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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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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영권 승계와 노조와해 공작의 공통점

‘이재용 경영권 승계 위한 여론 조성’ 공소장 명시,
‘노조 와해 사건’ 때와 달라진 게 없어
등록 2020-09-26 02:27 수정 2020-09-26 03:58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영장 기각 뒤, 2020년 6월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영장 기각 뒤, 2020년 6월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검찰이 9월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불공정 흡수·합병 의혹과 관련해 이 부회장과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의 최지성 실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기소 며칠 뒤 언론에 공개된 공소장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였던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의 피해가 발생하는 주가조작 같은 구체적인 혐의 사실만이 아니었다. 거액의 광고를 집행해가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는 사실도 새삼 주목받았다. 이는 경영권 승계 작전이 시작될 즈음에 이뤄졌던 노조 와해 사건에서 삼성이 행한 일들과 비슷하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재판기록을 통해 삼성이 언론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활용했는지 되짚어본다.

주주는 투기 세력 몰고 합병 효과 과장

검찰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임직원들을 기소한 논리의 핵심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고, 삼성물산에 손해가 발생하는 방법으로 합병 비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합병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거세게 반대했는데, 삼성은 엘리엇을 ‘시세 차익만 노리는 투기 세력’으로 규정해 삼성과 엘리엇의 선악 대결로 몰아 합병의 문제점을 숨기고, 조작된 합병 시너지 효과를 조직적으로 언론에 기사화했다고 검찰은 본다. 이는 일반 대중은 물론 투자자가 합병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다.

주요 언론 관계자에게 선물을 준 문자 메시지 내용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던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은 2015년 6월부터 미전실과 삼성물산 홍보팀을 지휘해 평소 알고 지내던 언론사 임직원과 기자에게 합병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 작성을 수시로 요구했다. 특히 삼성은 7월17일로 예정된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나흘(7월13~16일)간 36억원 남짓의 의결권 위임 관련 광고를 집행했다. 이에 따라 언론사들은 ‘투기자본의 기업경영 교란 막아야’(7월13일치 <동아일보>), ‘헤지펀드 먹잇감 된 한국기업 “일단 공격당하면 경영 올스톱”’(7월9일치 <조선일보>),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백기사로 나서라’(7월9일치 <중앙일보>),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 당연한 선택이다’(7월13일치 <매일경제>) 등을 내놓았다. 검찰이 확인한 기사·칼럼만 11건에 이른다.

“언론에 보도될 만한 사건이 미전실의 주된 논의 대상”이었다는 미전실 관계자의 검찰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은 언론과 여론을 주시했다. 노조 와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노조를 만들고, 고용노동부가 불법 파견 혐의에 대해 근로감독에 착수하자, 미전실은 “전방위적 분위기 조성을 통해 신속한 (감독) 조사 결과 발표 유도”를 계획으로 세웠다. 보도 계획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주요 언론 보도(8월9일까지 준비, 8월12~16일 보도 추진)→기획기사 연재, 학계·저명인사 사설(2~3회)” 보도의 구체적인 취지도 정했다. “일부 국회의원이 노동계와 결탁해 기업 압박” “입법부가 행정부(노동부) 위에 군림하고 있음” “입법부가 국감권을 남용, 사실상 민간기업 국감” 등이다.

2014년 초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파업을 계획했을 때 역시 “정치권과 상급단체 정치 투쟁에 이용당하는 협력사 노조 파업과 이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를 부각시켜 우호적 여론 조성”을 목표로 했다. 당시 삼성은 조합원이 많은 협력사를 폐업시키는 등 중소기업에 피해를 줬음에도 협력사 피해만을 내세운 것이다. 삼성은 자사에 유리한 기사를 쓴 언론을 ‘우호 언론’이라 불렀다. 예컨대 “<매일경제> <미디어펜> 외 서비스 이슈 관련 우호 언론사를 추가 확보하고 기사화 가능한 내용을 지속 발굴해 제공”한다는 식이었다.

“고객 불만 노조에 집중되도록…”

파업 초기엔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고객 불편은 안중에 없는 불시 파업”을 했다고 부각하고, 전면 파업 때는 “전폭적인 처우 개선에도 파업 강행” “노조의 폭력 행위” 등을 보도하겠다는 내용도 나온다. “서비스 차질 원인이 노조임을 적극 설명해 고객 불만이 노조에게 집중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노조에 대한 동정 여론을 차단”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삼성의 ‘보도 계획’과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취지의 기사들이 쏟아진 것은 사실이다.

앞서 2011년에도 삼성은 조장희 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 등의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자, 조씨의 해고 사유를 만들기 위해 ‘대포차 사용’을 경찰에 직접 수사 의뢰했다. 경찰이 조씨를 사무실에서 체포하도록 하고, 이를 언론이 기사화하도록 했다. 당시 삼성 미전실에 보고된 문건에는 “회사는 노조 설립 주동자가 대포차 운행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을 언론에 기사화되도록 조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회사가 조씨를 다른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도 “기소 때 언론 릴리즈 검토. 수원 지역 경찰 및 법원 출입기자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노출”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언론에 기고·칼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전문가 풀도 확보하고 있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엔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삼성 출신이었던 황영기 당시 한국금융투자협회장과 손병두 한국선진화포럼 회장 등이 삼성 편에서 합병에 찬성하는 취지의 언론 기고와 인터뷰를 했다. 삼성은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문가 풀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 기록으로 확인된 삼성 내부 문건들이 그 증거다. 2008년 삼성은 “2010년 도입 예정인 복수노조 시행의 유예 또는 폐지를 위한 특별 프로젝트” 계획 문건을 작성하면서, “노동 관련 학회: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연구비 지원”이라고 적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를 만들 학자들을 연구비로 포섭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8월 미전실 임원회의 회의록에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 학자를 연구에서 제외하려 한 대목도 나온다. 인사 운영과 관련해 연구하는 대학교수 이름을 거론하며 “○○○ 교수가 삐딱하게 나오면 연구소에 말해서 제외할 것. ○ 교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음”

검찰은 삼성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언론을 매수하고 여론을 형성한 것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재판을 통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임원들이 처벌받을 길이 열렸지만, 삼성의 포섭에 부응한 언론은 오늘도 건재하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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