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익명의 여성들이 만든 ‘조주빈 40년’ 결정적 장면들

등록 2020-11-28 12:49 수정 2020-11-30 02:30
2019년 6차까지 있었던 ‘불편한 용기’ 시위는 단일 성별로 모인 최대 집회였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19년 6차까지 있었던 ‘불편한 용기’ 시위는 단일 성별로 모인 최대 집회였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분노했다, 행동했다, 지지했다, 지난 5년 동안 여성들은. 소라넷에 ‘분노’했고, 웹하드 카르텔을 파헤치려 ‘행동’했고,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엄벌 촉구를 ‘지지’했다. 분노와 행동, 지지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가 특정 몇 명만 입는 개인적 경험이 아닌 공동의 경험임을 깨닫는 시기였다.

2015년 소라넷 폐지 운동,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운동과 여성연대체 ‘불편한 용기’ 시위, 웹하드 카르텔, 2019년 정준영의 단체대화방 불법촬영물 공유 사건,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잠시도 멈추지 않고 터지는 사건들은 ‘나일 수 있었다’에서 ‘내가 너다’로 연대감을 강화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eNd),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리셋) 정부를 압박하고, 사법부를 감시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형성했다. 누군가에겐 가해의 도구였던 디지털이 이들에겐 연대의 도구가 됐다. 도구의 전복이었다.

#분노하다

‘총알 준비 완료.’

어떻게 보면 “테러리스트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 그저 ‘오늘 밤 테러할 사람 모집’이란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익명의 여성 30~40명이 온라인 공간에 모였다. 목표는 하나, ‘소라넷 폐지’. 소라넷에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작가’ 등급을 얻으면 “총알 준비 완료”다. 그리고 밤 12시 ‘총공’(총공격)이 시작된다. 1인당 게시글을 네댓 개씩 올렸다. 게시글에 여성들을 성착취한 이미지를 미러링(타인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한 남성 이미지를 포함했다. 사이트는 이들이 총공한 사진들로 도배된다. 2015년 가을 일이었다.

1999년 개설 이후 국내 최대 성착취 사이트였던 소라넷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건, 2015년 여름이었다. 경기도의 한 워터파크 여성 탈의실에서 찍힌 불법촬영 영상이 소라넷 등 성착취 사이트에 올라왔다. “처음엔 소라넷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불법촬영 영상이 공유되는 곳,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예나(18~19쪽 참조)가 말했다. 가입해서 살펴보니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골뱅이’(만취한 여성)로 만들겠으니 (성폭행할 사람은) ‘○○에서 만나자’ 같은 성폭행 모의 글이 하루에도 2~3개씩 올라왔다. 여성의 신체를 학대한 이미지도 있었다.

분노한 여성들이 움직였다. 하예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소라넷 사이트를 “테러”하고, 경찰에 소라넷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전화로 신고했다. 신고를 받아주지 않으면 직접 경찰서로 찾아갔다. “‘강간을 실제로 한다는 증거가 있냐’ ‘장난일 수도 있지 않냐’ 같은 말과 함께 수사를 못한다는 이유를 5시간 동안 들어야 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으니 경찰서에 가는 게 무서웠다.”(하예나)

‘소라넷 하니?’라는 계정도 트위터에 만들어졌다. 소라넷 계정을 팔로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멘션(짧은 메시지)을 보냈다. “너 소라넷 하니?” “소라넷이 그렇게 좋니?”라고. 신고당해 계정이 정지되면, ‘소라넷 하면 짖는 개’ 같은 유사 계정이 생겼다. 그에 맞서 ‘소라넷 하면 어쩔 건데?’라는 계정도 생겼다. 당시 소라넷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의 팔로어 수는 약 38만 명이었다. “그땐 소라넷 폐쇄보다 그런 영상들이 왜 문제인지 먼저 설명해야 하는 때였다.” 하예나가 말했다.

백가을은 소라넷에서 도는 사진을 본 날을 잊을 수 없다. “소라넷의 심각성을 알리는 글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을 봤는데도 끔찍했다.” 그날 백가을은 “몸이 너무 아팠다”. 비현실적이라 “주작(사실인 것처럼 쓴 거짓)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범죄 증거가 버젓이 도는데 경찰에서 왜 수사를 안 할까. 여성이 안전하도록 최소한의 치안이 있을 거라는 백가을의 믿음은 사라졌다.

심상치 않은 여론에 경찰이 움직였다. “해외 서버라 수사가 어렵다”는 16년 동안의 변명이 무색하게 전담팀(TF)을 꾸린 지 6개월 만인 2016년 6월, 소라넷은 공식적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수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구나, 불신이 커졌다. 디지털성범죄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발하다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은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를 촉발한 건, 2018년 5월 홍익대 회화과의 크로키 수업에 참여했던 남성 누드모델 사진이 유출되면서다. 가해자인 여성이 12일 만에 구속되자 경찰의 수사 속도가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여성들은 판단했다. 서울 혜화역이 붉은 분노로 뒤덮였다. ‘소라넷 폐쇄 17년, 홍대 검거 7일’ 같은 구호가 나왔다. ‘디지털성폭력’이라는 단일한 의제로 6차까지 이어진 혜화역 시위는, 주최 쪽 추산 총 36만 명이 참여했다. 단일 성별로 이뤄진 최대 집회였다. 혜화역 시위는 ‘편파 수사’ ‘편파 판결’을 비판하고 디지털성범죄를 처벌할 법 개정을 요구했다.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남성 편향적인 행위를 지적하는 데까지 인식이 확장됐다.

