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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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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인가

코로나19 열악한 치료 환경 속 확진자·사망자 잇따라
등록 2021-01-01 10:44 수정 2021-01-02 01:56
2020년 12월29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시행 중인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간호사가 건물 밖 취재진을 보고 있다. 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요양원에 코호트 격리는 ‘코호트 격리가 아니라 그저 방치해놓은 것’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연합뉴스

2020년 12월29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시행 중인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간호사가 건물 밖 취재진을 보고 있다. 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요양원에 코호트 격리는 ‘코호트 격리가 아니라 그저 방치해놓은 것’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연합뉴스

“코호트 격리돼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 죽어가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주세요.”

2020년 12월28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올라온 절박한 호소다.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의료진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일주일 전부터 위급하다고 (코로나19 치료 중환자 병상)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수시로 연락했지만 병상 배치를 받지 못한 한 분이 오늘 또 운명했다”고 성토했다. 12월15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미소들요양병원·요양원에선 29일까지 환자 94명을 비롯해 간병인 53명, 간호사 9명 등 모두 175명이 감염됐다. 그중 환자 4명은 병상을 기다리다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윤영복 미소들요양병원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국민청원 내용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확진자를 병원 밖으로 분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상황이라, 앞선 검사에서 음성이었던 환자와 직원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 확진자가 위중해져도 우리는 감염병 중환자 치료 대비가 안 된 병원이라 속수무책이다.” 평소 간호 인력의 30%가량(약 40명)과 행정직 약 30명만 남아 병원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확진자(당시 50여 명)를 포함해 고령환자 146명을 보고 있다며, 윤 원장은 덧붙였다. “모두가 번아웃돼 손들기 직전 상황이다.” 지난 2주 동안 이 병원 환자를 구하기 위해 서울시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투입한 의료진이나 돌봄·행정 인력은 없었다.

요양병원에 갇힌 채 숨지는 노인들

세상과 격리된 채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현장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12월29일 기준, 확진자 175명 가운데 38명이 숨진 경기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을 비롯해 울산시 양지요양병원(243명 확진·24명 사망), 충북 청주시 참사랑노인요양원(108명 확진·8명 사망), 경기 고양시 미소아침요양병원(87명 확진·4명 사망) 등 의료진과 돌봄 인력이 사투를 벌이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12월8일부터 29일 0시까지 약 20일 동안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은 확진자는 55명. 12월 전체 코로나19 사망자 333명의 16.5%를 차지한다.

비극의 시작은, 겨울철 대유행이 예고됐음에도 준비하지 않은 데 있다. 정부는 병상 확보에 소홀했고 요양병원·요양원(노인요양시설) 대규모 감염 대응체계를 마련하지 않았다. 요양병원·요양원 환자는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고령에 기저질환을 가진 고위험군이다. 이들을 수용할 병상 부족은 원내 감염 급증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병상 자원과 의료진 소진, 사망자 급증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요양병원·요양원 집단감염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의료진, 간호사, 요양보호사 인터뷰를 종합해 구조적 문제를 되짚었다.

①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아닌, 그저 방치하는 것

확진자가 속출하는 요양병원·요양원에선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시행된다. 코호트 격리란 1인 1실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일 때 확진자는 확진자끼리, 바이러스에 노출된 접촉자는 접촉자끼리 동일한 집단을 묶어 격리하는 것이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따르면 ‘일상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엔 ‘확진자 코호트는 허용하지만 의심자(접촉자)는 권장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접촉자 가운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잠복기 환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집단시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출입을 봉쇄한 뒤 바이러스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따지는 위험도 평가를 한다.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밖으로 보내고, 감염 가능성이 있는 접촉자는 1인실에 격리한다. 접촉자 수에 견줘 병실이 부족해 여러 명을 한 공간에 둘 수밖에 없다면, 병상을 최소 2m 간격으로 배치하는 등 조처해야 추가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12월10일 울산시 남구 양지요양병원 앞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가 소독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12월29일까지 모두 24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12월10일 울산시 남구 양지요양병원 앞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가 소독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12월29일까지 모두 24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확진자·접촉자·일반환자 모두 남겨졌다

