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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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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가물던 마을에 난 물난리

산사태가 덮친 충주… 이번 여름 알게 된 “자연재해로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등록 2020-08-31 06:57 수정 2020-09-05 01:04

폭우, 산사태, 폭염, 냉해, 고수온…. 정신없이 몰아쳤던 ‘2020년의 기후위기’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겨레21>이 전국의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이 동행했습니다. 기후재난이 삶을 관통할 당사자이자,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이수아 활동가)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됐다는 이들은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의 위력을 목격하고는 “미래를 살아갈 두려움”(박선영 활동가)이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자들의 취재가 더해진 ‘2020 기후위기 목격’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기후위기에 관한 최소의 기록입니다_편집자주

“저기, 저 산 밑에 두 집이 있었어. 두 채가 다 쓸려갔어. 한 채는 저기 있고 한 채는 여기 있고. 죽은 사람 집이 여기야.”

8월12일 충북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세고개마을에서 만난 강화자(76) 할머니의 설명이 없었다면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 나무뿌리와 돌이 뒤엉킨 진흙밭에서 며칠 전만 해도 두 가족이 살았고, 거기서 150m쯤 떨어진 또 다른 진흙밭에 종잇장같이 구겨진 잔해가 그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을요.

귀향한 할머니의 죽음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열흘 전인 8월2일 한 사람이 죽었다는 할머니의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 무서워.” 현장에 함께 있던 정주원 활동가와 동시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날 돌아가신 분은 강화자 할머니와 동갑내기였습니다. “새벽 5~6시에 비가 얼마나 많이 퍼부었는지 몰라. (그때) 남편은 나와서 저쪽에 뭐 하러 가고 여자는 (집 앞) 길에 서 있었던 거여. 그때 여자가 (산사태로) 쓸려가버린 거지. (나머지 한 집은) 비어 있어서 다행이었지. 있었으면 저기도 다 죽었어.” 아주 오래전 고향인 세고개마을을 떠나 수도권으로 시집갔다가, 나이 들어 다시 찾은 고향에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 사고 이후 처음 비가 그친 이날, 마을 주민 네댓 명은 할머니 집을 철거하고 있었습니다. 18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가족처럼 지내온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이웃들의 표정은 어둡고 쓸쓸했습니다. 한 주민은 할머니가 썼을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정리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세고개마을 고개 너머 있는 신대마을도 산사태와 수해를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입구에서 괜찮아 보였던 마을 안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부러진 콘크리트 전봇대, 깨진 아스팔트 도로, 푹 파인 도랑, 망가진 비닐하우스, 썩은 농작물…. 집중호우로 산에서 토사와 물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오며 저수지를 터뜨렸고, 결국 엄청난 흙탕물이 저수지 아래 17가구를 덮친 흔적이었습니다.

이날 비가 그치자마자 밭으로 나가 자식처럼 키운 콩과 깨를 확인했지만 결국 제 손으로 매어 버려야 했던 허순홍(83) 할머니는 깊게 절망했습니다. “(폭우가 내리던 8월2일) 우리 집이 옛날 흙집이라 낡아서, 무너질까봐 무서웠어요. 집은 괜찮았는데, 피해는 엄청나요. 먹을 만큼 심었던 깨, 콩을 다 갈아엎어야 해. 저수지 옆에 세워놨던 경운기도 떠내려가고. 속상해 죽겠어요.” 진흙이 잔뜩 묻은 할머니의 얼굴과 손발, 옷을 보니 조금이라도 농작물을 살려보려던 할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할머니 집 마당에 있던 진흙 범벅의 개 세 마리,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마저 무척 지쳐 보였습니다.