‘불편한 용기’ 시위 4차 집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기 일주일 전인 2018년 7월28일 밤 11시. 여성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제보한 대로 방송되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방송엔 양진호가 실소유한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파일노리’, 위디스크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필터링 업체 ‘뮤레카’, 뮤레카가 운영하는 디지털장의 업체 ‘나를 찾아줘’가 같은 주소지를 쓴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보한 대로 잘 나왔구나’ 서승희(26~27쪽 참조)는 생각했다. 곧장 트위터에 들어갔다. 방송을 언급하는 트위트가 많았다. 한마디로 “터졌다”(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서승희는 웹하드 카르텔을 함께 추적한 여성들과 함께 곧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수사를 요구한다’. 총 참여 인원 20만8543명, 웹하드 카르텔의 한 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성산업 구조가 있음을 짚었다. 가해자 한 명, 헤비업로더(온라인에 콘텐츠를 대량으로 올리는 사람) 한 명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을 착취하면서 불려온 산업 구조에 칼을 디밀었다. 기자회견이 이어졌고, 여성단체들의 연대도 있었다. 당시 웹하드 카르텔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여성들의 움직임에 압박받았다”고 말했다.

청원이 올라온 이후 경찰은 경찰청에 사이버안전국장을 단장으로 특별수사단을 설치했다.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음란 사이트 216개, 웹하드 업체 30곳, 헤비업로더 257개 아이디 등 총 536개를 집중 수사해 총 1012명을 검거했다”고 국민청원에 답했다. 청원을 올린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웹하드 카르텔을 추적하고 제보한) 우리가 했다기보다, 많은 여성이 국민청원을 통해 힘을 보탰다. 각자의 자리에서 싸웠다.”(서승희) 웹하드 카르텔을 함께 추적하고 다큐멘터리 <얼굴, 그 맞은편>을 만든 이선희 감독도 “국민이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여성들

웹하드 카르텔을 폭로한 지 1년이 좀 넘은 2019년 말과 2020년 초, 여성들은 본격적으로 익명으로 움직였다. 혜화역 시위가 각각의 여성이 이름 없이 모였듯, 텔레그램 내에서 벌어진 성착취 사건을 목격한 ‘추적단 불꽃’이 익명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처럼,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때처럼.

2019년 11월 <한겨레>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보도했지만 공론화되지 않자 ‘리셋’이 생겼다(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67.html 참조).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가 구성됐다(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68.html 참조). 기민하게 움직였다. 리셋은 2020년 1월 국회에 텔레그램 성착취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국민동의청원을 냈다.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1호 청원’이었다.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의 동의를 30일 이내에 얻을 경우 청원을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하는 제도다. 또 의원실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잠입수사와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처벌법의 필요성을 알렸고, 일반 시민들에게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시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eNd는 전국에서 벌어지는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의 재판을 방청했다. 누군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 ‘우리는 Nㅓ와 끝까지 간다’ 광고를, 누군가는 9월 미국 뉴욕 전광판에 “아동 성착취범을 강력 처벌”하라는 광고를 냈다.

2020년 2월 리셋을 만난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미팅 때 리셋이 150쪽짜리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그들의 열정과 문제의식에 감동받았다. 올해 4~5월에 통과된 ‘n번방 방지법’은 리셋뿐만 아니라 함께 움직인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n번방 방지법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음란물이 성착취물로 바뀌고, 불법촬영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하기만 해도 처벌받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익명의 여성뿐만 아니라 기성 단체들도 힘을 모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은 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피해자를 지원했다. 변호사들도 법률 지원으로 힘을 보탰다.

#바꾸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도, 웹하드 카르텔을 폭로한 것도, 소라넷을 폐지시킨 것도 모두 여성이었다. 디지털성범죄라는 단단한 장벽에 균열을 내기 위해 수많은 여성이 무던히 돌을 던졌다. 정부 대책은 늘 한발 늦었다. 여성들이 밀고 당기면 겨우 한 발 떼는 식이었다.

불법촬영물 유포가 논란이 된 지 2년 만에 정부는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내놨다(2017년 9월).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사이버성폭력 수사전담팀이 만들어졌다(2018년 3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2018년 4월). 촬영물을 동의 없이 유포하면 처벌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2018년 11월).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내놨다(2019년 1월).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2020년 4·5월). 그리고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이 확정됐다(2020년 9월).

디지털성범죄에 맞서다 하예나와 서승희는 활동가가 됐다. 하예나는 이후 2016년 DSO(디지털 성범죄 아웃)를 꾸려 2019년까지 활동했고, 서승희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한다. 백가을은 디지털성범죄 연구자가 돼서 지속적으로 여성에 대한 잡지를 만들고 있다. “우리 역할은 이후에 나타날 다른 팀들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이전에 활동한 팀들 덕이다.”(리셋) 여성의 연대로 세상은 바뀌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