시설의 운영 수익을 비교하면 크게 차이는 없다. 그런데 미신고시설에서 활동지원사를 파견받아 시설 직원처럼 부린다면 수익이 급증한다. 2020년 3월 한 달 활동지원사(6명)에게 주어진 급여액은 3100만원(1인당 500만원꼴)이었다. 활동지원사 월급(200여만원)을 제외하고도 돈이 꽤 남는다.13)

김성진씨 유품. 다른 장애인과 돌려 입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의 한 벌과 하의 두 벌, 양말 한 짝, 신분증이 전부였다. 시설에서는 개인 용품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유족 제공

김성진씨 유품. 다른 장애인과 돌려 입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의 한 벌과 하의 두 벌, 양말 한 짝, 신분증이 전부였다. 시설에서는 개인 용품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유족 제공

“사건 발생 전까지 미신고시설 존재 몰라”

앞서 2017년 2월 안산시는 ‘진화된 범죄’를 인지한 바 있다. 당시 성진은 퇴소 처리돼 안산시로 주소가 옮겨진 상태였다. 안산시는 성진이 안산시가 아니라 평택시 사랑의집에 거주한다고 의심했다. 안산시는 2016년 5월~2017년 2월 부당 지급된 급여를 환수하면서 원장과 활동지원사를 수사 의뢰했다.14) 그러나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끝냈고, 급여 환수 조처도 행정소송 끝에 취소됐다. 사랑의집에 일정 기간 머물렀지만 시설 거주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정수급은 재개됐다. 사망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 부정수급 시스템은 재발각됐다.

미신고시설 운영, 활동지원제도 악용을 국가와 지자체는 몰랐을까.

보건복지부 지침(2020년 장애인복지시설사업 안내)을 보면, 사회복지시설이 있는 지자체는 시설을 반기별 1회 이상 정기 점검해야 한다. 평택시는 시설 운영 투명성 확보, 지출 처리 부적정 등으로 2017년 개선명령, 2018년·2019년 주의처분 등 매년 가벼운 행정처분만 내렸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비슷한 주소지에 5명 이상 거주하면 미신고시설이 설치된 건 아닌지 의심하고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하지만,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거주시설에 설치해야 하는 인권지킴이단도 임명·운영된 적 없다. 평택시 관계자는 “인권지킴이단이 없었고 사건 발생 전까지 미신고시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문을 닫아놓고 저쪽은 개인주택이라고 하면 강제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명했다.

“미신고시설을 적발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평강타운은 다르다. 완전 음지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게 신고시설(사랑의집)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행정으로는 학대나 위기 상황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아동학대 문제였다면 ‘집에서 문 닫고 한 범행을 우리가 어떻게 발견하냐’고 되물을 수 있겠는가.”(탈시설을 돕는 프리웰재단의 김정하 이사장)

보건복지부 또한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3년마다 사회복지시설을 평가해야 한다. 사랑의집은 2016·2019년 연달아 최하 등급인 F등급을 받았다. 장혜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19년 평가 보고서를 보면, 사랑의집은 시설과 환경, 재정과 조직 운영, 이용자의 권리 등 6개 평가 항목 모두 최하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개선 조처는 없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 평가로 높은 등급을 받으면 인센티브를 주고, 낮은 등급을 받으면 더 좋은 등급을 받도록 유도한다. 연달아 F등급을 받았다고 어떤 제재를 가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민수가 상해치사, 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뒤 2020년 5월과 8월 평강타운과 사랑의집은 모두 폐쇄됐다. 그러나 원장은 시설 폐쇄 조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입장을 묻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원장과 남편은 “지금 제기되는 의혹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장의 남편은 “소설을 쓰듯 양쪽에 확인조차 하지 않고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음에 마음이 아프다. 너무 큰 피해를 입었다. 세상에 100%는 없다. 꼭 반대급부는 있다. 지금은 수사 중이어서 지켜보고 있지만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 (언론 보도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거주지까지 빼앗겨

성진은 평택에 있는 약천추모관에 안치됐다. 기초생활수급자면 평택에서 운영하는 시립납골당에 무료로 유골을 안치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장에 의해 주소지가 안산시에서 평택시로 바뀐 지 3개월 만에 사망한 탓에, 평택시 거주 기간을 충족하지 못했다. 성진은 마지막 거주지마저 빼앗겨버렸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1) 정민수 경기도 평택경찰서 5회 피의자신문(2020년 5월3일)
2) 경기도 평택경찰서 수사보고(2020년 4월30일)
3) 8) 동료 활동지원사이자 정민수 어머니 경기도 평택경찰서 2회 참고인진술(2020년 5월1일)
4) 5) 정민수 경기도 평택경찰서 4회 피의자신문(2020년 5월1일)
6) 동료 활동지원사 참고인진술(2020년 5월4일)
7) 정민수 검찰 2회 피의자신문조서(2020년 5월21일)
9) 10) 11) 12)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통해 입수한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 자료
13) 장혜영 의원실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 분석 자료
14) 안산시 장애인활동지원 부정수급 수사 의뢰(2017년 6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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