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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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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아동 엄마가 돼서야 알게 된 세상

발달장애아동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세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비장애인이 혜택을 누리도록 만드는 법
등록 2020-09-26 10:20 수정 2020-09-29 23:14
2007년 2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2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포괄적차별금지법(이하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남편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앞으로 여자 후배들한텐 말도 편하게 못하는 거 아니야? 남자 선배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여성 차별’이라 해버리면 말한 사람은 법적 가해자가 되고 회사생활도 끝나는 거잖아”.

업무 지시를 내리는 과정에서 예를 들기 위해 자신의 군생활 이야기를 꺼냈다가 “군대 안 다녀온 여성에게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건 차별”이라며 문제제기를 당한 적 있는 남편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입에 지퍼를 채우고 살아야 하는 줄 안다.

아이고 여보, 군대 이야기랑 축구 이야기만은 제발…. 그건 차별과 상관없이 안 하는 게 좋아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하면서 혼자 막 즐거워하면 앞으로 후배들이 커피 마시는 자리에 안 끼워주거든요.

웃음이 터진 난 이제부터 군대와 축구 얘긴 하지 말라며 남편을 다독인 뒤 “회사생활 안 끝나.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같은 거야”라고 말했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일명 장차법. 차별당한 적도 없고 차별하며 살아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부는 12년 전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중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되면서 차별의 세계 속에 입문했다.

빨간 약을 먹고서야 알게 된 세계

차별은 참 묘하다. 차별은 그것이 자신에게 가해진 뒤에야, 즉 차별로 인한 피해를 몸으로 직접 경험한 뒤에야 무엇이 차별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한마디로 차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건데,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빨간 약을 먹음으로써 그동안 실재했지만 존재를 알지 못했던 매트릭스의 세계를 알아차리는 과정과 비슷하다.

나도 그랬다. 내 눈엔 한없이 예쁜 아들인데 단지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는 것을 겪으면서 처음엔 놀랐고 나중엔 슬펐다. 분명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같은데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토록 달랐다.

차별을 겪으면서 나 또한 차별당했고 차별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가 쏘아 올린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에 대한민국이 들썩인 것은,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외면하고픈 양심이 콕~ 하고 건드려졌기 때문이리라.

장차법은 아들 덕분에 알게 됐다. 장차법은 차별금지법의 축소판이랄까, 범위를 ‘장애’ 하나로 좁힌 차별금지법의 맛보기 같은 느낌이라 봐도 될 듯하다.

장차법은 2007년 제정돼 2008년부터 시행됐다. 2020년인 지금, 그래서 장애인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은 처벌법이 아닌 보호법이란 점을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장차법 역시 ‘인권 보호’에 방점이 찍혔다. 솔직히 ‘아들의 엄마’ 처지에선 강제력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인생이 피곤해지고 툭하면 벌금 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들에게 장차법을 예로 들면 위로 아닌 위로가 될 것도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심정이지만 말이다.

처벌이 아닌 보호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뭔지 알기 위해,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잠시 소환해본다. 이 전 대표는 2020년 1월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는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는 벌금을 내지도 범죄자가 되지도 않았다. 대신 그 말에 상처받은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교육을 받으라는 권고를 들었다.

장애인의 날인 2020년 4월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장애인의 날인 2020년 4월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처벌이 아닌 보호, 비장애인이 누리는 혜택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처벌 규정이 약한, 말이 좋아 보호법이지 다른 한편으로 허울뿐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차별금지법을 왜 굳이 제정해야 할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차별금지법을 시행해야 무엇이 차별인지 비로소 모두가 명확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가족이 되지 않아도,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지 않아도,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무엇이 차별인지 선명해지는 그 출발점에 서게 된다.

무엇이 차별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모르고 당했던 차별에 당당히 맞설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차별도 멈출 수 있다. 알지도 못하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알고 난 뒤 차별을 줄이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모두가 상생하는 길을 찾게 된다. 장차법을 예로 들어보자.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대학생이 수강 신청을 하면 담당 교수는 처음엔 당황하기 일쑤다. 해왔던 대로 수업을 진행하면 편한데 시청각 자료를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에 민감한 시대이기도 하고 장차법도 있으니 시간과 공을 들여 시청각 자료를 만든다. 그런데 애써서 자료를 만들어놓으니 비장애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더 좋다. 학습 전달력이 높아져 모두가 만족하는 강의가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교수 마음에도 뿌듯함이 차오른다. 장애 학생의 교육권을 지키려 한 일인데 모두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어디 이뿐이랴. 지체(신체)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치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관절이 아픈 노인, 깁스한 아저씨, 무거운 짐을 든 청년에게도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저상버스도 휠체어 탄 장애인을 위해 도입됐지만 그 혜택은 모두가 함께 누리고 있다. 유아차를 끌고 버스를 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더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사회가 됐다.

장애인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분명 사회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 변화에 따른 혜택은 장애인만이 아닌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누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차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학교에서 공부하는 당연한 일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당연한 일이, 그 당연한 일이 장애인에겐 당연하지 않은 게 차별이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개선할 방법도 찾게 된다.

참관수업 시간에 다른 반으로 간 아이

아들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인가 지났을 무렵, 나는 특수교사에게 불려가 권고를 들었다. 다가오는 학부모 참관수업 시간에 아들을 특수학급으로 내려보내 다른 부모들에게 아들의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거였다. 아들의 모습을 숨기는 게 아들에게도 좋다고, 이 권고는 나와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그 시절의 난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던, 툭 치면 울음이 우왕~ 하고 터질 정도로 마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교사의 말에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배제당한 아들은 이후로도 계속, 마치 아들 혼자만 A반의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학년 말 학예회에서까지 배제당했다.

그 일이 잘못됐다는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장차법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당시 내가 겪은 일이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행동이었다는 걸 비로소 인지하게 됐다. 차별이 명확해진다는 건 이런 의미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평등해지지도 않고 깜짝 놀랄 만한 사회변혁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12년째 법으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장애 혐오와 장애인 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젠 여당 대표라도 장애 비하 발언을 하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한다. 모두가 안다.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아는 경지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데 12년 걸렸다. “장애인 차별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라는 단계에 이르려면 앞으로 20~30년 더 기다리면 될까?

차별금지법은 이제 막 발걸음을 떼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는 세상에선 비장애인 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용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조카가 전교 1등을 해본 적 없다고 무시당하지 않고, 늙어갈 일만 남은 우리 부부도 나이를 이유로 행정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30~40년이 흐르면 우리는 “허허허, 차별이란 게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지”라며 지금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허허허, 차별이란 게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지”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일상 속 차별이 선명해질 것이다. 그 선명함 속에 모든 개인이 차별을 계속할지 중단할지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갈등의 시기를 잠깐 지날 수도 있지만 결국엔 모두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절망적인 존재가 아니다. 혼자 잘 사는 것보다 함께 잘 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내가, 차별금지법의 시행을 기다리는 이유다.

류승연 작가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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