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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동성애는 치료하면 바뀔 수 있다?

<한겨레21> 제1332호 차별금지법 표지이야기 기사에 달린 댓글에 답합니다
등록 2020-10-31 01:36 수정 2020-11-01 01:47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2020년 7월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2020년 7월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다. 차별금지법을 여러 각도에서 다룬 <한겨레21> 한가위 특대호(제1332호) 기사들에 달린 수백 건의 인터넷 댓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자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동성애 커플 보호 장치로써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시민결합법(혼인 관계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가족제도) 논의는 고사하고 차별금지법안(장혜영 정의당 의원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이제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다.

이에 <한겨레21>은 독자들이 기사에 단 댓글에 팩트체크 또는 반론 성격의 댓글을 다는 후속 기사를 준비했다. 합리적·생산적 논의를 도모해 차별금지법이 입법화되도록 하기 위한 시도다. 차별금지법안을 만드는 데 참여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조혜인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의 도움을 받았고, 관련 자료도 참고했다.

1. “성소수자가 지금 우리나라 어디에서 차별받고 있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 교육 분야를 보면, 성소수자인 만 13~18살 청소년 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다른 학생이 ‘(성소수자인) 응답자를 놀리거나 모욕’한 경우가 절반(47.5%)이나 됐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응답자를 모욕’한 사례(28%), ‘본인이 원치 않는데도 성소수자임이 공개(아우팅)’된 경우(24.5%), ‘따돌림’(14.5%), ‘성희롱 또는 성폭력’(10%) 등의 피해도 있었다. 차별과 괴롭힘을 경험한 성소수자 청소년(93명) 중 80.6%가 ‘스트레스’를 경험했고 ‘우울증’(58.1%), ‘자살 시도’(19.4%), ‘자해’(16.1%) 등의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또한 재화·용역·시설 이용 분야와 관련해선, 의료기관 이용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795명)의 19%가 ‘의료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고 있거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의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 이상(55%)이 차별을 경험했다고도 했다. 이 보고서는 차별금지법안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4개 영역인 교육, 고용, 재화·용역·시설 이용, 행정서비스 이용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차별 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담았다.

성소수자 4명을 심층 면접조사해 쓴 논문 ‘고용상 성적지향 차별 및 괴롭힘 연구’(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19년)를 보면,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비정상적 존재’로 평가되는 경험을 하면서 깊은 상처를 입고 고립감, 우울감, 자살충동, 수치심, 분노 등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차별과 괴롭힘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결국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영업을 선택했다.

2. “2015년 질병관리본부 통계: 에이즈 감염자 남성 93%, 여성 7%.(30년 누적) 즉 에이즈 감염자 대다수는 남성 동성애자라는 증거다”

에이즈 감염자 대다수가 남성인 건 맞지만 이들이 모두 동성애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질병관리청(옛 질병관리본부)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 신고 현황 연보’ 등을 보면, 2019년 신고된 신규 HIV 감염인은 1222명으로, 남자(1111명·90.9%)가 여자(111명·9.1%)보다 월등히 많다. 이 HIV 감염인 1005명(내국인)을 대상으로 감염경로를 조사했더니, 821명(81.7%)이 ‘성접촉으로 인한 감염’이라고 응답했다. 이 중 ‘동성 간 성접촉’은 442명(53.8%, 2018년 46.8%, 2017년 48%), ‘이성 간 성접촉’은 379명(46.2%, 2018년 53.2%, 2017년 52%)으로 각각 조사됐다.

‘HIV 감염인’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뜻하고, ‘에이즈 환자’는 HIV에 감염된 뒤 면역체계가 손상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 사람을 말한다. 에이즈 환자는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2년 뒤엔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가 발견됐다. 그 뒤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케냐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성 동성애자가 남성 이성애자에 견줘 HIV 유병률이 높게 나타나긴 하지만, 원인 바이러스가 드러난 뒤 HIV 감염을 동성애 질환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의학적 근거를 잃게 됐다. 실제로 앞서 제시한 한국의 HIV 감염경로 조사 내용에서도 HIV 감염경로 비중은 동성애와 이성애에서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기독교 보수단체가 2020년 9월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기독교 보수단체가 2020년 9월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3. “성적취향(성적지향)을 (법안에) 넣은 것은 동성애나 소아성애 등 정신병적인 성 추구를 인정하는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3조 1항 1호에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중략)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 관련 연구에서 이정표가 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 학회가 발간하고 전세계적으로 정신과 질환 진단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3판(DSM-III)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이후 의학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관련 연구가 이어졌고 현재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학계에서 상식이 됐다.

2016년 세계정신의학회는 “현대 의학이 동성애를 대상으로 한 성적지향과 행동을 병리화하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1992년). 유엔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2012년)”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내용으로 미뤄볼 때, 댓글과 같은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성적지향은 ‘어떠한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성적·정서적으로 끌리는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소아성애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는 말로써 편견을 퍼뜨리는 혐오 발언이다.

4. “동성애는 선천적이지 않다. 탈동성애는 가능하다”

사실이 아니다. 미국심리학회는 2011년 “개인에게 이성애, 양성애, 동성애의 성적지향이 발달되는 정확한 이유에 관해 과학자들 간의 일치된 의견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어 “성적지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전적, 호르몬상, 발달적·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돼왔지만, 성적지향이 특정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 지을 수 있는 연구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이가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 모두가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선택한다는 감각을 느끼지 않거나 아주 약하게 경험한다”고 덧붙였다.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성적지향을 선택한다는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고 한다.

선택의 영역이 아닌 성적지향을, ‘이성애자’로 강제로 바꾸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있었고 이를 ‘전환치료’라고 불렀다. 동성애 전환치료를 주도했던 세계 최대 단체는 1976년 설립된 ‘엑소더스 인터내셔널’(미국·캐나다에 250여 개 지부, 그 외 17개국에 150여 개 지부)이다. 이 단체는 2013년 동성애를 치료 대상으로 여긴 무지로 인해 성소수자에게 도움보다는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미국심리학회는 2008년 “성적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치료는 치료 대상자의 우울, 불안, 자살 시도 등을 증가시켜 오히려 동성애자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전환치료의 무익함과 해악을 지적했다.

5. “차별금지법은 소수를 위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악법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자유가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악법은 아니다. 차별을 성희롱과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1996년 여성발전기본법(현행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희롱을 처음 법제화한 뒤, 이 법이 20년 넘게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할 자유는 상실’됐다.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가 크기에, 성희롱하려는 사람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제한한 결과다. 차별금지법도 차별로 인한 피해가 크기에, 4개 영역(교육, 고용, 재화·용역·시설 공급·이용, 행정서비스 제공·이용)에 한해서만큼은 차별하려는 사람의 자유에 한계를 둔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서 다수자와 소수자가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룰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참고 문헌

박경미,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한티재, 2020

김정혜, ‘고용상 성적지향 차별 및 괴롭힘 연구’, <민주법학>, 2019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2016

김승섭, ‘동성애, 전환치료, 그리고 HIV/AIDS’, <기독교사상>, 2016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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