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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죄지은 교도소

등록 2020-09-12 01:06 수정 2020-09-12 01:36
‘디지털교도소’ 누리집 갈무리

‘디지털교도소’ 누리집 갈무리

교도소가 ‘셧다운’됐다. 교도관이 24시간 상주하며 복역자를 지키는 오프라인 교도소 얘기가 아니다. 감시하는 사람은 따로 없지만 모두에게 공개됐기에 더 잔인한, ‘디지털교도소’ 이야기다. 인터넷상에만 존재하는 이 교도소는 성범죄와 아동학대, 살인 등 강력사건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웹사이트다. 국내법이 흉악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너그럽기에, 신상을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며 6월 문을 열었다.

법적으로 가해가 증명된 이들의 신상만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선수였던 고 최숙현씨에게 가해한 이들의 신상도 공개됐다. 다크웹에 ‘웰컴투비디오’라는 아동 성착취물 거래 사이트를 운영해 경찰에 붙잡혔다가 현재는 출소한 손정우를 재판에서 마주했던 판사들의 이름과 사진, 전화번호도 사이트의 트래픽을 어엿이 차지했다. 범죄자를 엄단하지 않는 사법부를 대신하는 이 교도소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상 공개 형태로 법 바깥에서 이뤄지는 사적 복수가 옳은 일인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문제 제기가 본격화한 건, 한 대학생이 숨지면서다. 경찰에 따르면 디지털교도소는 숨진 대학생이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시키는 성범죄와 관련됐다는 제보를 받고 그의 얼굴 사진과 학교, 전공, 학번 등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사이트에 올렸다. 하지만 신상이 공개된 뒤 해당 대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했고, 해명을 거듭하던 중 숨을 거뒀다. 경찰은 재빨리 수사에 나섰고, 사이트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디지털교도소와 유사한 사적 제재가 이루어진 게 처음도 아니다.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배드파더스’의 작동 방식도 이번에 문제가 된 디지털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드파더스는 공익 목적을 인정받아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적 제재가 갖는 위험성과 비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양형에 대한 분노와 사법부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또 다른 디지털교도소가 사이버공간에서 재현될 확률은 충분하다. 피해자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사회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형국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분야 -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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