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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금지 이유, 교도관은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동부구치소 1193명, 장애인거주시설 247명 확진,
전체 사망자 1027명 중 정신질환자가 408명… 시설 집단생활이 부른 예고된 재앙
등록 2021-01-17 07:39 수정 2021-01-19 00:45
2021년 1월5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르던 서울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인이 창틀을 향해 손을 내미는데 비둘기가 그 앞에 앉아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1년 1월5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르던 서울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인이 창틀을 향해 손을 내미는데 비둘기가 그 앞에 앉아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몸무게 42㎏, 폐쇄병동 생활 20년.’
2020년 2월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처음 사망한 ㄱ씨(당시 63살)를 설명하는 말이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정신병동(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환기가 안 되는 ‘폐쇄성’, 여러 명이 한 병실에서 생활하는 ‘과밀함’, 침상이 없는 ‘비위생’, ㄱ씨가 사망 직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은 감염병 시대의 대책과 모든 면에서 어긋났다. 이 모든 상황이 맞물린 청도대남병원에선 정신질환자 104명 중 102명이 확진됐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밀집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집단감염되는 출발점이다.
2020년 11월 중순 시작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은 1·2차 때와 달리 감염병이 누구를 목표 대상으로 삼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교정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격리시설에 거주하는 수용인이다. 본래 교정과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감염병을 통해 배제와 격리, 고립, 방치라는 격리시설의 본질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인권활동가들은 “한국 사회에 잠복한,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문제를 바이러스가 드러내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청도대남병원 이후 밀집·밀접·밀폐를 일컫는 ‘3밀 공간’의 집단감염이 계속 발생했지만, 정부는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라는 원천 봉쇄 말고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코호트 격리를 한 곳 가운데 이른바 n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1193명(2021년 1월14일 기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247명(1월12일 기준)이 확진되고, 전체 사망자 1027명 중 정신질환자가 408명(1월6일 기준)에 이른다. 코호트 격리를 21세기 한국 정부가 집단감염 사태에서 취한 조처 가운데 최악이라 하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죽음을 복기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은 잘못은 반복의 형태로 복수를 감행하는 까닭이다. ‘코로나19 시대 격리시설 보고서’를 시작한다._편집자주

2020년 12월 말 코로나19 확진자가 500여 명에 육박하던 서울동부구치소(이하 동부구치소)에서 나온 40대 여성 김민선(가명)씨는 출소 직전 한 달 동안 공포에 떨었다.

1년여 수용된 동안 감염 위험 속에 5인실 방에서 수용자 8명이 부대끼며 지냈다. 9명이 쓰는 방도 있었다.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에도 구치소 쪽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무서운 전파력으로 번졌으나 구치소 안에서 거리두기는 불가능했다. 누우면 누군가의 머리나 발과 맞닿았다. 몸을 뒤척여 돌아눕는 것도 어려웠다. 감염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마스크를 하든 안 하든 밀착할 수밖에 없죠. 사람이 많고 환기가 안 돼 자다 깨면 공기가 탁해서 힘들었어요. 방에서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더라고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르던 2020년 12월20일 구치소 안에서 방역 관계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르던 2020년 12월20일 구치소 안에서 방역 관계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 달 동안의 코로나 공포

김씨는 같은 방의 아픈 이가 외부 병원에라도 다녀오면 소독은 제대로 하고 들어왔는지, 혹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러나 구치소 쪽에 문제제기를 한 적은 없다. 구치소가 ‘갑’이고 수용자는 ‘을’이기 때문이다.

11월27일께 갑자기 매일 30분씩 허용된 운동과 일주일에 두 번 20분간 허용된 목욕은 물론 가족 접견 등이 금지됐다. 구치소 쪽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만 수용자 사이에서 퍼졌다. 주임 교도관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여자 확진자는 없다”는 말뿐이었다. 며칠 뒤 텔레비전 뉴스에서 구치소 집단감염 사태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김씨는 1·2차 전수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구치소 내부 통제는 더 강화됐다. 도서 대출도 금지됐다.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예민해지니까 사람들끼리 자주 싸우고요.” 김씨가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동부구치소의 최근 내부 풍경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동부구치소 관련 누적 확진자는 2021년 1월14일 현재 직원 27명, 수용자 1166명 등 모두 1193명이다. 국내 집단감염 사례로는 1차 대유행 진원지 ‘신천지’(5213명)에 이어 두 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김씨의 우려대로 1월9일 첫 여성 확진자가 나온 데 이어 12일 5명이 추가됐다.

급기야 법무부는 14일 코로나19에 취약한 기저질환자와 고령자를 비롯해 벌금을 내지 못해 들어온 노역자 등 수용자 900여 명을 조기 가석방했다. 인권단체 등은 이를 코로나19 대량 확산 뒤 이뤄진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동부구치소와 함께 코로나19 겨울 대유행을 이끄는 장애인시설과 정신병원 등에도 비슷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공간에 격리된 취약계층의 인권을 살피지 않는 한 재앙을 멈출 수 없다는 간절한 외침이다.

