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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춤’ 넘어 ‘완전 단절’이 된 아들

‘잠시 멈춤’ 넘어 ‘완전 단절’이 된 아들의 삶을 무기력하게 바라본 2020년
등록 2020-12-20 11:22 수정 2020-12-21 00:12
코로나19가 차지한 2020년,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전무했다. 바닷가에 선 동환이. 류승연 제공

코로나19가 차지한 2020년,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전무했다. 바닷가에 선 동환이. 류승연 제공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송년이다. 지난 1년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20년째 도전 중인 다이어트를 올해 또 실패했다는 자괴감이 먼저 엄습해오지만 뭐 괜찮다. 원래 다이어트는 매년 하고 매년 실패하는 맛 아니던가, 하하하. 그런데 왜 눈물이 날꼬.

2020년 제1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코로나19’다. 모두가 힘들었다. 그랬기에 참고 억눌렀던 이야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새롭게 시작하는 2021년은 지금과 다르길 바라기에.

무기력에 잠식당한 나

올해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분노도 있었고 우울도 있었는데 어느덧 무기력에 잠식당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그로 인한 차별 때문이다. ‘잠시 멈춤’을 넘어 ‘완전 단절’에 이르게 돼버린 아들의 삶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의 차별은 결과의 차별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지난 1년간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의 일상은 아주 큰 차이를 보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나이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의 일상을 비교해본다.

딸은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노트북을 켠다. 온라인 영상을 틀어놓고 학습한 뒤 오전 10시가 되면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담임선생님과 10분간 소통한다. 그렇게 오전 동안 제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자유시간이다.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VOD(주문형 비디오)를 결제해 영화도 본다. 그러다 학원 갈 시간이 되면 집을 나섰는데 요즘은 학원 수업도 줌으로 바뀌어서 노트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익숙해지고 나니 이런 방식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 일방적으로 교육방송(EBS) 영상을 시청하고 끝나는 학교 수업에선 기대할 게 없었지만 실시간 줌으로 상호 소통하며 학습을 이어가는 학원 수업은 꽤 할 만했다. 학력 격차니 어쩌니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이왕 원격수업을 할 거면 학교 수업도 전 과정을 줌으로 진행하도록 인적·물적 대책이 더 확실하게 마련됐으면 좋겠다.

다음은 아들의 일상. 4월이던가 5월이던가, 온라인수업을 시작한 첫날 10초 동안 노트북 화면을 쳐다본 게 전부다. 온라인수업 자체가 불가능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기사는 언론에서 자주 다뤘으니 길게 쓰진 않겠다. 그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런데 건강하게 자라는 것조차 쉽지 않은 매일이 이어진다. 사람 인생이란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끝나는 게 아닌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잠시 멈춤의 시간이 아들에겐 세상과 단절되는 결과로 작동해버렸다.

뻔히 보이는 실패의 길로 들어선 특수교육

남편과 나와 딸은 온종일 집에 있어도 답답할 뿐 크게 불편하진 않다. 각자 할 일이 있고, 시간 보낼 일을 찾아서 하다가, 그마저도 심심해지면 친구들과 전화하거나 단체대화방에서 수다를 떨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타인과 연결되려는 소통의 욕구를 풀었다.

아들은 할 일이 없다. “집은 쉬는 곳”이란 루틴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이전에는 밤에만 집에서 쉬었는데 이제는 종일 집에서 쉰다. 똑같은 자극만 무한 반복해서 받아들인다. 본인도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스크를 쓰고 매일 산책을 나갔던 이유이며, 보다 못해 오전 두 시간씩 긴급돌봄(특수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은 긴급돌봄도 못 받는 일이 대부분이다)에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시간만이라도 세상과 소통하라고. 사람이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새로운 자극(그것이 학습이든 경험이든 관계든)에 계속 노출돼야 하니까.

아들의 ‘고립’을 지켜보는 일도 힘들었다. 단지 학교를 못 갈 뿐인데 학교를 못 가니 아들의 세계는 세상과 차단돼버렸다. 그러다보니 퇴행이 일어나고 가족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학교가 문을 닫고 비대면 원격수업이 실시된 초창기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올해 특수교육은 뻔히 보이는 길로 알면서도 들어섰다. 더는 그러지 않길 바란다. 침묵으로 동조하면 우린 모두 공범이 된다.

발달장애인이 주를 이루는 특수교육 대상자에겐 대면 수업이 원칙이 돼야 한다. 2020년 학사 일정도 그렇게 진행돼야 했다. 원격수업은 대면 수업을 보충하거나 면역력 관련 기저질환 대상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고려돼야 했다.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더니 결과적으로 발달장애 학생들의 세계만 닫혀버렸다. 결과적 차별과 필연적 배제가 발생했다. 그것을 확인한 1년이었다.

그렇다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 1천 명이 넘어가는 시국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작정 학교에 보내는 건 나도 무섭다.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왜 격리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온종일 울부짖을 게 무섭고 링거 하나 꽂는 것도 힘든데 코로나19 치료에 비협조적일 그 상황이 닥치는 게 무섭다. 그래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전무한 한 해였다. 교육부가 비장애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줄이려 애쓰는 동안 학력 격차를 넘어 학력 단절 상태로 1년을 보낸 발달장애 학생들에 대해선 한 번도 구체적 방안이 마련된 적이 없었다. 만약 비장애 학생들이 학력 단절 상태로 1년을 보냈다면 교육부는 지금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언론과 여론은 가만히 있었을까? 교사단체와 부모들은 무기력하게 있었을까?

대면이어야만 학습이 가능한 학생들이 있다. 학교에 가는 행위가 학습을 넘어 세상과 소통할 유일한 창구인 학생들도 있다. 그들의 존재가 묻히지 않길 바란다. 내 아들도 이 사회의 일원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2021년은 2020년과 다르길 바란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이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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