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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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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기르고 싶다

손톱을 짧게 깎아야 하는 나, 손톱을 길러서 기타를 칠 수 있을까
등록 2021-01-17 12:20 수정 2021-01-22 01:53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나는 손톱을 손가락 밖으로 길게 기르지 못한다. 아프기 전부터 있었던 습관 중 하나인데, 아프고 나서 그 습관이 더 심해졌다. 손가락을 책상이나 다른 면에 수직으로 세웠을 때 손톱이 그 면에 닿는 감각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을 때가 자주 있어서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도 있다.

중학생 때 시험이 한 달마다 있었다. 시험에 집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의 하나로 손톱을 깎지 않았다. 손톱은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바짝 깎지 않으면 한 달 새 확 자라서 깨끗하게 유지하기도 힘들고 불편했다. 그래서 짧게 손톱 깎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병을 진단받고 약을 먹으면서 온몸이 부었는데 손가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톱이 자라면서 손톱 밑 여린 살을 파고들어 곪곤 했다. 손톱 깎는 주기가 짧아지고 길이도 더욱 바투 깎게 되었다.

중학생 때 짧은 손톱으로 가장 불편했던 일은 우쿨렐레를 치는 것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3학년 모두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치셨다. 손으로 줄을 튕기는 현악기와 담을 쌓고 살아가던 나조차 연습을 거듭해서 기초 몇 곡은 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습득하는 데 오래 걸렸다. 현을 튕길 때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였다. 손톱이 나보다 조금이라도 긴 친구들은 편하게 연주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손톱을 조금 기르고 쳤더니 훨씬 나았으므로 손톱을 기르는 것이 우쿨렐레 치는 요령이라고 믿었다.

고등학교 와서 우쿨렐레를 연습해보려 마음먹고는, 손톱의 각진 부분을 다듬어가며 공들여 기른 뒤 도전해봤다. 하지만 며칠 반복해보니 살이 아팠다. 손톱이 현에 부딪혀 갈려서 애써 기른 손톱이 사라져서다. 재미도 없어졌다. 대신 기타를 치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다. 우쿨렐레가 안 된다면 기타도 꾸준히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번만이라도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

어쩌면 기타를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몸이 붓는 부작용이 있는 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고 있다. 지금 먹는 약을 완전히 끊어 더는 몸이 붓지 않게 되면, 손톱 기르는 일이 수월해질 거다. 네일 스티커를 붙이거나 매니큐어를 바르고 봉선화 물을 들이는 것도 차례로 해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내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것이 손이었다. 얼굴엔 보습크림 바르는 것도 종종 잊어버리는데, 손에는 비교적 많은 관심을 쏟 았다.

손이 부으면서 생김새가 많이 변했다. 속상한 마음에 손톱 깎을 때 말고는 일부러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요즘은 거의 2주에 한 번은 손톱을 바짝 깎는 것 같다. 사실 이 습관을 고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해서다. 숭덩숭덩 자르다보니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날에 손을 베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짧게 깎으면 이삼일 손톱 밑 살이 아프다. 물리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손에 힘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불리한 것 같다. 손톱이 길 때만큼 힘이 안 들어간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오랫동안 지닌 습관이니 고치는 데도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성가실지 모른다. 습관은 가랑비에 옷 젖듯 몸에 스며든다. 습관을 떨쳐버리기까지는 거기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약을 바꾸는 것이 나에게는 변화를 부를 만한 계기가 될 만큼 기쁜 일이다. 습관을 고치게 될 날을 고대한다.

신채윤 고1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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