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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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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유포죄’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

프라이버시권 보호, 민사소송 활성화
등록 2021-01-12 11:33 수정 2021-01-13 06:04
2020년 12월 유튜버 ‘하얀트리’는 대구의 한 무한리필 간장게장집을 방문해 음식 재사용 의혹을 제기했는데, 오해로 밝혀졌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0년 12월 유튜버 ‘하얀트리’는 대구의 한 무한리필 간장게장집을 방문해 음식 재사용 의혹을 제기했는데, 오해로 밝혀졌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지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2020년 12월 유튜버 ‘하얀트리’는 대구의 한 무한리필 간장게장집을 방문해 음식 재사용 의혹을 제기했다. 오해로 밝혀졌지만 온갖 비난에 시달린 식당은 영업을 중단했다. 2016년 ‘강남패치’라는 폭로성 사진과 글을 게재하는 계정이 등장한 이후, ○○패치 같은 신상정보 공개 계정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성소수자의 성정체성을 밝혀도 처벌받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 성소수자 같은 취약계층을 보호할 장치를 먼저 만들어준 다음 폐지해야 한다.”(서혜진 변호사)

부작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해법은 무엇일까. 선진국처럼 개인의 명예는 형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되, 개인 사생활의 자유(프라이버시권)는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도 개인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법조항이 몇몇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이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기업·기관·단체)가 개인정보를 유출한 경우 처벌하는 것이기에 처리자 지위에 있지 않은 일반 개인이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프라이버시권 확대를 위한 형법 규제 방법은 다양하다. 현행 형법상 비밀침해죄(제316조)를 강화할 수 있고, 별도의 사생활 침해죄를 신설할 수도 있다. 형법상 비밀침해죄는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장치를 해둔 문서나 기록, 편지 등을 개봉하거나 기술적 수단을 통해 알아낸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댓글이나 SNS 등에 게시한 경우는 제외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폐지한 뒤에는 신상털기나 사생활 침해, 가짜뉴스 유포 등의 범죄에 대한 별도의 형법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성폭력처벌법에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과 몸 등을 합성하는 기술) 영상물’ 처벌을 강화하는 규정을 만든 것이 좋은 전례다. 과거 딥페이크 영상물 관련 범죄는 명예훼손죄 또는 음란물유포죄로만 처벌됐는데, 범죄 성립 요건에 해당할 때만 처벌할 수 있어 책임에 맞는 처벌이 어렵다는 등 비판이 많았다. 2020년 6월 법률이 개정돼 명예훼손 범죄 성립 요건 해당 여부와 상관없이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면 바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일부에선 민사소송을 활성화해 폐지 부작용을 해결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에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이 부과하는 손해배상을 말한다. 이상현 변호사는 “간통죄를 폐지하면 간통이 증가하는 것 아니냐 우려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민사소송에서 위자료가 높게 책정되는 추세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비범죄화하되, 민사상 배상액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표지이야기-'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운명은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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