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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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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이 이런 줄 알았다면” 고백하는 이유

정인이 입양부모는 어떻게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는가…
상처받은 입양아동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는 입양실천 필요해
등록 2021-01-17 08:20 수정 2021-01-20 01:07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2021년 1월13일 오전, 양부 안아무개씨가 재판을 마치고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남부지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2021년 1월13일 오전, 양부 안아무개씨가 재판을 마치고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남부지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부모의 학대로 16개월의 짧은 삶을 마감한 ‘정인(입양 전 이름)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1월13일 서울남부지법 앞에는 100여 명이 모여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 ‘사형장으로’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수개월 전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정인이 생일을 축하하던 입양부모가 어쩌다가 살인죄로 기소되는 아동학대범이 됐을까. 14년차 입양부모이자 입양가정을 위한 교육과 상담, 위기지원 등을 해온 실천가는 전문성 없는 입양실천(입양 전·진행 과정·입양 후)을 이 사건의 원인으로 꼽았다. _편집자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일어났다. 16개월 아기가 새 가정으로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다 사망에 이른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아이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이 그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온 국민이 16개월 작은 아이가 겪었을 고통에 치를 떨며 ‘악마’인 그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외친다.

그들은 불과 수개월 전 추석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입양한 딸의 생일을 가까운 입양가족들과 함께 축하하며 선하고 사랑 많은 입양부모의 모습을 보여줬다. 모르긴 해도 안방에서 이를 지켜보며 ‘저런 천사 같은 부모가 많아져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이가 꽤 있었으리라.

선한 열망은 입양 환상을 낳는다

지난 1년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 입양부모는 어쩌다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을까. 처음부터 악마였던 이들이 천사인 척하려다 본색이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입양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이들이 입양 뒤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리며 점차 악마로 변한 것일까.

답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현재 우리나라의 입양실천(입양 전·진행 과정·입양 후)에 허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자라면 애초에 부적절한 대상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책임이 있고, 후자라면 어려움에 부닥친 입양아동과 부모를 적절히 돕지 못해 결국 한 아이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14년차 입양부모이자 10여 년 동안 입양가정을 위한 교육과 상담, 위기지원 등 사후서비스를 이행하는 실천가다. 입양 뒤 1년간 입양아동의 적응을 사후관리하도록 법으로 명시한 입양기관과 달리, 사후서비스기관은 입양 이후의 삶에서 입양가족이 겪는 여러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곳이다.

입양기관과 사후서비스기관은 입양가정을 만나는 시기와 목적도 다르지만, 의무사항이냐 선택사항이냐의 차이점도 있다. 현재 모든 사후서비스는 개인이 원할 때 신청해서 참여하는 구조라, 입양가정은 법정 사후관리 기간이 끝나면 누구에게도 관리되거나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많은 입양가정은 입양 교육을 열심히 찾아 받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상담에 참여하거나, 가족 문제로 위기지원을 신청하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입양부모는 선한 열망을 품고 입양으로 들어선다. 이제껏 삶에서 대단하게 이룬 것도 없으나 그렇다고 크게 지탄받을 일도 해본 적이 없는, 삶의 여러 경험이 맞물리며 보호가 필요한 아이의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평범한 이들이다. 내게 그러했듯,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를 통해 보아온 입양가족의 모습, 그들을 대하는 대중과 미디어의 언어, 잊을 만하면 나오는 감동적인 입양 이야기는 입양을 결심하는 데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1월13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 앞에 추모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류우종 기자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1월13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 앞에 추모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류우종 기자

입양부모 교육 하루 8시간이면 끝

문제는 그렇게 단편적인 이해와 열망에 힘입어 입양을 결심한 이들이 편견과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입양부모가 되도록 돕는 과정이 우리나라 입양실천에는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제된 이미지로서 입양이 아닌 생생한 육아 현실로서 입양, 불쌍한 아이를 구원하는 선행이 아닌 상처받은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는 진짜 입양부모의 삶은 언제쯤 배우게 되는가. 입양을 진행하고 아이를 만나 적응하는 기간에 이런 과정이 다각도로 제공돼야 함에도 현재의 입양실천에는 그 과정이 거의 생략됐다.

