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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장애] 어린이를 집어던진 장애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별성 있는데도 자신의 확증편향 공고화하기 위해 ‘일반론’을 들이미는 사람들
등록 2020-10-17 07:09 수정 2020-10-21 00:01
발달장애아의 여행 희망을 이뤄주는 프로그램 ‘효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족이 제주도 놀이공원 산책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발달장애아의 여행 희망을 이뤄주는 프로그램 ‘효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족이 제주도 놀이공원 산책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예전에 발달장애인이 어린아이를 창문으로 던진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이 훅 하고 들어오면 가슴이 따끔하고 시리다. 나에게 이 질문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과제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들과 공존하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발달장애인의 엄마인 난 말한다. “장애인이기에 앞서 사람으로 바라봐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상대방은 눈을 껌벅거린다. 구체적 방법론을 짠~ 하고 알려주면 빨리 배우고 후딱 집에 갈 텐데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고 있담.

“너는 네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

편견에 대한 얘길 하는 중이다. 우리 안의 편견을 명확히 인식하면 열두 살 내 아들은 낯선 발달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편견을 줄이는 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기 바랐다. 내 글을 읽거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자신 안의 편견을 인식해 차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 바랐다. 그래서 성공했을까? 후하게 쳐도 절반의 성공이다. 나머지 절반의 실패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는다. 왜 사람들은 편견을 인식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편견을 유지하려고 할까?

깨달음은 우연히 왔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던 어느 날이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그날은 내가 잘못했던 게 틀림없다. 평소처럼 의기양양해 소리를 질러대는 게 아닌, 소파 한쪽에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남편의 잔소리를 견뎌내고 있었다. 분명 속으론 무슨 노래라도 불렀을 텐데 기억은 안 난다. 남편은 열변을 토하며 나를 나무라다 한마디를 툭 던졌다. “너는 네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

“뭐? 방금 뭐라고? 나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지지직! 번개가 한 번 내리쳤을까? 이미 부부싸움은 안중에 없고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이거다. 확증편향.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행위 ‘확증편향’. 한마디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내 안의 편견을 인식해도 그 편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계속 모으는 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전환될 수 없었다. ‘확증편향’이란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그동안 답을 몰라 빈칸으로 남겨두었던 많은 의문이 와르르 풀렸다. 나에게 성질낸 남편에게 뽀뽀를 백번 해도 모자랄 판이다.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때 그 사건에 대해 말해야 할 시간이다. ‘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퍼진 데 그 사건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모두가 갖고 있던, 발달장애인에 대한 모호한 편견이 그 사건으로 증명된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전까지 발달장애인은 인지가 낮으니 사리 분별도 못할 것 같고 더 위험할 것 같았지만, 그런 ‘편견’을 입증할 만한 이렇다 할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비장애인은 위험하지 않은가

여기서 잠깐. 반대의 질문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비장애인은 안전한가? 발달장애가 없으니 인지도 높고 사리 분별도 잘할 것 같은 비장애인은 믿고 안심할 수 있는 타인들인가?

온갖 강력범죄가 매일 뉴스를 빼곡하게 도배하는데 비장애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뉴스가 발달장애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지목하는데 그 많은 정보는 왜 외면하는가? 왜 모두 비장애 타인에 대해 아무런 경계심 없이 새로운 독서클럽에 나가고, 미팅과 소개팅을 하며, 여러 모임을 통해 인맥을 늘리려 하는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식당 옆자리 손님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범죄 현황은 오히려 비장애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실시간으로 말하고 있는데.

솔직해지자. 사실은 말이다.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편견을 없애려는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은 위험해”라는 명제를 가슴속에 담아두고 그 편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증거를 들이민 것이다. 내 안의 확증편향을 단단히 하기 위해 자료를 모은 것이다.

다만 ‘발달장애인에 편견을 가진 나’는 스스로도 썩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기에 내가 믿고 싶은 것을 계속 믿기 위해 ‘그 사건’이란 정보에 매달려 “자~ 보아라! 이것이 그 증거다”를 외치는 것이다. 사건의 핵심은 상황에 따른 ‘개별성’이었음에도 내 안의 확증편향을 공고화하기 위해 ‘일반론’을 들이밀어버린 것이다.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는 게 가장 편해서다. 생각을 바꾸는 일은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보다 더 어렵다. 인식의 틀을 전면 재구성해야 할 수도 있다. 20년째 다이어트 중인 나는 이상하게 날이 갈수록 살이 더 쪄가는데 이렇게 힘든 다이어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니 말 다했다. 하지만 해온 대로 생각하려는 나태함을 조금만 이겨내면 같은 세상의 다른 면을 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편견을 공고히 하려는 확증편향

차별을 줄이는 출발점은 편견을 알아차리는 것부터라고 생각했다. 알지도 못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내가 느낀 절반의 실패감은 그래서였다. 아는 것을 넘어 편견을 공고히 하려는 확증편향까지 짚을 줄 알아야 했다.

내 안의 확증편향, 사고의 나태함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달갑지 않다. 하지만 분명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앞으로 이 과정을 함께하고픈 이들은 계속 연재에 관심 가져달라는 자체 홍보를 하는 중이다. 혼자라면 슬쩍 발 빼고 싶어도 함께라면 우린 끝까지 갈 수 있을 테니까.

류승연 작가

*‘류승연의 더불어, 장애’는 발달장애 아들을 둔 작가가 비장애인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 보는’ 확증편향을 하나씩 깨나가는 칼럼입니다. 2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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