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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의 사건의 사회학

대중을 파고드는 ‘불신질병’의 창궐

경험치를 증발시키는 ‘역대급’ 재난의 반복 속에서 사회에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퍼지는 질병”이

제1337호
등록 : 2020-11-07 00:59 수정 : 2020-11-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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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을 접종한 다음 숨진 사례가 보고된 뒤, 예방접종자가 줄어 한 건강관리협회 안이 한산하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독감백신을 접종한 뒤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보도된 뒤 사람들 동요가 심해졌다.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걱정하며 접종을 미루는 사람도 제법 나타났다. 이 틈을 타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퍼졌다. 평소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던 사람에게까지 불안이 파고드는 건 공중보건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신뢰하지 않아도 제도는 신뢰하던 사람들이 흔들린다는 불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별 사람에 의해 좌우될수록 나타나는 ‘후진성’
근대사회의 안정성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의료인 한명 한명은 나쁜 놈일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실력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인을 양성하고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는 평균을 보장하고 ‘최저’를 걸러낸다. 인성이 아니라 의료인의 역량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병원에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이유는 제도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제도를 믿지 못하면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대표 사례가 ‘용하다’란 말이 붙는 일이다. 어떤 관상을 보는 사람이 ‘용하더라’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이다. 점을 보고 복을 빌어주는 것에 대해 ‘표준화’된 양성 제도와 검증 절차가 없기에 이런 일은 소문이나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제도가 아닌 개별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많을수록 그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역대급’ 재난이란 제도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건을 말한다. 100년 만의 홍수, 기록 이래 최대 폭염 등이 그렇다. 이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개인들뿐만 아니라 제도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 사건에 대처하려면 그와 유사한 이전 경험이 필요하다. 그 경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역대급’ 재난은 이런 예측을 넘어서는 사건으로서 준비된 설계용량을 무력화한다.

문제는 제도를 무력화하는 ‘역대급’ 재난이 반복해서 일어날 때다. 고립된 사건일 경우 사람들은 재난을 제도도 대처할 수 없는 예외적 사건으로 이해하며 양해한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무력이 반복되면 제도에 대한 불신이 퍼지는 사회적 ‘사건’이 된다. 올해 독감백신에 대한 불신이 대중 사이에 퍼진 것도 같은 이유다. 코로나19에서 시작한 공중보건 위기와 유난히 길었던 장마 등 2020년 한 해에 제도의 역량을 넘어서는 재난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제도가 허둥대거나 무력해지는 것, 그리고 정책을 번복하는 것을 연이어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재난에 대처하는 제도의 역량을 불신하는 싹이 자랐다.

제도와 대중 사이 파고드는 파생적 공포
그 틈에 제도를 움직이는 권력을 공격하려는 세력이 파고들었다. 온갖 음모론과 파편적 사실들을 ‘팩트’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며 대중과 제도 사이에 쐐기를 박고 틈을 벌리려는 세력이 움직였다. 여기에 ‘공포’를 마케팅하며 장사하는 미디어들이 포털에서 같이 움직였다. 한쪽에는 이것이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오는 절호의 권력투쟁이고, 다른 한쪽에는 클릭 수와 댓글 유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멋진 장사 기회인 셈이다. 거기에 ‘좋아요’와 ‘리트위트’라는 디지털 ‘명망치’가 곧 사회적 삶인 네트워크 세계의 행위자까지 합세했다. 이 셋이 제도와 대중 사이의 불신을 걷잡을 수 없이 조장한다.

제도가 붕괴하면 대중을 사로잡는 공포는 더 이상 재난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것을 ‘파생적 공포’라고 불렀다. 공포의 시작점인 자연재난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을 밝히면서 대처법을 찾아내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초기엔 엄청난 혼란이 있었지만 무증상 전파와 제한적인 에어로졸(공기 입자) 감염 등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백신과 치료제를 찾는 동안에는 가장 좋은 대처법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파생적 공포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파생적 공포의 가장 큰 특징이 밑도 끝도 없이 ‘자가발전’하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무엇이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의 활동은 끝없이 위축된다. 제도가 나를 방어해주지 못하고 모든 방어를 나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안전의 개인화’를 추구한다. 물론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려는 노력은 하면 할수록 안심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불안이 엄습하게 된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것을 불신하고 경계하게 된다.

