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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몰랑] 아이의 마음을 읽게 해주소서

다른 부모는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데 나는 왜 잠만 잘 잘까
등록 2020-10-17 08:36 수정 2020-10-22 01:46
돌치레를 단단히 한 서진이

돌치레를 단단히 한 서진이

39.3도. 새벽 한 시에 깬 아이의 몸이 뜨거웠다. 말을 못하는 아이는 엉금엉금 기어와 칭얼대며 안기려고만 했다. 안기면 더 몸이 뜨거워지니 아이는 더 칭얼댔다. 그간 잘 먹던 이유식도 양이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잘 놀던 아이가 낮에도 매트에 엎드려 축 처져 있었다.

서진이가 10월 말인 돌을 보름 정도 남기고 ‘돌치레’를 했다. 돌발진 또는 장미진이라고 하는데, 주로 만 6~15개월 아이에게 열이 며칠 올랐다가 갑자기 내리고는 발진이 생긴 뒤 사라지는 병이다.

아이가 아프기 얼마 전 “돌 전후로 애들이 돌치레 한다고 한번씩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말도 못하는 게 아프면 내 마음도 얼마나 아플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아프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보다 어떻게 열을 내릴 수 있을지에만 골몰했다. 다른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좋겠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하던데, 나는 왜 그렇지 않았을까. 내가 참여하는 육아 모임에 비슷한 때에 아픈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엄마는 밤에 아이가 잘 때도 한 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고열이면 해열제를 먹이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는 아내도 육아휴직 중인 나보다 잠을 설쳐가며 아이를 챙겼다. 나는 애가 밤에 울면서 깨면 아이 방에 가서 달래주는 정도만 하고 다시 돌아와 잠을 잤다. 속이 뜨끔했다.

혹시 내가 엄마가 아닌 아빠라서 그런 걸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대체로 남성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테스토스테론 영향 때문이라는 연구를 찾을 수 있었다. 단지 호르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 감정에 공감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교육과 군대·남성 문화의 영향 등 원인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라면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상당수 남성은 상대방의 감정을, 특히 강자가 아닌 약자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압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내 경우엔 대학생이 된 뒤 여러 활동을 하고, 특히 연애하면서 비로소 공감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 그때 난 상대가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할 경우 ‘중간에 서서 잘잘못을 가려달라’거나 ‘해결책을 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편에 서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

물론 육아란 게 무 자르듯 역할을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내가 아내보다 잘하는 것도 있다. 몸으로 놀아주는 건 잘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독려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편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 한발 뒤로 물러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도 잘한다. 그렇다고 부족한 공감 능력을 기르려는 노력도 게을리할 순 없을 것이다.

나흘 만에 아이의 열이 내렸다. 오랜만에 곤하게 잠든 아이의 서늘한 볼에 내 볼을 갖다대며 간절히 기원했다. 몸의 건강만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 또한 잘 읽는 아빠가 되게 해달라고. 나 자신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임을 언제나 잊지 않고 더 나아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해달라고.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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