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00년보다 싸다…택배 과로노동의 비밀

폭발적 산업 성장 아래 과로사로 죽는 노동자들,
하루 12시간 노동 줄이려면 새로운 근무형태 설계해야
등록 2020-10-23 18:54 수정 2020-10-24 09:56
한 택배노동자가 8월13일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 택배노동자가 8월13일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 전자상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택배배송 산업은 21세기 기간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특히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택배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가파른 성장 속에 택배기사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로 죽어나간다. 택배산업은 확대됐지만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택배기사의 근무환경이 악화된 탓이다. 이제라도 지난 20여 년 동안 택배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장단기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택배 물량 20년 사이 13.9배 증가

택배산업의 역사는 그리 긴 편은 아니다. 과거 서류나 소화물 운송서비스는 우체국 소포가 담당해왔다. 1970년대에 기업 간 긴급 상업서류 배송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기업 간 서류행낭(pouch) 서비스에서 택배산업이 출발했다. 1992년 한진택배가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한국에서 처음 본격적인 택배 영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인터넷쇼핑과 TV홈쇼핑 등이 급성장하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 택배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증가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택배산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택배산업의 성장 추이를 관련 지표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2001년 택배 물량 약 2억 개, 매출액 6466억원이던 한국의 택배산업 규모는 2019년 택배 물량 약 27억9천만 개, 매출액 6조3303억원으로 커졌다. 20년 동안 택배 물량은 약 13.9배, 매출액은 9.8배 늘어났다. 그 결과 전 국민 기준으로 1인당 2000년 2.4회에서 2019년 53.8회, 경제활동을 주로 하는 15살 이상 국민 기준으로는 1인당 2000년 연간 5.0회에서 2019년 99.3회로 택배 사용량이 급증했다.

택배 관련 지표를 살펴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바로 택배 평균 배송단가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2000년 조사한 상자당 평균 배송단가는 3500원이었다. 한두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꾸준히 낮아져 2018년 2229원까지 낮아졌다. 2019년에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평균 배송단가가 약간 올라갔지만 2269원으로 2000년대 초반보다 여전히 낮은 편이다.

배송단가 인하는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과 휴식 없는 근무, 나아가 휴가 없는 삶의 원인이 됐다. 업체 간 과당경쟁이 심화되지만 택배는 고객서비스 차별화가 쉽지 않다. 단가 경쟁으로 쉽게 이어지고, 상자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 수수료도 함께 낮아진다. 택배기사는 소득 증가가 아니라 기존 소득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더 많은 택배배송을 맡아야 한다. 평균 택배운송 단가 하락은 택배업체 이익률 저하와 더불어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을 낳고, 이는 기업과 종사자 모두의 살을 갉아먹는다.

택배 물량과 택배산업 매출액 추이(2001~2019년)

택배 물량과 택배산업 매출액 추이(2001~2019년)


배송단가는 3500원→2269원

택배기사가 그동안 어떤 고용관계와 근무조건에서 일해왔는지를 살펴보자. 택배산업이 본격 등장한 1990년대 초반, 택배업체는 택배기사와 직접 고용계약을 체결해 택배차량을 제공하고 고정된 월급을 지급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택배업체가 택배기사에게 개인사업자 등록과 함께 개인 소유 화물차량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택배기사가 개인사업자, 이른바 특수형태고용 종사자로 전환된 것이다.

택배기사와 업체의 계약에는 중간에 대리점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체 직영 영업소와 택배기사가 직접 계약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택배기사의 취업 신분이 개인사업자로 전환된 이유는 택배 업무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종인 특성 탓이다. 단순히 상품을 전달하는 배송 업무는 업체의 특별한 지휘감독이 필요하지 않다. 최종 소비자의 불만이 없으면 업무 처리가 이뤄진 것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용계약을 통해 노동자의 업무를 상세히 통제할 필요성이 낮다.

개인사업자로 일하면서 택배기사는 배송 상품 개수대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소득 산정 기준이 바뀌었다. 건당 수수료 방식은 많은 상품을 배송하는 택배기사에게 더 많은 소득을 얻게 했다. 또한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나아가 배송단가가 점차 인하되는 가운데 개별 택배기사가 업체와 택배수수료 수준에 대해 협상 또는 교섭할 여지가 없어졌다. 업체가 정한 수수료를 택배기사는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했다. 그 결과 소득 저하를 막기 위해 택배기사는 더 많은 택배 물량을 처리해야 했다.

주 71시간 노동에 몸도 마음도 아파

2017년 내가 처음 택배기사들을 인터뷰할 때는 배송 물량이 하루 180개가 적당하고 200개도 많아서 힘들다고 했는데, 2020년 추석 전후로는 하루 400개 이상 배송하는 택배기사도 흔했다.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임금노동자들은 주당 최대 52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지만,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신분이어서 주당 노동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20년 9월1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기사는 주 71시간 초장시간 노동을 했다. 이런 현황에 대해서는 택배업체도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일과 중 택배기사가 오전에 하는 당일 배송할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가 직접 해야 하는 업무인지는 논란이 있다. 택배 분류작업으로 인해 택배노동자의 실제 업무인 배송 마감 시간이 늦어지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짐은 분명하다.

충분하지 못한 휴식과 휴가, 무엇보다 휴게 공간 자체가 없어서 근무 중 누적된 피로를 완화해줄 휴식시간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택배 배송 중 중량물을 주로 취급하면서 상하부 근육통이나 요통에 시달리는 택배기사가 수없이 많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골판지로 된 택배 종이상자를 많이 다루다보니 분진 노출에 따른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택배기사도 늘어난다. 종이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분류작업과 배송을 하기에 마스크를 쓰고 작업해야 하지만, 중노동인 탓에 강제하기 쉽지 않다. 또한 한국의 평균적인 취업자들보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신건강이 악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제도를 통한 보호가 절실한데도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제도 전반에서 배제된다. 산재보험 가입도 제도의 불안정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상반기에만 택배기사의 공식 산재 승인 건수는 79건으로, 2019년 공식 산재 승인 건수 106건의 75%에 이른다.

택배기사는 일반적으로 주당 7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과 휴식 없는 근무, 나아가 주 6일 근무에 연차휴가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 곳곳의 과로사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04년 이후 주 5일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돼 노동자는 금요일 저녁, 야근이 없는 회사-가정생활을 누린다. 그런데 왜 택배기사는 주 6일 매일 1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현황 (2020년 10월22일 현재)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현황 (2020년 10월22일 현재)


택배노동자에게 연차를

단기적으로는 하루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택배연대노조의 요구처럼 분류작업은 터미널에서 고용한 분류작업자에게 맡기고 택배기사는 배송 업무에만 주력하는 방법이 있다. (CJ대한통운은 10월22일 과로사 재발 방지 대책으로 택배 현장에 분류지원인력 4천 명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는 분류작업에 대해 택배기사에게 추가로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택배기사의 주 5일제 근무 전환과 최소 연 15일 정도의 연차휴가가 가능하도록 작업조직 재구성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택배업체 인력 활용과 배송조직 체계에서는 주 5일 근무나 적절한 연차휴가가 불가능하다. 택배기사 충원을 통해휴가자 공백도 고려한 주 5일제 근무 유형을 설계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무료배송이나 총알배송이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로서 구매결정과 소비행동이 사회와 노동자의 근무환경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소비자만 마냥 편리하자고 택배기사나 물류센터 직원이 죽어나가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