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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장애] “행복해지려면 관계가 필요해”

아들이 다만 장애가 있을 뿐인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관계
등록 2020-12-06 07:50 수정 2020-12-08 23:06
우리 집 어린 왕자는 여우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우란문화재단에서 만들어준 사진 일러스트. 류승연 제공

우리 집 어린 왕자는 여우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우란문화재단에서 만들어준 사진 일러스트. 류승연 제공

“너는 왜 살아?” 중학생 때였나보다. 친구 질문에 주저 없이 “행복하려고”라 답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질문은 더 그럴싸해졌다. “당신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뭔가 있어 보이고 제법 심오해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내 대답은 같았다. “행복이요.”

충분히 행복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내가 외면해버린 마음 한편엔 행복하지 못해 힘들었던 나 자신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많다, 비장애 아동 47.6% vs 장애 아동 16%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온 나는 엄마가 되었고, 발달장애아의 엄마도 되었다. 이제 내 목표는 내 아들이 다만 장애가 있을 뿐인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럼 다음 질문이 뒤따른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글쎄, 무엇이 행복일까? 두 달 만에 내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2억원 오르면 행복할까? 연봉이 1억원 넘으면 행복할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 행복할까? 경험해보지 않아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행복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타이틀(물질적인 스펙)에서 오는 행복이 ‘영원한 행복’을 담보하진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더 근원적이고 오래가며 만족도가 큰 행복은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굳이 심리학의 대상관계이론을 끌어오지 않아도 삶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런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 관계다. 인간관계가 주관적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 주변도 행복하게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쓰듯, 행복도 사랑도 내 마음에 있는 것이어야 주변과 나눌 수 있다.

눈여겨볼 만한 연구 결과가 있어 공유한다. 2020년 11월26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함께 ‘2020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장애가 있는 아동의 삶의 질’ 연구도 함께 했는데 의미 있는 항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반적 행복감’(10점 만점)의 경우 비장애 아동은 8.2%, 장애 아동은 7.0%가 행복하다고 밝혔다. ‘삶의 만족도’(5점 만점)에선 비장애 아동은 4.2%, 장애 아동은 3.4%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장애가 있는 아동의 행복감이 비장애 아동보다 낮다는 걸 확인한 대목이다.

이제 주관적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 영역이다. 또래와의 관계로 들어가보자.

‘친구가 충분히 많다’(100점 만점) 항목에 비장애 아동은 47.6%, 장애 아동은 1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친구가 있다’(100점 만점)에선 비장애 아동이 44.7%, 장애 아동은 15.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장애 아동은 친구도 없고 도와줄 친구는 더더욱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자주 다투지 않는다”

주목할 건 이어지는 결과들이다. ‘학교폭력 경험’(100점 만점)과 관련해, ‘어떤 아이로부터 맞은 적이 있다’는 항목엔 비장애 아동의 83.2%, 장애 아동의 69.4%가 그렇다고 답했다. ‘나를 따돌렸다’는 항목엔 비장애 아동의 91.6%, 장애 아동의 76.6%가 그렇다고 답했다.

학교 환경에 대한 주관적 평가 영역까지 살펴보자. 60점이 만점이다. ‘우리 반 친구들은 자주 다투지 않는다’는 항목에 비장애 아동은 11%만이 그렇다고 답했는데, 장애 아동은 39.5%가 그렇다고 했다.

이 연구 결과에서 어떤 흐름이 눈에 보이는가. 내 눈엔 장애 아동이 또래 관계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풍경이 보인다. 보호받고는 있다. 비장애 아동에 비해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경험이 적었다. 그러다보니 장애 아동은 비장애 아동보다 거의 4배 비율로 ‘우리 반 친구들은 자주 다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다. 툭하면 싸우고 삐지고 돌아섰다 다시 화해하고 친해지면서 인간관계의 기본 틀을 익혀가는 게 학창 시절에 해야 할 마땅한 일인데, 보호받거나 배제당하느라 갈등 상황을 풀어갈 방법을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청년이 로또 1등에 당첨된 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부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놨다가 당첨금을 사기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뉴스를 보고서 발달장애아의 부모나 특수교사들은 “철저히 교육해야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당연히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론 어림도 없다. 머리로는 이론을 알아도 정작 삶에서 부딪히는 건 관계에서 오는 압박감이다. 관계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방법을 몰라 ‘알면서도’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러한 관계맺기는 사회성 영역이라 경험으로밖에 배울 수 없다.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몸으로 체득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에선 ‘보호’라는 이름 아래 경험에서의 배제와 기회 박탈이 수시로 일어난다.

성인이 된 아들을 품는 건 세상

나는 아들이 행복한 성인으로 자라길 바란다. 주변인과 잘 어울려 지내면 된다. 행복은 관계에서 오니까. 그러기 위해 갈등 상황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그 속에서 타협과 포기, 협력과 포용 등 어울려 살기 위한 가치를 충분히 익힐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아들도 좋고, 나도 좋고, 세상도 좋다. 결국 성인이 된 아들을 품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닌 세상일 테니까. 성인이 된 내 아들은 시설에 살지도, ‘장애인 왕국’에서 따로 살지도 않을 테니까. 세상이 함께하고 싶은 내 아들은 이웃과 어울려 살 수 있는 행복한 발달장애인인지, 그 반대의 경우인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이제 내가 아닌 세상의 몫이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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