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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아파트를 버리자

담장 없는 낮은 아파트가 하나의 대안
등록 2020-12-30 12:50 수정 2020-12-31 04:35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본 고층아파트 단지와 주변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본 고층아파트 단지와 주변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tvN 인기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가 주려는 교훈이다. 집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비우면서 내 욕망도 비울 수 있다니, 당장 정리를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욕망을 버리려고 물건까지 버려야 할까. 2021년 진짜 신박한 정리를 제안한다. ‘마인드 미니멀리즘’이다. 나를 파괴하는 욕망, 욕구, 습관, 집착 따위는 2020년에 묻어두자. 기자들도 소소한 실천을 해봤다. 육식, 플라스틱 빨대, 하루 한 잔의 술, 게임 현질(아이템을 돈 주고 사는 것), 배달음식을 버렸다. 정말로 버리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버리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라는 사실. _편집자주

2019년 전국 주택에서 아파트의 비율은 62.3%로 단독주택(21.6%)의 3배에 육박했다.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보면, 1970년과 1975년 아파트 비율은 전체 주택에서 각각 0.8%, 1.9%에 그쳤다. 그러나 1980년 7.0%, 1985년 13.5%, 1990년 22.7%, 1995년 37.5%로 급속히 늘어났다. 아파트 비율은 2000년 47.7%로 단독주택(37.1%)을 앞질렀고 2005년 50%, 2016년 60%를 돌파했다. 아파트 비율은 머잖아 7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담장 쌓아 지키려는 것

아파트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고 현대적인 주거공간을 제공했으나, 동시에 한국 사회에 거대한 어둠을 드리웠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파트 분양과 매매의 투기 성격이다. 아파트 선분양제는 계약 이후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문제를 일상적으로 일으켰고, 이는 분양 과열로 이어졌다.

아파트가 투기의 온상이 된 다른 이유는 표준화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집을 대부분 개별 건축 행위로 지었기에 집마다 모양과 규모, 나이가 달랐다. 가격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단지 안에, 동시에 지은, 표준화된 수십 수백 채의 아파트는 거래하거나 은행 대출을 받는 데 쉽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표준화와 금융화는 아파트의 주요 성격을 주거공간에서 투기상품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또 한국 아파트의 ‘단지’라는 독특한 형태는 지역 공동체를 위협한다. 아파트 단지는 길과 가로등, 놀이터, 경로당, 녹지 등 공공시설까지 모두 사유물이다. 주민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담장을 쌓아 주변 지역과 단절한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그 주변과 공간이나 인간관계가 끊긴다. 유기체인 도시를 섬들의 집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는 “정부가 제공해야 할 도시 인프라를 개인들이 마련하고 독점하는 것이다. 이제 아파트의 인프라도 정부가 제공해서 담장을 허물고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7층, 한국 35층

아파트는 단지 안에서도 ‘동네’와 ‘이웃’이라는 공동체가 좀처럼 형성되기 어렵다. 거리와 골목에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만나던 풍경은 사라졌다. 고층 아파트에선 외출이 줄고, 외출하더라도 지하 주차장을 통해 차량을 타고 나간다. 그래서 단지 안의 널찍한 도로와 녹지는 버려지기 일쑤다. 고층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로 수직 이동해야 해서 이웃을 형성하기 어렵게 하고, 층간 소음 같은 갈등을 쉽게 일으킨다.

한국인은 아파트를 버릴 수 있을까? 임재만 교수는 “고층의 단지 아파트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럽처럼 거리를 따라 짓는 저층의 중정형 아파트나 타운하우스는 한국 아파트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훈 교수도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는 7층인데 용적률이 300% 넘는다. 한국 아파트는 용적률이 250%인데도 35층을 짓는다. 저층 주상복합형 아파트로 가야 도시와 이웃을 되살릴 수 있다”고 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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