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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에 외면받는 중증외상 환자들 버릴 수 없어”

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이 말하는 ‘코로나19와 공공병원의 역할’
등록 2021-01-03 14:38 수정 2021-01-05 04:53
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매일 1천명 안팎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대유행이 계속되고 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유행 중에 가장 위태롭다. <한겨레21>은 2020년 12월25일 아침 7시부터 12월27일 아침 7시까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머물면서 코로나19와 관련된 48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 병원에는 코로나19 중환자가 가장 많이 입원 중(50~60명)이다. 코로나19가 번진 이후 국립중앙의료원이 긴 시간, 있는 그대로 모습을 공개한 건 처음이다. 취재는 국립중앙의료원의 도움을 받아 방역지침을 지키며 진행했다.

골반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공사 현장에서 후진하는 5t 트럭에 깔렸다. A대학병원에 실려갔지만 아예 입구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B대학병원은 응급처치만 한 뒤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보냈다. 이 환자를 살리려고 김영환(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은 한 달 넘게 애쓰고 있다. 12월26일 오전에는 서른 번째 수술을 마쳤다. 절반 이상 없어진 근육과 피부를 새로 덮어주기까지 아직도 스무 번의 수술이 남았다.

교통사고, 추락 등으로 크게 다친 중증외상 환자에게 “서울은 지옥”이라고 김 센터장은 말했다. 중증외상 환자 받기를 꺼리는 병원들을 구급차를 타고서 ‘뺑뺑’ 돌아야 하는 탓이다. 실제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던 사망자 비율이 뜻밖에 서울은 30.2%나 된다. 대형병원이 많은데도 전국 평균(19.9%)보다 크게 높다(보건복지부 2017년 외상 사망자 연구자료).

중증외상 환자와 119구급대한테 국립중앙의료원은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폭행이나 자해 등으로 다친 노숙인과 행려인들도 이 병원의 문을 두드린다. 코로나19 유행 뒤로 외상센터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더 많아졌다. 다른 병원 응급실 문턱이 높아진 탓이다. 미열만 나도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병원들은 환자를 거부한다.

연휴인 이날도 자전거를 타다가 다쳐 뇌진탕 증세를 보인 환자, 넘어져서 턱관절이 빠졌는데 병원 2곳에서 거부당한 80대 환자 등이 구급차에 실려왔다. 김 센터장은 “코로나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응급실에 오더라도 코로나 진단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해서 적절한 치료가 늦어지는데다, 아예 병원 ‘입구컷’(입구에서 거부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한 중증외상 환자는 20명이다. 공사장에서 추락한 노동자, 건물에서 추락한 뒤 영하의 날씨 탓에 양쪽 다리에 동상까지 걸린 독거 중년 남성 등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만 5명이다. 노숙인 2명도 입원 중이다.

중앙감염병 전문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 환자만 치료하겠다며 당장 문 닫을 수 없는 이유다. 2020년 3~9월 입원한 중증외상 환자를 모두 내보낸 적도 있지만, 병원 폐쇄가 꼭 정답은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외상팀 의료진이 투입되면 코로나 중환자 두세 명을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9월엔 그렇게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하루이틀 만에 위기를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김 센터장은 코로나19 진료에 ‘공공병원이 희생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고 했다. “2015년 메르스 때도 병원을 통째로 비웠는데, 그 뒤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공공병원을 내팽개쳐놨어요. 공공병원에 투자한다면 오히려 눈을 부라리고.”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계속할 작정이다. “코로나 환자 몇 명 더 살리겠다고 서울에서 누구도 보지 않는 중증외상 환자, 노숙인 같은 사회적 약자 수백 명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표지이야기-국립중앙의료원 48시간 르포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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