코호트 격리 중인 요양병원·요양원에는 확진자, 접촉자, 감염 가능성 없는 일반환자 등 동일한 집단 하나가 아닌 두세 종류 집단이 있다. 확진자 상당수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탓이다. 병상 여유분이 생겨도, 의료진 피로도가 높은 상황에서 치료뿐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고령환자 전원에는 한계가 있다. 요양병원·요양원 환자는 가족이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감염 가능성이 없더라도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 환자를 받으려는 병원이나 요양원은 드물다. 이렇게 병원 안에 남은 확진자, 접촉자, 일반환자 세 그룹은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법에 따라 설치된 요양병원이든 노인복지법을 따르는 요양원이든 대부분 다인실 중심으로 운영돼 원내 밀집도가 높다. 환자가 큰 폭으로 줄지 않는 상황에서 병상 2m 이상 간격 배치, 화장실·샤워실 분리 사용, 보호구 착탈 구역 지정 등 감염 예방 원칙을 지키기 매우 어렵다. 여기에 환기 시설이 미흡하거나 좁은 공간에서 소수의 의료진·돌봄노동자가 여러 환자를 돌보는 열악한 곳일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이러한 시설에 적용되는 코호트 격리는 ‘코호트 격리가 아니라 그저 방치해놓은 것’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제발 확진자 몇 명만이라도 빼달라. 그래야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서로 다른 구역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확진자를 조금이라도 빼야 의사·간호사가 잘 수 있는 방을 만든다. 며칠째 복도에서 자고 있다’ 같은 현장의 호소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감염을 최소화할 방법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하기 어려운 현장이 많다는 것이다.

② 감염되지 않은 환자도 보낼 곳 없다

요양병원·요양원 감염 규모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확진자와 접촉자 둘 중 한 그룹은 반드시 시설 밖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 감염병 전문가의 의견이다. 정부가 돌봄이 필요한 경증 확진자를 수용하기 위한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지정에 나선 까닭이다. 그러나 확진자뿐 아니라 접촉자 분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울산시 양지요양병원 집단감염 사례에서 접촉자 분산 대책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이 병원에선 환자 167명, 요양보호사 22명, 의료진 21명 등 모두 243명(12월29일 기준)이 확진됐고 24명이 숨졌다. 이날 기준 울산시 전체 코로나 사망자는 26명이다. 단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망자가 요양병원 한 군데에서 나왔다.

12월5일부터 이틀간 확진자 91명이 발생하자 울산시는 병원을 폐쇄하고 코호트 격리를 시행했다. 공공병원이 없는 울산시는 코로나19 치료를 울산대병원 한 곳에 의존하고 있다. 수도권에 견줘 유행 규모가 작고, 다른 집단감염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고령 확진자를 모두 옮길 수 없었다. 12월24일 고령환자 전원을 요양병원 밖으로 이송하기까지 20일이 걸렸다. 그사이 확진자가 계속 나오자, 울산시는 음성인 환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다. 실제 민간 요양병원 병동을 비우고 환자를 옮겨 격리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해당 병원 의료진과 종사자의 반대가 컸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감염 관리 교육과 훈련을 진행해,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신뢰 형성이 필요했다.

안종준 울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장(울산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요양병원 집단감염 등에 대비해 사전에 지역 의료기관 실태를 파악해놓고 비상시 병동을 비워 비교적 안전한 환자를 받는 등 원내 밀집도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승관 단장은 “현재 요양병원 인프라, 인력 구조로는 한 구역에서 늘어가는 확진자를 돌보며 다른 구역에서 음성에서 양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환자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며 “경영이 어려워진 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접촉자 격리 치료를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안은 비확진자 격리 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 정책이 마련돼야 실행이 가능하다.

정부가 비확진자 격리 치료 보상해야
③ 자신이 감염돼도, 환자 돌봐야 하는 사람들

비수도권에 있는 요양병원 60대 간호사 ㄱ씨는 12월 중순부터 병원에 갇혀 하루 18시간가량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의료진 가운데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그가 일하던 병동이 코호트 격리됐다. 평소 20여 명의 간호사·간호조무사가 치료하던 환자 80여 명을 10명 남짓한 인원이 돌보고 있다. 원내 요양보호사 인력도 줄었다. 일부는 감염돼 병원에서 치료 중이고, 일부는 공포에 질려 그만두었다.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ㄱ씨와 동료들은 환자를 뺀 병실을 소독하고 숙식을 해결한다. “몇 시간 눈도 붙이지 못하고 정신없이 환자를 살피다보면 나까지 걸릴까봐 정말 겁나고 힘들어요. 그렇지만 환자들을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없어요.”