8월12일 충북 충주시 세고개마을에 열흘 전 산사태로 150m가량 쓸려간 집이 구겨져 있다. 이곳에 살던 76살 할머니는 숨졌다. 서보미 기자

8월12일 충북 충주시 세고개마을에 열흘 전 산사태로 150m가량 쓸려간 집이 구겨져 있다. 이곳에 살던 76살 할머니는 숨졌다. 서보미 기자


연강수량 3분의 2 쏟아져

작은 마을에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주민은 없었습니다. 신대마을로 시집온 허순홍 할머니는 “저수지가 터진 것도, 이렇게 물난리가 난 것도 올해가 처음”이라며 당황해했습니다. 오히려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농사에 애먹었던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강화자 할머니는 “여기는 비가 안 오는 게 걱정이었던 동네”라며 “지금도 이 사태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세고개마을과 신대마을이 속한 탄방마을의 김윤종 이장도 “(내가 여기서 살아온) 45년 동안 우리 마을에서 산사태는 처음”이라고 말을 보탰습니다.

어르신들의 기억대로, 탄방마을을 포함한 충주는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 아닙니다. 충주시청 산림녹지과 관계자도 “집중호우 같은 자연재해로 충주가 산사태 피해를 입은 적이 (이전에) 거의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충주에서만 국공사유림 218곳(1곳은 인접한 산사태 피해 지역의 면적을 합쳐 복구액 5천만원 이상인 곳), 155.8㏊(잠정)에서 산사태 피해가 났습니다(충주시청 제공).

역대 최대 산사태의 원인은 역대 최다 강수량입니다. 산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으면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 중턱의 바위나 흙이 갑자기 무너져내리기 쉽습니다. 실제 ‘역대 최장’ 장마(중부지방 54일·6월24일~8월16일)로 기록된 올해 장마 기간 충주에는 814.3㎜의 비가 내렸습니다. 2019년 같은 기간 강수량(329.4㎜)의 두 배가 넘습니다. 연강수량(1212.7㎜)의 67%가 한꺼번에 쏟아진 겁니다.

긴 장마, 기록적 집중호우, 동시다발적 산사태의 원인은 우리가 다 알듯이 기후위기입니다.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이 만든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문구처럼요. 기상청은 ‘북극의 이상고온-북극 얼음(해빙) 감소-북극의 찬 공기 남하-한국 북쪽 상공에 찬 공기 정체-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 지연’으로 비를 뿌리는 정체전선이 오랫동안 중부지방에 머물렀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애초에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평균기온이 꾸준히 오르는 우리나라의 여름철 강수량은 1912~2017년 10년마다 11.6㎜씩 증가해왔습니다(‘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하천 앞 집들이 잠긴 우리 마을

두 마을은 내가 사는 마을과 무척 닮았습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우리 마을은 가장 가까운 충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 3대만 다니는 시골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만큼 지대가 높은 마을이라, 그동안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불안해졌습니다. 운이 나쁘면 우리 마을도 언제든 세고개마을, 신대마을과 같은 처지가 될 테니까요. 그러면 나처럼 젊은 사람들은 바로 대피하겠지만, 거동이 어렵거나 다소 느린 우리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떡할까요.

그 순간이 이미 아주 가까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장마 기간에 우리 마을에서도 하천 앞의 몇 집은 물에 잠겼습니다. 평소 잔잔하던 하천이 급류가 되어 휘몰아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왠지 빨려 들어갈 듯해, 근처에 갔다가 발만 삐끗해도 잘못될 것 같아 소름이 끼쳤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면서 자연에 대해 많이 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재해로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정말 내가 사는 충북에서만 이번 집중호우로 8명이 사망·실종(전국 42명)되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2020년의 여름은 ‘두려움’으로 기억될 겁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는, 그동안 책과 뉴스에서 보고 들은 모습보다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요. 그래서 기후위기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2019년 5월부터 띄엄띄엄 해오던 채식을 확실하게 하고 청소년기후행동 활동도 더 열심히 하려 합니다. 비와 산사태로 죽지 않을 미래를 위해서요.

충주=박선영(16)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취재 도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표지이야기_2020 청소년 기후위기 리포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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