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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재판 방청기] 아무것도 안함이 ‘소홀’이 될 수 있나

2020년 9월21일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11명 4차 준비기일 서울중앙지법 공판
등록 2020-10-10 13:39 수정 2021-04-16 04:40
2015년 12월15일 서울 중구 명동 서울YMCA 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증인으로 나와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15년 12월15일 서울 중구 명동 서울YMCA 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증인으로 나와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20년 9월21일 월요일 오전 10시, 77일 만에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등 피고인 11명에 대한 4차 준비기일 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이날도 공판준비기일(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 쟁점 사항을 정리하는 절차)이라 피고인들이 출석할 의무는 없었지만, 임근조(전 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는 변함없이 법정에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장이 그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자 듣기 민망한 말을 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현장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 개별적 사건의 잘잘못을 따진다면 어떤 구조기관도 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누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9시5분과 9시19분 사이

이날 검찰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모두 인정한 피고인 이재두(전 3009함장)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에 대한 범죄 혐의를 구체적으로 특정했다. 피고인들의 책임을 ‘수뇌부(김석균,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의 책임’과 이들을 보좌해야 할 ‘지휘부의 책임(나머지 피고인)’으로 구분했다. 또 그들의 작위의무를 출동한 구조세력이 침몰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상황 파악 및 전파 지휘 의무’ ‘구조계획 수립 의무’ ‘현장 지휘 의무’를, 그리고 침몰 현장에 도착한 뒤에는 ‘승객 퇴선 유도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인들이 이를 위반했거나 보좌를 소홀히 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많은 검찰의 주장 중, 나는 피고인 김석균의 ‘세월호 침몰 사실 인지 시각’과 유연식(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의 ‘퇴선 여부는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부분을 가장 주의 깊게 봤다. 그동안 김석균은 ‘9시5분께 상황담당관 임근조의 보고를 받고, 9시10분께 상황실에 임장해 중앙구조본부를 구성하고 구조를 진행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거나 진술한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검찰은 ‘김석균이 상황담당관 임근조로부터 세월호 침몰 사실을 보고받은 시간은 9시19분께고, 실제 상황실에 임장한 시간은 9시28분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석균의 변호인은 ‘당시는 경황이 없어 정확히 몇 시에 보고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검찰은 기존 조사와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9시24분께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해놓고, 이것을 제외하고 9시19분께 보고받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반발했다. 또 ‘9시19분께 보고받았다 하더라도 9시28분께까지 소요된 시간은 8분(실제 9분)인데, 그게 이 사건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재판장이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현재까지 ‘피고인들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적어도 분명하게 밝혀졌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라는 명령의 주체를 피고인 유연석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 9시26분께, 세월호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호출해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을 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진도 VTS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해주십시오”라고 교신했다. 이때 세월호와 직접 교신했던 관제사 정영민은 “제가 세월호와 교신할 때 퇴선 여부를 ‘선장한테 결정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정식(서해해양경찰청 경비안전과장)과 유연식은 2014년 검찰 수사 등에서 서로 자신이 관련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는데, 검찰은 이 사람을 유연식으로 특정한 것이다.

허위 공문서 작성·위증 책임 추궁했어야

그러나 내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얻은 결론과 비교하면, 몇 가지 사실이 우려스럽다. 첫째, 검찰이 김석균의 세월호 침몰 사실 인지 시간을 9시19분께 또는 9시24분께라고 확정했다면, 허위 공문서 작성과 행사에 대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논의했어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김석균은 검찰 수사, 1기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청문회,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등 세월호 진상 규명과 관련한 자리에서 앵무새처럼 ‘9시5분께 세월호 침몰 사실을 인지했고, 9시10분께 상황실에 임장해 위기관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초동 조치와 수색·구조 쟁점 등의 서류를 작성해 같은 내용의 주장을 수도 없이 했으므로, 검찰이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했다면 당연히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와 위증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어야 한다.

둘째, “선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해주십시오”라는 교신을 지시한 전화 통화의 책임 추궁이다. 서해해양경찰청 조직도에 따르면, 진도 VTS는 당시 광역구조본부 조정관이자 서해해양경찰청 경비안전과장이던 김정식의 임무로 추정된다. 따라서 김정식은 진도 VTS와 의사소통해 세월호 선내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조계획을 세워 구조를 지휘할 의무가 있었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직 유연식 피고인의 책임만 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각 위치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한 결과, 300명 넘는 승객이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검찰의 이런 결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 사건의 본질은 ‘수뇌부, 지휘통제부, 현장출동 구조세력 등 해경조직 전체가 조직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이지, 단순히 “주의의무 위반 또는 소홀”의 문제가 아니다.

전교생이 전 과목을 0점 받았다면

2014년 광주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을 할 때, 나는 법정에서 진행된 피해자 진술을 통해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의 구조 점수를 ‘전교생이 전 과목을 동시에 0점을 받은 것과 같다. 전교생이 전 과목을 동시에 0점을 받을 확률은 답안지에 이름만 쓰기로 합의하고 실행하지 않는 이상 획득하기 불가능한 점수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며, 우리 유가족들은 이 현상을 두고 “구조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데, 이날 검찰의 의견서에는 이 부분이 통째로 누락돼 있었다. 검찰 수사 결과에 이 부분을 수사했다는 노력이 조금이라도 녹아 있었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 유가족들의 방청이 훨씬 편했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다음 재판은 첫 공판기일로 10월12일 오후 2시에 열리며, 법정은 대법정으로 변경됐다. 피고인은 모두 참석해야 한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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