장기요양이 필요한 환자가 이용하는 요양병원은 병원·종합병원에 견줘 의사와 간호사 수가 적다. 병원·종합병원 의사 배치 기준은 입원환자 20명당 1명, 간호사는 입원환자 2.5명당 1명이다. 그러나 요양병원의 경우 의사는 입원환자 40명당 1명, 간호사는 입원환자 6명당 1명이다. 요양원엔 입소자 25명당 1명의 간호사,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두게 돼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충분한 의료진과 돌봄 인력이 없는 건,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적 돌봄을 해결해온 우리의 민낯이다.

요양병원·요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평소에도 충분하지 않았던 인력이 대폭 줄어든다. 그러나 이런 현장을 돕기 위한 인력 투입이 매우 더딘 상태다.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의 경우 12월11일 첫 환자가 발생한 지 일주일가량이 지나 환자를 더는 보기 어려울 만큼 인력이 줄었을 때 중수본 인력이 투입됐다. 12월28일 병원에 남아 버텨왔던 의사와 간호사·간호조무사 10명과 그동안 음성이었던 환자 21명 모두 감염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앞서 이 병원 의료진은 <한겨레21> 인터뷰 요청을 사양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기사가 아무리 잘 나와도 병상이 없어 우리 병원 환자를 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힘들 것이다.”

환자가 환자 돌보는 요양병원
자료: ‘2020 노인복지시설 현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를 통한 노인장기요양시설의 감염관리 개선방향’, 김두리·이미향, 2020

자료: ‘2020 노인복지시설 현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를 통한 노인장기요양시설의 감염관리 개선방향’, 김두리·이미향, 2020

④ 감염 위험 가중하는 훈련되지 않은 인력 투입

집단감염 격리 현장에 인력이 투입되더라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생긴다. ‘치료와 돌봄’ 이중고가 있는 요양병원·요양원의 열악한 환경 탓에 하루이틀 만에 그만두거나,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탓에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12월21일 중수본에서 울산 양지요양병원으로 파견한 50대 요양보호사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경기도는 현직 소방공무원과 예비 소방공무원 중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자격이 있는 40명을 모집했다. 이렇게 모은 인력을 10명씩 4개 조로 구성해 집단감염 현장 등에 투입했다. 옥민수 울산대병원 교수(예방의학과)는 “장기적으론 지역 종합병원 혹은 공공 요양병원 인력을 정기적으로 교육해 집단감염 발생 때 이들을 현장에 투입하고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인력은 파견으로 인한 공석에 배치하는 등 (안전을 담보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⑤ 정부가 줄이겠다는 대기자엔 누락된 환자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최고치(1241명)에 다다른 성탄절(25일 0시 기준), 윤태호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1일 이상 병상 대기자를 두 자릿수 이내로 줄인다는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줄이겠다고 공언한 ‘병상 대기자’엔 요양병원·요양원 환자가 누락됐다. 브리핑에서 언급한 ‘1일 이상 병상 대기자’는 자택 대기자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병상 배치를 기다리다 숨지는 확진자는, 병상 대기 중 사망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자택·응급실에서 사망한 경우만 통계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12월20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요양병원 같은 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는 격리병상으로 전원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료적 처치를 받기 때문에 (대기 중 사망) 집계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현황 파악부터 시작해야

집단감염 발생으로 격리된 요양병원·요양원, 장애인 복지시설 상황 변화에 대한 정보도 체계적으로 취합되지 않는다. 누적 확진자뿐 아니라 이송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확진자는 몇 명인지, 비확진자는 얼마나 되는지, 이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내외부 인력은 몇 명인지 등을 알아야 실제 현장의 위험도를 판단할 수 있는데 그런 정보가 없다. 임승관 단장은 “경기도에도 정보가 제대로 모아져 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군구 자료가 시도에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시도가 이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가 이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재난 상황에서 어디서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현황판조차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요양병원은 1585개(병상 약 30만 개), 요양원은 3595개(정원 약 17만 명)에 이른다.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비극은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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