반대 정치 세력, 미디어 장사꾼들, 디지털 명망치에 중독된 사람들이 파고드는 틈이 바로 이 불신이다. 이들은 도처에 사기꾼이 있고 악인이 넘쳐흐른다고 말한다. 청와대에만 악인이 있는 게 아니다. 얼마 전까지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갑자기 청와대와 공모하는 악인으로 몰았다. 심지어 현 정권에 비판적인 글인 이른바 ‘조국 흑서’를 쓴 강양구 과학 전문기자는 백신 불신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했다가 ‘청와대 프락치’란 말까지 들었다.

이런 불신은 제도 안에서 가장 큰 책임울 져야 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확산하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 대선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미국 의사들이 환자가 늘어날수록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특히 제도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이며, 제도를 믿지 못할 때 대중은 해결할 수 없는 공포인 ‘파생적 공포’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020년 11월3일 국립인천공항검역소를 방문해 방역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 말을 무력화하는 검색
파생적 공포에 빨려 들어간 사람들에게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들은 제도를 믿지 못해 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양적으로 많은 소문으로 불안에 대처하려고 한다. 의료제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명의를 찾아 ‘병원 쇼핑’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의료인의 조언을 들은 뒤에도 끊임없이 검색해서 온갖 사례를 병렬적으로 모을 수밖에 없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이것을 “우리는 파트너십보다 네트워크에서 더 많은 희망을 얻는다”고 말하며 그 원인은 “질적인 결핍을 양적으로 보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매한’ 대중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이 참조할 만한 이전의 경험이 있을 때 대처할 수 있다. ‘경험치’가 높을 때 대처하는 역량도 높아진다. 대부분 역대급 사건은 이런 경험치 모두를 증발시켜버린다. 그 결과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의존할 자신의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조언을 구할 사람도 사라져버린다. 심지어 제도조차 참조하지 못하게 된다.

경험과 참조점이 다 무력해지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안을 증폭한다. 생각해봤자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아예 ‘배 째라’는 운명론자로 돌아서거나 저 뒤에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음모론’의 소비자가 되는 게 생각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아예 모든 이야기를 귀찮아하고 듣지 않으려고 하거나, 음모론, 다시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면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퍼지는 질병”에 포획된다. 이 질병(파생적 공포)은 마약 같아서 저 질병(원초적 재난)의 공포를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제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중이 제도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불신하는 것, 즉 대중과의 파트너십 붕괴다. 이 파트너십은 제도가 지금 당장 만능이라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재난은 제 경험치를 넘어서기 때문에 제도도 대처할 수 없는 것임에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말하거나 잘 해결되리라고 허언할 때 불신을 자초한다. 허언과 호언장담, 임기응변만큼 제도가 불신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열린 사회를 유지하면서도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질병관리청(옛 질병관리본부)이라는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신뢰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질병관리청을 참조해 자신이 지켜야 하는 일을 알고 행동할 수 있었다. 바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경험이 붕괴한 시기에 제도가 신뢰할 참조점이 되었다는 게 혼란에 빠지지 않고 재난을 극복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다.

일관될 때 유효한 메시지
이것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수사를 동원하지 않는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와 소통이 필요하다. 대중과 쉽게 소통한다고 어쭙잖은 수사를 쓰면 혼란을 부추긴다. 특히 함부로 확언하지 않고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어려운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다소 무미건조하고 어려운 과학적 언어를 쓰더라도 절제해 말하고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제도가 모순된 메시지를 던져서는 안 된다. 경제와 방역 모두 잡는 건 어렵고 모순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쪽은 ‘나가지 마’ 하고 다른 쪽은 ‘나가라’는 메시지를 주면 안 된다. 경험이 무너진 곳에서 필요한 것은 지침이다. 지침은 일관될 때 참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참조점으로서 신뢰가 붕괴한다. 재난 시기에 무엇보다 권력에서 보호되고, 권력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참조점이다.

엄기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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