코로나19가 사회적 취약시설을 공격할 것이란 경고는 감염 초기 터져나왔다. 2020년 2월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된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고 환자 104명 중 102명이 동시다발로 확진됐다. 인권단체 등은 대량 확산이 우려되는 곳으로 이들 격리시설을 지목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대책을 세우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아니나 다를까 3월에 대구의 정신병원인 제2미주병원(182명), 배성병원(10명), 9월엔 서울 다나병원(69명)과 경기도 박애원(42명)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12월에는 충북 음성 소망병원(137명)과 진천 도은병원(128명·이상 2021년 1월10일 기준)으로 감염 사태가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사망자 1027명 중 정신질환자가 408명(2021년 1월6일 기준)에 이른다(정춘숙 의원실 제공, 질병관리청 자료).

장애인시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장애인 거주 시설별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2월 경북 예천 극락마을(2명)을 시작으로 경북 칠곡 밀알사랑의집(21명), 대구 성보재활원(9명)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그후 계속 북상해 경기도 여주 라파엘의집(34명), 파주 아름다운누리(40명), 서울 신아재활원(76명), 경기도 안산 평화의집(26명)에 이르렀다. 2021년 1월12일 현재 19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입소자 177명, 종사자 70명 등 모두 247명이 확진됐다.

2020년 말 정신병원 등 밀폐된 각종 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나리라는 경고는, 앞서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질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면서 나왔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청도대남병원을 방문한 뒤 2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병원 모습.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2020년 말 정신병원 등 밀폐된 각종 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나리라는 경고는, 앞서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질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면서 나왔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청도대남병원을 방문한 뒤 2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병원 모습.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엎친 ‘3밀’ 위에 덮친 ‘과밀’

집단 수용 환경은 이들을 코로나19에 더 취약하게 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시설은 외부와 소통이 단절됐고,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데 운동을 못하니 호흡기가 약하고 근육량이 줄어든다. 시설에 오래 있다보면 일종의 ‘시설 증후군’이 생긴다. 기저질환까지 생기면 코로나19에 훨씬 높은 치명률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정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깥세상과 격리된 밀폐 공간에서 다수의 수용자가 밀집해 살면서 일상적으로 밀접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3밀’의 공간이다. 바이러스가 퍼지기에 가장 좋은 물리적 환경이다. 게다가 시설 수용자의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고 외부와의 소통이 쉽지 않은 등 인권침해적인 사회 환경은 감염 위험을 배가한다.

한 달 남짓 만에 확진자 수가 1천 명을 넘어선 동부구치소 사태는 ‘과밀수용’이라는 비인간적 상황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구치소와 교도소 등 전국 교정시설 53곳 대부분이 고질적인 과밀수용 문제를 겪고 있다. 법무부 ‘2020 교정통계연보’를 보면, 2019년 교정시설의 하루 평균 수용인원(5만4624명)은 수용정원(4만7990명)을 넘어 수용률이 113.8%에 이른다.

확진자가 잇따르던 2020년 12월7일 동부구치소의 수용인원은 2413명으로 정원(2070명)의 116.6%, 과잉수용 상태였다. 수용자는 1·3·5인실 등 모두 800여 개의 방 가운데 3인실엔 4∼5명, 5인실엔 7∼8명이 생활해야 했다. 12월 중순 한 동부구치소 수용자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좁은 방에 8명이 있으니 더 스트레스가 심한가보다. 우리 방에서 제일 젊은 사람(체온)이 37도가 계속 넘고 있어서 걱정되기는 한다. (다행히) 그 사람과는 잠도, 앉을 때도 거의 가장 먼 곳이다.” 수용자는 독거 수용을 원칙으로 하되 독거실이 부족하거나 수용자 보호·교화·사회복귀 등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혼거 수용이 가능하다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제14조)은 법전에 고립된 문자에 머물렀다.

정신병원의 과밀도 심각하다. 상당수 정신병원은 청도대남병원과 마찬가지로 좁은 병실에 여러 명이 모여서 생활하는 구조다. 확진자 69명이 나온 서울 다나병원은 22개 병실 중 10인실이 16개였다. 8인실 이상 병실 수는 19개로 전체의 86%나 된다. 2020년 6월부터 약 두 달간 경남의 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오영진(가명)씨는 이렇게 말한다. “6명에서 많을 땐 8명까지 한 병실에서 생활했다. 내가 머문 3층의 5개 병실 중 1개 병실만 4인실이고 나머지는 10인실이었다. 3층에 입원한 환자 40명가량이 각각 한 곳뿐인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코로나19 대량 확산을 막기 위해 교정시설의 3밀 상태를 해소하라는 안팎의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멀게는 2016년 12월에 헌법재판소가 교정시설의 과밀수용은 수용자의 인간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이듬해 8월엔 부산고등법원이 처음으로 구치소 과밀수용을 이유로 국가가 수용자한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시설과 인력을 늘려야 해결할 수 있는 과밀수용은 개선되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병원은 코로나 걸린 정신질환자를 거부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827.html

*표지이야기 - 코로나19 격리시설 보고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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