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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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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1차 합의, 끝까지 잘 부탁합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막는 ‘1차 사회적 합의’ 비결은 국민 지지
택배비 현실화 등 ‘2차 사회적 합의’까지는 갈 길 멀어
등록 2021-01-30 02:08 수정 2021-01-30 02:08
택배업계 노사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분류 작업 책임 문제 등에 대해 최종 합의한 2021년 1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참가자들이 서로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택배업계 노사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분류 작업 책임 문제 등에 대해 최종 합의한 2021년 1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참가자들이 서로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잇단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와 사용자, 정부 등이 모인 사회적 대화기구가 1월21일 분류 작업의 책임, 노동시간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전국 단위 사회적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보다 작은 업종 단위 사회적 대화가 거둔 소중한 결실이다. 하지만 택배사 쪽이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며 노조 쪽은 다시 총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번 협상 과정에 참여한 노조 쪽 얘기를 들어봤다. _편집자

2020년 7월5일 전국택배노동조합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경남 김해에서 씨제이(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로 일하던 동생이 과로로 사망했다는 누나의 제보 전화였다. 고인은 사망 며칠 전 배달 도중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왔지만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단다. 자신이 싣고 나온 택배는 반드시 그날 배송을 마쳐야 하고 배송을 못하면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는 계약서 때문이다. 고인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배달을 마쳤고 일요일에야 병원에 가서, 끝내 차디찬 주검이 되어 가족에게 넘겨졌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출발이다.

‘택배사 선의’가 아니라 ‘택배법 제정’을 목표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출범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 속속 제보로 들어왔다. 광주 CJ에서 택배 시작 8년 만에 처음 가족 여행을 가기로 한 당일, 첫 가족 여행에 들뜬 5살 아들이 아빠를 흔들어 깨웠지만 아빠는 끝내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020년 10월8일에는 CJ강북에서 일하던 택배노동자가 배달 도중 택배 차량 운전석에 머리를 숙이고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내 아들의 죽음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그리고 나흘 뒤 한진택배 정릉대리점의 한 청년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청년 택배노동자가 숨지기 전 동료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는 ‘나 너무 힘들어요’였다. 카톡을 보낸 시간은 그날 일을 마친 새벽 4시28분이었다.

한분 한분 너무도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2020년 한 해에만 택배노동자 16명이 과로사에 의한 ‘사회적 타살’을 당했다. ‘더는 죽이지 말라’는 구호가 집회장에서 터져나왔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계속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사용자 선의’가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해 과로사의 주요 원인인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들어갔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일명 택배법)의 조속한 통과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노동자/사용자/민간/정부/국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을 요구했다.

택배산업 문제는 상품 생산 기업과 판매 업체, 소비자, 택배사, 택배노동자가 얽히고설켜 택배 노사의 합의만으로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실질적으로 논의해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가 참가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필수 전제조건이었다.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고 반응은 뜨거웠다. ‘택배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결성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늦어도 괜찮아’란 해시태그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 2020년 12월7일 사회적 합의기구가 국회에서 출범했다. 여기엔 정부에서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우정사업본부 등이 참가했고 국회와 소비자단체, 온라인쇼핑업체 등 대형 화주 단체, 그리고 택배사업자와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참가했다.

28년 공짜로 해오던 ‘분류 노동’ 해방에 한 걸음

1차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과로사로 이어지는 가장 핵심적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 작업 문제에 대해, 택배사업자를 포함한 참가 단체들은 ‘사용자 책임임을 명시’하는 소중한 합의를 이뤄냈다. 그런데 2차 회의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택배사업자 단체는 교섭 참가자를 교체하면서 지난 1차 합의안 전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택배 인도·인수 작업이라며 분류 작업 자체를 부정하는 용어를 들고나오는가 하면, 분류 작업은 택배기사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분류 작업의 책임 소재를 논하기 전에 먼저 택배비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택배사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하지만 택배사들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더는 죽이지 말라’란 구호가 현장에서 다시 터져나오고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살기 위한 사회적 총파업’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2021년 1월10일 충남 천안 자동차극장에 수백 대 차량이 모였다. 드라이브-인-스루 방식으로 차 안에서 진행된 대의원대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사회적 총파업이 결정됐다. 1월20~2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전체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투표율 97%, 찬성 91%로 압도적으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그동안 온갖 갑질과 7시간의 공짜노동, 내 옆 동료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현장에 대한 분노였고 응어리진 ‘한’의 결과였다.

1월21일 새벽 국토부와 택배사들이 분류 작업이 사용자 책임이라는 것을 포함해 심야배송 금지, 노동시간 단축 등에 합의하고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를 추인하면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1차 합의안이 드디어 체결됐다. 난마처럼 얽혀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택배산업과 현장의 가장 큰 현안이 사회적 대화, 업종별 교섭을 통해 합의에 이른 역사적 순간이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결과를 보고하는 과로사 대책위의 기자회견 펼침막 문구다. 진심이었다. 국민의 성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28년 공짜노동이던 분류 작업에서 해방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합의 못지않게 합의 이행 문제는 훨씬 더 중요하다. 택배노동자들은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약속을 파기하곤 했던 지난날 택배사들의 행태를 똑똑히 기억한다. 사회적 대화를 주도했던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백마진’ 없애고 택배비 올리려면

아니나 다를까,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별도 투입’ 약속을 지키지 않고 머뭇거린다. 노조가 사회적 총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제 2월17일부터 2차 사회적 대화가 본격화된다. 2차 회의에선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 전제가 되는 물량 축소와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배송수수료 인상, 택배사의 분류 작업 투입비에 대한 대책 등을 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 쇼핑업체의 백마진(소비자에게 택배비 2500원을 받아 택배사엔 1700원만 지급하고 800원을 이익으로 챙김)을 금지하는 등 비정상적인 택배시장의 거래 구조를 개선하고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서 하락한 택배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이해당사자의 절박성을 넘어 전 국민적 동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73.9%가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택배비 인상에 동의한다’는 국민의 지지(국민권익위원회 2020년 11월 조사)를 굳게 믿고 근본적인 택배 현장 개선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고자 한다. ‘밝고 건강한 택배노동자가 국민의 택배를 안전하고 친절하게 배송하는 것.’ 대장정의 종착점은 이런 모습이 되길 기대해본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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