현재 예비 입양부모 교육은 1일 8시간 교육을 들으면 수료증이 나오는, 대규모 인원 대상 강의 형태로 진행된다. 하루 8시간 동안 쏟아지는 교육 내용은 소그룹으로 더 깊이 나뉘거나, 다양한 질문으로 성찰되거나, 워크숍으로 체감해보거나,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깊어질 여지 없이 그 자리에서 대부분 증발된 언어로 끝난다. 말 그대로 하루 8시간을 잘 견디면 수료증이 나오는 교육이라 누구든 이 과정을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그마저 코로나19 때문에 동영상 강의 수강으로 대체된 지금의 예비 입양부모 교육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언급해서 무엇 할까.

예비 입양부모 교육은 스스로 갖고 있던 입양의 편견과 환상을 점검하고, 나는 왜 입양으로 부모 되기를 선택했나라는 깊이 있는 동기 점검이 이뤄져야 하는 단계다. 또한 입양아동의 심리적 어려움이나 발달 과제, 입양부모가 겪는 어려움과 여러 상황을 조망해 과연 우리가 입양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한지, 나는 입양자녀의 상실을 이해하고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부모인지 성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분리 겪으며 심리적 외상 입은 아이

우리 사회에서 입양은 늘 사랑이고 행복이고 축복이라 여겨왔기에, 입양아동의 상실에 대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신생아든 나이 많은 연장아동이든 친생부모와 분리돼 새로운 입양가정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리를 재경험했는지, 그것이 아이 발달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몇 번이나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견디며 어떻게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는지 우리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게 심리적 외상을 입은 아동이 집으로 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동의 기질과 성격, 이전 경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입양아동은 초기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전 세상을 갑자기 등지고 낯선 곳에 재배치된 아동이 먹고 자고 소통하는 면에서 이전과 다름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 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어린아이는 말할 수 없으므로 몸짓으로, 울음으로, 거절하는 행동으로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표현한다. 조금 더 큰 아이는 무서운 눈빛과 거친 행동으로, 반항이나 이상행동으로 자신의 힘듦을 나타내기도 한다. 입양과 상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입양부모는 아이의 이런 모습이 별나고 힘들게 느껴진다. 또한 자신의 노력을 거부하는 적반하장의 행동으로 받아들여 화가 날 수도 있다. 여기서 도움을 청할지, 아니면 무력으로 아이를 통제할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입양을 가족이 되는 과정이라 받아들이고 입양 이슈를 이해한 부모라면 아이의 상실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부모로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때마다 적절한 도움을 청하며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간다. 그러나 입양 동기가 자신의 선함에 머물러 있는 부모는 주파수가 자신에게 맞춰져 있어 입양아동의 상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거절감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과정에서 점차 실패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 된 아이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지고 방향을 상실한 입양부모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10년 전 아찔했던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이야기이기도 하며, 정체성 변화를 겪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양이 이런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예요”

“선생님, 입양이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저는 안 했을 거예요.” 지난 10년간 어려움을 겪는 입양가정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10년 전 고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니 여전히 입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삶으로 뛰어들게 하는 우리의 입양실천은 정말 갈 길이 멀다.

입양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사회와 미디어, 그 안에서 이미 기울어진 이해를 품고 들어오는 이들을 현실적인 입양부모의 삶으로 방향 전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상처받은 입양아동을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과 전문가가 없다면,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입양을 선택한 삶이 온전한 입양부모의 삶이 되도록 돕지 못하고 미디어 앞에서는 천사, 삶의 실패 앞에서는 악마가 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우리의 전문성 없는 입양실천 전반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이설아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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